사진 없는 사진말
13. 졸업장으로 사진을 찍나
졸업장으로는 무엇을 할까? 어느 학교를 마쳤다는 발자국을 보여준다. 그러면 졸업장은 어디에 쓸까? 동문끼리 모이는 자리에서 쓴다. 이밖에 졸업장을 쓸 일은 없다. 졸업장은 ‘사람’도 ‘삶’도 ‘사랑’도 보여주지 못한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서울대를 나왔기에 훌륭한 사람이지 않고, 멋진 삶이지 않으며, 고운 사랑이지 않다. 서울대 졸업장은 그저 ‘서울대를 나왔다는 발자국’일 뿐이다.
문예창작학과라는 대학교를 다녔기에 글을 잘 쓰지 않는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강좌를 들었기에 글을 잘 쓰지 않는다. 그러면, 누가 글을 잘 쓰는가? 글을 잘 쓰려고 늘 생각하면서 스스로 글을 갈고닦는 사람이 글을 잘 쓴다.
사진은 누가 잘 찍을까? 손꼽히는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오면 사진을 잘 찍을까? 이웃나라로 사진을 배우러 다녀온 사람이 사진을 잘 찍을까? 아니다. 스스로 사진을 늘 생각하면서 스스로 제 사진을 갈고닦는 사람이 사진을 잘 찍는다.
사진길을 걷고 싶으면 사진길을 걸어야 한다. 대학교를 다닌다거나 스튜디오를 거쳐야 하지 않는다. 사진가로 살고 싶으면 사진가로 살아야 한다. 대학교에서 어떤 스승을 만나거나 어떤 동료나 선후배를 사귀어야 하지 않는다. 사진을 알거나 배우고 싶으면 사진을 알거나 배우도록 땀흘리면 된다. 책을 들추거나 기록을 살피거나 학교나 강좌에 얽매인들 사진을 알거나 배우지 못한다.
졸업장으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졸업장으로 춤을 추지 않는다. 졸업장으로 됨됨이나 사랑이나 꿈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직 온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됨됨이랑 사랑이랑 꿈을 드러낸다. 내 삶으로 내 글을 쓰고, 내 사랑으로 내 사진을 찍으며, 내 꿈으로 내 그림을 그린다.
‘사람을 옷으로 보고 싶다’면 사람을 옷으로 보면 된다. 사람을 졸업장이나 자격증으로 만나고 싶다면 졸업장이나 자격증으로 만나면 된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보고 싶은 대로 보라. 네 삶은 네 손으로 빚으니까. 네 사진은 네 삶으로 찍으니까. 4348.10.1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사진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