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82 너머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늘 배웁니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못 배우거나 안 배웁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늘 앞으로 나서서 배웁니다. 배우려고 하기에 스스럼없이 앞으로 나서는데, 앞으로 나설 길이 꽉 막혔으면 맨 뒤에 서서도 기쁘게 배웁니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맨앞에 있다 하더라도 못 배우거나 안 배웁니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맨뒤에 있으면 아예 배움에서 손을 뗍니다.


  배우려고 하기에 코앞에서 찬찬히 살피면서 배웁니다. 배우려고 하기에 어깨너머로 하나씩 배웁니다. 배우려고 하기에 온몸과 온마음을 기울여서 배웁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오늘 이곳’에서 기쁘게 땀을 흘리면서 ‘저 너머’를 바라봅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줄 아는 사람이 배웁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줄 모르는 사람은 못 배우거나 안 배웁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줄 알기에 ‘저 너머’로 가는 길을 배우려 합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줄 모르기에 ‘저 너머’는 아예 모를 뿐 아니라 볼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너머’로 가려면 바로 오늘 이곳에 선 내 삶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 선 내 삶을 제대로 보지 않고서는 ‘너머’가 있는 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곳’을 알더라도 ‘저 너머’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꽤 많아요. ‘오늘 이곳’에서 누리는 삶으로도 넉넉하거나 재미있거나 좋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굳이 ‘저 너머’로 새롭게 나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구태여 낯선 곳에 가서 힘을 쏟으려 하지 않습니다. 애써 낯설고 물선 곳으로 떠나서 모든 것을 온통 새롭게 지으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낯설고 물선 곳으로 갈 겨를에 ‘오늘 이곳’에서 스스로 재미있거나 좋다고 여기는 것을 한껏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저 너머’는 힘든 길(고생 길)일까요? 힘들다고 여기니 힘든 길이 될 테고, 낯설리라 여기니 낯선 길이 되어요. 이와 달리, 새로움을 찾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새롭다고 여깁니다. ‘오늘 이곳’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줄 제대로 바라보아서 깨달은 사람은 ‘저 너머’로 새롭게 나아가야 하는 줄 시나브로 알아챕니다. 앞으로 새롭게 일굴 보금자리에서 지을 삶을 하나씩 헤아리면서 꿈을 키웁니다.


  왜 ‘저 너머’로 가려 할까요? 왜 ‘오늘 이곳’을 흐뭇하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까요? 제아무리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워 보이는 솜씨나 재주로 살림을 꾸리더라도, 이 모든 삶이 쳇바퀴가 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삶이 쳇바퀴질 아닌 오직 삶이 되도록 하자면, ‘오늘 이곳’에서 ‘저 너머’로 오가는 걸음마를 떼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씨앗을 뿌려서 돌보고 거두어 갈무리합니다. 씨앗을 심어서 보살피고 거두어서 갈무리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다만, 이 아름다운 삶을 아름답게 여기지 않으면 힘겨운 굴레가 됩니다. 해마다 씨뿌리기를 하면서 새로움을 찾지 못한다면 고단한 굴레로 바뀝니다. 해마다 가을걷이를 하면서 새로움을 누리지 못한다면 벅찬 굴레로 바뀝니다. 해마다 갈무리를 하면서 새로움을 짓지 못한다면 나른한 굴레로 바뀝니다.


  ‘저 너머’를 바라보면서 그곳으로 나아가려는 까닭은, 이곳을 떠나려는 뜻이 아닙니다. 제자리걸음이나 쳇바퀴질을 하지 않으려는 뜻입니다. 늘 씩씩한 걸음이 되려는 뜻입니다. 아이한테 물려주기 앞서 어버이 스스로 새로운 웃음과 노래를 언제나 맑고 밝게 지으려는 뜻입니다. 나 스스로 오롯이 서서 홀가분한 숨결로 거듭나려는 뜻입니다.


  ‘저 너머’는 ‘오늘 이곳’과 대면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곳’이 ‘가장 좋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으로 태어난 목숨은 언제나 ‘저 너머’를 바라봅니다. 새 숨결은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오직 ‘사랑’을 헤아립니다. ‘꿈’을 바라보는 ‘새 아이’입니다. 해님을 바라보고 별빛을 바라봅니다. 무지개를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언제나 ‘저 너머’를 바라보면서 내 가슴에 노랗고 하얗다가 푸르다가 파랗다가 빠알간 빛결을 바라봅니다. 새로 깨어나려고 ‘저 너머’를 마음속에 짓습니다. 새로 태어나려고 ‘저 너머’로 한 걸음씩 내딛습니다. 너머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에는 노래가 있습니다. 노래에는 웃음이 있습니다. 이 웃음에는 바로 사랑이 있어요. 4348.3.24.불.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숲말/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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