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고 일어서고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되풀이한다. 기운이 없으니까 쓰러지고, 기운을 되찾자며 일어선다. 기운이 다 해서 쓰러지고, 기운을 새로 내면서 일어선다. 큰아이는 몇 달 사이에 손가락 두 마디만큼 키가 자란다. 지난해에 장만한 배롱꽃빛 고양이 바지를 올해까지만 입고 더는 못 입을 듯하다. 겨울이 오고 새해를 맞이할 즈음에는 키가 얼마나 더 자랄까. 몸은 얼마나 더 클까. 나는 뜨개질을 하지 않으니 옷을 얻거나 사다가 입히지만, 지난날에는 모두 손수 옷을 지어서 입혔으니, 나처럼 이렇게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되풀이하는 몸이라면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겠구나 싶다. 장날인 어제는 읍내마실을 저녁에 다녀왔다. 아침하고 낮에는 할매와 할배가 장날마실을 다녀오시느라 군내버스가 붐빌 테니까. 그런데 어제가 마침 일요일인 탓에 읍내 고등학생 아이들이 짐꾸러미를 들고 군내버스에 잔뜩 오른다. 그렇구나. 금요일에는 집으로 돌아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기숙사로 돌아가려고 이렇게 버스에 잔뜩 타는구나. 두 아이는 자리에 앉히고 나는 서서 군내버스를 탔다. 꽤 어지럽고 힘들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느긋하게 앉아서 왔으니 고마운 일이다. 저녁을 겨우 차려서 먹인 뒤에 이를 닦였고, 아이들이 마지막 힘을 짜내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책상맡에서 동화책 한 권을 펴고는, 이 책에 적힌 말투를 손질하는 일을 했다. 아이들이 읽을 동화를 창작하거나 번역하는 어른들이 ‘한국말을 너무 엉터리로 함부로’ 쓴다. 이런 글(문장)을 어떻게 아이한테 읽힐 셈인지 아리송하기까지 하다. 이런 글을 읽히느니 내가 손수 이야기를 지어서 책을 써서 읽힐 노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½쯤 글을 손질하니 기운이 다해서 더 손질할 수 없다. 아이들이 먼저 누운 자리로 가서 눕는다. 노래를 부를 기운조차 없어서, 고요한 노래가 흐르도록 셈틀을 켜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4348.10.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