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았다! 곤충의 집 봄 여름 가을 겨울 생태놀이터 3
곤도 구미코 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66



풀벌레는 사람한테 이웃이자 동무

― 찾았다! 곤충의 집

 곤도 구미코 글·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한울림어린이 펴냄, 2008.1.7. 1만 원



  마루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빗자루를 들고 가랑잎을 씁니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가랑잎을 쓰느라 바쁩니다. 네 철 푸른 나무는 네 철 푸른 만큼 꾸준하게 가랑잎을 내놓고, 겨울에 앙상한 가지로 쉬는 나무는 가을마다 가랑잎을 잔뜩 내놓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가랑잎을 쓸어도 마당에는 가랑잎이 소복합니다. 그렇다고 하루라도 미루면 더 많이 쌓여서 구릅니다.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가랑잎을 고이 쓸어서 풀밭으로 옮깁니다. 마당에서 바스라져서 흙이 되기보다는 풀밭이나 나무 둘레에서 천천히 삭아서 흙이 될 때에 한결 싱그러울 테니까요.


  마당을 쓰는 김에 누렇게 시든 풀을 베거나 뽑습니다. 줄기마다 새 뿌리가 생기면서 뻗는 여뀌를 걷다가 뿌리가 토톡 소리를 내며 뽑히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많은 개미가 함께 튀어나옵니다. 아차, 너희가 여뀌 뿌리 언저리에서 집을 짓고 살았구나. 이것 참 미안한 노릇이네. 그래도 너희는 집을 대단히 잘 지으니까 다시 손질해서 잘 가꾸렴.


  씨앗을 심으려고 호미로 땅을 쪼면 으레 개미집이 나옵니다. 또는 벌레집이나 애벌레가 나오기도 합니다. 굼벵이도 나오지요. 이럴 때마다 풀벌레한테 미안합니다. 그러나 이 작은 아이들한테 속삭입니다. 괜찮아, 씨앗만 심고 갈 테니까. 씨앗을 마저 심을 때까지 기다려 주렴. 씨앗을 다 심으면 그 뒤로 이 땅은 도로 너희 보금자리가 되겠지. 땅속을 알뜰살뜰 잘 보듬어 주렴.


  잘 자란 쑥대라든지 모시풀이라든지 젓가락나물이라든지 고들빼기를 베어서 마당 한쪽에 쌓았습니다. 달포 즈음 그대로 두어 바싹 말렸는데, 이 풀짚을 풀밭으로 옮기면서 보니, 아래쪽에도 온갖 벌레가 바글거립니다. 지렁이도 이곳에서 기어다니고, 쥐며느리와 집게벌레와 여러 벌레가 북새통을 이룹니다. 그런데 풀짚 밑바닥은 어느새 까무잡잡한 흙밭입니다. 고작 달포를 그대로 두었을 뿐이지만, 밑바닥에 있던 풀은 잘게 바스라졌을 뿐 아니라 동글동글 이쁘장하면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 까무잡잡한 멋진 흙으로 바뀌었어요.


  풀벌레와 지렁이는 참으로 대단하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지구별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풀벌레가 지렁이가 꾸준히 새로운 흙을 일구어 주면서 사람한테 아름다운 이웃이자 동무가 되는구나 싶습니다. 마른 풀이나 말라죽은 풀을 흙으로 바꾸어 주는 풀벌레와 지렁이입니다. 밥찌꺼기도 어느새 흙으로 바꾸어 주는 풀벌레와 지렁이입니다. 게다가 개미는 풀벌레 주검을 흙으로 바꾸어 주지요.



생각 없이 보아 넘긴 풍경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숨었어요. 나뭇잎을 잘라 돌돌 말거나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리거나 나무줄기 속에나 땅속에 굴을 파거나, 저마다 보금자리를 마련하려고 갖가지 슬기를 짜내어 살아가요. (25쪽)





  곤도 구미코 님이 빚은 그림책 《찾았다! 곤충의 집》(한울림어린이,2008)을 읽으며 흙과 풀과 시골과 땅을 함께 헤아려 봅니다. 곤도 구미코 님 그림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생태놀이터’라는 이름으로 네 권이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톡! 씨앗이 터졌다》, 《와글와글 떠들썩한 생태일기》, 《꼬물꼬물 곤충이 자란다》와 함께 《찾았다! 곤충의 집》은 네 권으로 네 철 이야기를 골고루 들려줍니다.


  이 가운데 《찾았다! 곤충의 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따로 ‘이야기 말(설명 글)’이 붙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맨눈으로 볼 수 있을 만한 땅거죽이나 물위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다음 쪽에서는 ‘사람이 맨눈으로 볼 수 없을’ 만한 땅속이나 물속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주 조그마한 풀벌레와 날벌레와 물벌레가 저마다 어느 곳에서 어떤 삶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를 꼬물꼬물 조그맣고 앙증맞으며 재미난 그림으로 보여주어요.


  처음에는 ‘응? 무슨 그림일까?’ 하고 궁금하도록 이끌고, 한쪽을 넘기면 앞쪽하고 바탕은 같되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수많은 벌레가 저마다 얼크러지고 어우러지는 얼거리’를 한자리에 그러모아서 보여주지요.


  그런데, 그림책 《찾았다! 곤충의 집》을 보면, 온갖 벌레가 서로 잡아먹거나 잡아먹히는 모습이 곳곳에 나옵니다. 어느 벌레는 잡아먹히면서 눈물을 흘리고, 어느 벌레는 잡아먹으면서 빙긋 웃습니다. 그럴밖에 없어요. 참말 풀밭 먹이사슬에서는 목숨앗이가 뚜렷하게 갈려서 서로 먹이가 되고 삶이 되며 삶터를 이룹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꾸밈없이 들여다봅니다.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으로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이 벌레는 이러한 삶이로구나 하고 깨닫고, 저 벌레는 저러한 삶이네 하면서 깨닫습니다. 수많은 벌레가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이루는 새로운 삶을 마주합니다.



벌레 똥은 벌레 집. 혹잎벌레 집은 벌레 똥이거든.

나는 노랑쐐기나방. 내 고치는 길쭉동글한 초코볼처럼 생겼어.

난 팽나무혹파리. 나뭇잎 벌레혹 속에 살지.

나는 물속 청소부, 물방개.

나는 빨간 바탕에 까만 점이 콕콕 박힌 무당벌레. 나무껍질 안쪽에 옹기종기 모여 다 함께 겨울을 나. (그림책 면지에 있는 그림)





  가을볕이 뜨겁다면서 마루에서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을 마당으로 부릅니다. “얘들아, 우리 집 빨랫줄을 보렴. 잠자리가 네 마리나 나란히 앉았는걸.” 아이들은 “어디? 어디?” 하면서 내다봅니다. 마당으로 맨발로 내려서서 두리번거리다가 찾아냅니다. “아, 저기 있구나!”


  저녁에 잠자리를 깔고 함께 눕습니다. 큰아이가 문득 묻습니다. “아버지, 거미들은 왜 태풍이 오면 안 날아가?” “거미는 태풍이 올 적에 안 날아간다기보다 태풍이 오면 미리 알아채고 줄을 다 걷고서 숨지. 그래야 태풍에 날아가지 않으니까. 태풍이 오면 거미줄로 잡을 벌레도 없으니 줄을 걷어야지.” 엊그제 두 아이는 마당에서 애벌레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맨발로 마당에서 놀다가 애벌레를 보았다더군요. “저기, 저 나무에서 이리로 떨어졌어. 다시 나무로 올려주려고 나뭇잎을 대는데 얘가 나뭇잎으로 안 올라오고 혀만 빨갛게 낼름낼름 내밀어.” “나뭇잎으로 안 올라오면 다른 나뭇잎을 써서 뒤에서 밀어 주면 되지.” “얘는 범나비 애벌레일까, 아니면 파란띠제비나비 애벌레일까?” “글쎄, 파란띠제비나비 애벌레 같기는 한데, 혀 내미는 빛깔하고 다리 옆으로 난 하얀 띠를 보니까 범나비 애벌레 같아.”


  나는 풀벌레나 애벌레를 잘 몰랐고, 아직 얼마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수많은 풀벌레하고 애벌레를 늘 아이들하고 지켜보면서 새롭게 배웁니다. 여기에다가 멋진 그림책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즐겁게 배웁니다.


  벌레를 다루는 그림책은 아이들이 대단히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공룡 그림책 못지않게 벌레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벌레가 사람하고 아주 가까운 이웃이자 동무인 줄 마음으로 아는 셈일까요? 벌레가 이 지구별에 있기에 모든 주검과 쓰레기를 삭혀서 아름다운 흙으로 바꾸어 주는 줄 마음으로 알까요?


  벌레 그림책을 읽으면서 벌레를 더 재미있고 살가이 배웁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사랑스러운 벌레 그림책을 읽으면서 ‘인문 지식’이 아닌 ‘우리 곁 예쁜 숨결’이라는 테두리에서 벌레 한살이와 이야기를 새삼스레 배웁니다. 4348.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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