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동경대 가다! 19 (신장판) - KBS 드라마 '공부의 신' 원작
미타 노리후사 지음, 김완 옮김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56



‘시험공부’만 하느냐 ‘삶을 배우려’ 하느냐

― 꼴찌, 동경대 가다! 19

 미타 노리후사 글·그림

 김완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2010.1.4. 4500원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다니는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가 하고 돌아보면 이것저것 떠오르기는 하지만 그리 기쁘거나 새롭다고 할 만한 일은 좀처럼 찾기 어렵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늘 같은 자리만 맴돌아야 했던 나날이었네 하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이런 중·고등학교 여섯 해였어도, 기찻길을 밟고 두어 시간 거닐던 일은 자주 떠오릅니다. 이제 옛날 그 기찻길은 몽땅 사라졌지만 하루에 한두 대 지나가는 오래된 기찻길이 있었고, 자율학습 따위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으레 그 기찻길을 따라서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천 걸음 떼기나 만 걸음 떼기를 하며 혼자 놀았습니다. 이렇게 한참 기찻길을 밟고 걸으면 어느새 무거운 짐이 훌훌 사라지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다시 시험공부를, 대학 입시 공부를 붙잡습니다.



“내 콤플렉스는 내 자신에 대한 거야. 난 고등학교를 중퇴했잖아? 난 곤란하면 금방 도망쳐 버리는 약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서 자기혐오에 빠지는 거야. 하지만, 입시에서든 뭐든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이 강해질 수 있고, 더 유리하댔어.” (18∼19쪽)


“그래서, 오늘은 뭐 할 거야?” “그게 문제야. 시간은 남아돌고, 어슬렁거릴 수밖에 없으려나. 하지만 참 신기해. 작년 이맘때는 할 게 없어도 아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라니.” (40쪽)



  미타 노리후사 님이 빚은 만화책 《꼴지, 동경대 가다!》(랜덤하우스코리아,2010) 열아홉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이 만화책은 모두 스물한 권이고, 책이름에서 말하듯이 ‘학교 꼴찌’인 아이가 일본에서 동경대에 붙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학교 꼴찌’를 하던 아이라 하더라도 동경대학교에 붙도록 시험공부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할까요.


  그러면, 어떤 이는 이 만화책을 참고서 삼아서 ‘나도 서울대에 한번?’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참말 그렇지요. 서울대학교라고 해서 아무나 못 가는 곳이 아니라, 가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이 가는 곳일 테니까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공부가 무한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시험공부는 유한하구나. 그걸 알고 나니 얼마나 공부하면 좋을지 점점 보이게 되고, 약점을 극복하는 게 재미있어졌어. 마치 공부란, 정해진 크기의 판 위에서 하는 오셀로 게임 같아. 아직 칸을 전부 채우진 못했지만, 이기는 법을 알게 돼 돌을 놓을 때마다 게임판의 색이 순식간에 바뀌는, 그런 느낌이 너무 좋아.’ (46∼47쪽)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붙은 뒤 ‘대학교는 중·고등학교하고 다르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던 ‘다른 모습’은 대학교에 없었습니다. 고등학교까지 오직 시험공부만 해야 하던 학교 얼거리인데, 대학교에서도 똑같이 시험공부만 해야 하는 얼거리입니다. 중학교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바라보는 시험공부요, 고등학교는 대학교를 바라보는 시험공부인데, 대학교는 회사와 공공기관을 바라보는 시험공부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 대학교는 놀고 먹는 시험공부입니다. 한쪽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술잔치이고, 한쪽에서는 도서관에만 처박히는 시험공부입니다. 대학교조차 도서관이 ‘책 읽는 곳’이 아니라 ‘시험공부에 사로잡히는 곳’입니다.


  그러고 보면,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시험공부만 시키는 나라에서 대학교가 제대로 설 수 없겠구나 싶습니다. 이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내가 바보스럽다고 할 만합니다. 이 나라 교육이 제대로 섰다면, 중·고등학교 푸름이한테 시험공부만 우악스럽게 시킬 까닭이 없습니다. 한창 마음이 자라야 할 푸름이한테 삶을 가르쳐야 마땅한 중학교요 고등학교입니다.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 따위로 아이들을 길들이거나 괴롭히려는 중·고등학교가 아닌, 삶과 사랑과 사람을 슬기롭게 보여주면서 가르칠 줄 알아야 하는 중·고등학교여야 하지요.


  고등학교를 마치는, 또는 대입 시험을 치른, 앳된 젊은이는 손쉽게 술하고 담배를 손에 쥡니다. 술하고 담배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좋지도 않습니다. 그저 술하고 담배일 뿐입니다. 다만, 고등학교까지 학교나 사회나 마을이나 집에서 아이들한테 술하고 담배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주거나 가르치는 어른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대학교는 어떠할까요? 대학교 교수나 선배라는 사람은 술이나 담배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거나 가르칠 수 있을까요?



“큰맘 먹고 뒤로 물러나라. 거시적인 시점에서 수험에 임하기 위해 보다 높이, 위에서 보는 거야. 점점 높이, 기왕 하는 김에, 일본 상공에서, 지구 밖에서, 그리고 우주에서.” (69∼71쪽)


“그래서 어쨌는데 하는 얘기일 뿐이지.” “그래서 어쨌는데?” “설령 실전에 약한 타입이래도, 그게 어쨌다는 거냐, 그 말이야. 그렇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실전에 강해지도록 트레이닝해서 자기개혁을 하면 되는 것뿐이거든.” (119쪽)



  만화책 《꼴지, 동경대 가다!》는 훌륭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으며 재미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가 있습니다. 꼴찌이든 아니든 누구나 동경대에 가려고 하면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떤 일이든 스스로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꼴찌이든 일등이든 동경대에 못 들어가는 까닭은 ‘동경대’라고 하는 곳을 제대로 알거나 살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고, 동경대에 왜 들어가려고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나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려고 애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화책에서도 흐르는 이야기입니다만, 동경대에 가든 안 가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동경대에 가야 한다면 가야 할 뿐입니다. 들어가면 되지요. 한국에서 서울대에 굳이 가야 할까요? 한국에서 대학교에 굳이 가야 할까요? 더 생각해서,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꼭 마쳐야 할까요? 중학교나 초등학교를 구태여 다녀서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할까요? 대학교 졸업장뿐 아니라 초등학교 졸업장이 반드시 있어야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만할까요?



“넌 슛을 열 개 다 넣으려 했기 때문이야.” “슛 열 개를 다.” “반대로 난 어떻게 이겼을까? 그건 처음부터 대략 여섯 개만 성공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대략 여섯 개.” “일곱 개 넣으면 승리는 거의 확실하고, 다섯 개로도 어떻게든 비길 수 있을 거라고 계산했어. 그래서 처음 두 번은 빗나가도 당황하지 않았지. 반대로 넌 아무 대책도 없이 시합을 시작했을걸? 어때?” (154∼155쪽)



  삶은 졸업장으로 판가름할 수 없습니다. 삶은 은행계좌나 아파트 크기로 잴 수 없습니다. 삶은 얼굴 생김새나 몸매 따위로 따질 수 없습니다. 삶은 밥그릇이나 나이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삶은 오로지 삶으로 마주하면서 바라봅니다. 삶은 오직 사랑으로 가꿉니다. 삶은 오직 스스로 아름답게 일어서는 웃음꽃으로 기쁘게 돌볼 수 있습니다.


  시험공부를 하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어떤 시험에 꼭 붙어서 어떤 일을 하겠노라 하는 꿈이 있으면 시험공부를 신나게 하고 기쁘게 하며 재미나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시험을 마쳤으면 새로운 마음과 몸이 되어서 ‘삶 배우기’로 나아가면 돼요.


  우리는 저마다 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저마다 다른 기쁨을 누리려고 이 땅에 태어납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다 다르면서 모두 뜻있고 값있으면서 아름다운 삶을 지으려고 이 땅에 태어납니다.


  삶을 가르치고 배울 때에 즐겁습니다. 삶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스러운 너와 내가 만나서 어깨동무를 하면 아름답습니다. 한 걸음을 내딛고 두 걸음을 뻗습니다. 세 걸음을 디디고 네 걸음을 폴짝 뛰어오릅니다. 배우는 길은 즐겁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답지만, 시험공부에 얽매이는 길은 괴롭고 따분하며 힘듭니다. 우리는 어느 길을 걸어야 할까요? 4348.9.2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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