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좌파 음식우파 - 음식으로 엿본 현대인의 정치 성향
하야미즈 켄로 지음, 이수형 옮김 / 오월의봄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32



‘바른 밥’을 먹기에 ‘좌파’ 아닌 ‘착한 넋’

― 음식 좌파 음식 우파

 하야미즈 켄로 글

 이수형 옮김

 오월의봄 펴냄, 2015.9.15. 13000원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차려 주는 밥이면 다 맛있고 좋았습니다. 다만,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한 가지는 알았습니다. 정부미는 맛없고 일반미는 맛있었어요. 정부미에는 늘 바구미가 끓었고 일반미에는 바구미가 드물었습니다.


  나는 어릴 적에 못 먹는 것이 아주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냉면이나 치즈나 요플레나 김치나 삭힌 것은 도무지 안 받았습니다. 달걀도 한 달쯤 안 먹다가 먹으면 어김없이 배앓이를 했고, 우유도 똑같았습니다. 이제 치즈나 요플레나 김치를 먹을 수 있는 몸이 되었으나 냉면은 아직 몸에서 안 받습니다.


  내 어린 날, 깨끗한 밥이나 제대로 된 좋은 밥을 생각하는 어른은 드물었다고 느낍니다. 그무렵에는 ‘깨끗한 밥’은 아주 마땅한 노릇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인공감미료가 방송과 신문 광고로 엄청나게 퍼지기도 했어요. 어느 한쪽으로는 누구나 제대로 된 밥을 스스로 지어서 먹었습니다만, 끓는 국을 플라스틱 국자로 떠서 플라스틱 그릇에 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원전 사고 이후 음식의 안전성을 둘러싼 갈등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고 이후 아이들에게 주는 음식의 안전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엄마와 무관심한 아빠 사이의 갈등이 결국 이혼에까지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방사능 이혼’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14쪽)


육류 1킬로그램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곡물은 8킬로그램이다 … 육류 생산은 곡물 자체에 비해 훨씬 더 비효율적이다. (31쪽)


런던에서 가장 반정부적인 존재는 정부나 여왕을 비판한 펑크록 밴드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가닉 야채를 파는 이들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48쪽)



  먹을거리를 놓고 ‘좌파’하고 ‘우파’를 갈라서 바라보는 《음식 좌파 음식 우파》를 읽습니다. 이 책을 쓴 분은 ‘일본 남성’입니다. 글쓴이 하야미즈 켄로 님은 여러모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밥이 태어나는 자리’를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서 이론으로 섣불리 들이미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옵니다. 이를테면, 유기농 푸성귀가 ‘상위 2퍼센트’가 바라는 먹을거리라고 되풀이하는 대목을 들 만한데,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로구나 싶습니다.


  이 책을 쓴 분이 아이를 낳아서 손수 길렀으면 이런 말을 안 하겠지요. 왜냐하면, ‘좌파’도 ‘음식 좌파’도 ‘우파’도 ‘음식 우파’도 아닌 무척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이나 ‘자연농’을 찾습니다. 적어도 ‘친환경’을 찾으려 하고, ‘무농약’이라는 말이 눈에 뜨이면 덥석 집지요.


  왜 그러할까요? 아직 일본이나 한국도 남녀 성평등하고 동떨어진 채 ‘여성이 집안일을 도맡기 일쑤’입니다. 아기를 낳은 여성(어머니)은 아기가 먹을 밥을 챙기면서 오늘날 모든 아기한테 생기는 아토피 때문에 그야말로 죽을맛입니다. 아기는 가렵다고 자꾸 긁으면서 살갗은 피가 철철 흐르지만 긁기를 멈추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그저 옆에서 눈물을 흘릴 뿐 아이한테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아토피에 바르는 연고는 아토피를 뽑아내거나 없애지 못하고 ‘살갗에 피가 더 흐르지 않고 아물도’록 할 뿐입니다. 좌파도 음식 좌파도 아닌 ‘아토피 아이를 둘 수밖에 없는 오늘날 모든 어머니’는 누구라도 ‘유기농·자연농·무농약·친환경’에 눈길을 두고 마음을 기울입니다. 약도 병원도 아토피를 고칠 수 없는 줄 온몸으로 느끼고 날마다 아기를 쳐다보면서 깨닫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유기농이나 자연농에 눈길을 두지만, 이내 ‘플라스틱 조리기구와 그릇과 물잔’마저 몸에 나쁜 줄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집안 살림을 싹 바꾸지요. 그리고, 아기한테뿐 아니라 ‘아무것이나 아무렇게나 먹는 어른(거의 남성, 아버지)’도 아기한테 생기는 아토피를 부채질하는 줄 깨닫습니다. 어른(남성, 아버지)이 아무것이나 먹으니 아기도 아무것이나 따라서 먹고 싶어 해요. 그래서 여성(어머니)은 집식구 모두 ‘밥을 바꾸어야 할’ 뿐 아니라 살림과 삶도 바꾸어야 한다고 깨닫습니다.



유기농 생산비율을 높이면 건강하고 맛있는 야채를 원하는 상위 2퍼센트의 소비 만족도는 채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 세계 식량 사정 자체를 개선시켜 주진 않는다. 오히려 이 같은 생산 방식이 나머지 98퍼센트 사람들의 식생활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160쪽)



  이 책을 쓴 일본 남성은 이런 대목을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사능 이혼’이 ‘일본 여성(어머니)’으로서 얼마나 뼈맺히고 사무쳐서 나오는 힘든 결정인가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방사능 이혼’을 다짐하는 일본 여성은 좌파도 음식 좌파도 아니에요. 아기를 사랑하는 여성(어머니)일 뿐입니다. 아기를 사랑하는 살림을 꾸리면서 아기 어머니는 어느새 유기농을 공부합니다. 스스로 공부하여 ‘유기농 제품’을 사려고 찾다가 어느새 손수 텃밭을 지으려 합니다. ‘음식 좌파’로는 정의내리거나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유기농은 ‘나머지 98퍼센트하고 동떨어진’ 농사법이 아닙니다. 100퍼센트 모든 사람을 생각하려는 농사법이고, 유기농으로는 모자라기 때문에 ‘자연농’이 차츰 퍼지지요. 좌파뿐 아니라 우파도, 음식 좌파뿐 아니라 음식 우파도, 늘 먹고 마시는 밥과 물과 바람이 ‘깨끗하고 좋은’ 데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도시 문명을 차마 떠날 수 없기 때문에 밥과 물과 바람이 깨끗하거나 좋은 데로 못 가기 마련입니다.



유전자조작작물은 우리가 이미 10년 이상 소비해 왔다. 그리고 의료 분야에서는 유전자조작으로 만든 인슐린을 이용해 몇 백만 명의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하지만 ‘유전자조작 인슐린이나 작물이 환경, 혹은 사람 건강에 유해한 부작용을 끼쳤다’는 사례 보고는 아직 한 건도 없다. (167쪽)



  《음식 좌파 음식 우파》를 쓴 일본 남성은 ‘유전자조작’ 인슐린과 작물이 어떤 사람한테도 나쁜 영향이나 부작용을 끼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음식 좌파도 음식 우파도 아닌 ‘여느 어머니’ 가운데 이렇게 생각할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느낍니다. 왜 그러할까요? 아무런 나쁜 영향이나 부작용을 끼치지 않았는데 왜 오늘날 모든 아기는 아토피를 달고 태어날까요? 99.9퍼센트도 아닌 100퍼센트 모든 아기가 아토피를 달고 태어납니다. 주의력결핍장애라고 하는 이름이 붙는 아기는 왜 해마다 더욱 많이 늘어날까요?


  왜 오늘날에는 아이들한테 예방주사를 그렇게 많이 엄청나게 자꾸 자주 맞히려고 할까요? 그렇게까지 예방주사를 맞히지 않고서는 아이들 몸이 버틸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화학약품으로 지은 관행농 농사로 거둔 먹을거리를 먹기 때문에 화학약품으로 늘 처방을 해야 할 수밖에 없고, 다시 화학처리를 한 것들로 살림집을 뒤덮어야 하는 얼거리가 아닐는지요?


  한국이나 일본 모두 예방주사를 안 맞히려는 어머니가 무척 많이 늘어납니다. 예방주사를 안 맞히면서 아무 병에 안 걸리고 아토피를 씻어내는 슬기로운 길을 찾는 어머니가 매우 많이 늘어납니다. 이들 ‘어머니’는 음식 좌파일까요, 아니면 음식 우파일까요. 또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저 ‘어머니’일까요.


  음식을 놓고 좌파와 우파를 갈라서 인문 지식을 펼치는 일은 재미있습니다. 다만, 밥은 삶하고 곧바로 이어집니다. 삶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지식과 철학과 이론으로만 밥을 다루려고 하면 그만 삶하고 동떨어집니다. 오늘날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저 어머니’인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유기농을 찾고 손수 텃밭을 지으려고 소매를 걷어붙일 뿐 아니라 생협 회원이 되고, 아예 도시를 떠나 시골로 삶터를 옮기려고 하는 까닭을 《음식 좌파 음식 우파》를 쓴 일본 남성은 하나도 못 헤아립니다.



음식 좌파가 가진 반과학주의는 세계의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난 가능성에 매우 냉담하다. 유기농법의 보급이 세계 기아에 치명적인 존재가 될 가능성, 그리고 음식 좌파가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지키는 게 세계 빈곤층에게 위협이 된다는 음식 좌파의 딜레마에 대해 앞서 5장에서 다뤘다. (207쪽)



  ‘유기농이 세계 인구 증가를 위협한다’는 말은 그야말로 터무니없습니다. 세계 인구와 식량에 위협이 되는 것은 유기농이 아니라 군부대와 전쟁무기입니다. 군부대와 전쟁무기는 얼마나 많은가요? 지구별 모든 정부는 군부대와 전쟁무기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쏟아붓습니다. 도시나 시골을 깨끗하게 가꾸는 데에는 거의 돈을 한푼도 안 쓴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군사강대국은 끝없이 핵무기 실험을 합니다. 전쟁무기 실험을 하면서 방사능이 끝없이 지구별을 떠돕니다.


  게다가 대형 발전소와 원자력 발전소야말로 땅을 더럽히면서 ‘유기농이든 관행농이든’ 모두 위험한 먹을거리가 되도록 합니다. 몇 해 앞서 일본에서 터진 끔찍한 일 뒤로, 일본에서는 ‘일본에서 난 것’이 방사능에 얼마나 찌들었을까를 걱정하는 사람이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퍼졌어요. 바로 이런 방사능 피해, 원자력 발전소와 대형 발전소, 군부대와 전쟁무기, 끝없는 막개발, 농약을 퍼붓는 골프장, 조용한 숲을 갈아엎는 대형 관광단지, 대형 발전소에서 이어지는 엄청난 송전탑, …… 이러한 것들 때문에 ‘깨끗한 바람이 태어나는 숲’이 망가지고 ‘깨끗한 먹을거리를 낳는 논밭’이 무너집니다.


  세계 빈곤층한테 위협이 되는 것은 유기농이 아니라 ‘철없이 멈출 줄 모르는 첨단과학 도시문명’과 ‘군부대와 전쟁무기’입니다.



내가 음식 우파에서 음식 좌파로 전향한 이유는 ‘맛과 재미’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특히 건강에 대한 바람 때문도 아니고, 독을 몸에서 배출하고 싶다는 해독 작용과도 무관하다. 하지만 한번 신선한 유기농 식재와 자연식 레스토랑에 익숙해지면 패스트푸드를 섭취하는 데 일정 부분 혐오감이 생긴다. (212쪽)



  《음식 좌파 음식 우파》를 쓴 일본 남성은 ‘음식 우파’에서 ‘음식 좌파’로 돌아섰다고 합니다. 이러면서 ‘음식 좌파’란 누구인가를 이 책에서 길게 펼쳐서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글쓴이는 ‘맛과 재미’ 때문에 음식 좌파가 되었다고 말하는데, 유기농이나 자연농 먹을거리로 밥을 차려서 먹는 사람은 패스트푸드(음식 우파)와 공장 제품(음식 우파)으로 밥을 차려서 먹는 사람하고 사뭇 다릅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유기농이나 자연농을 먹는 사람은 ‘과식’을 안 합니다. 많이 안 먹습니다. 아니, 유기농이나 자연농으로 먹는 사람은 으레 ‘소식’을 합니다. 일부러 적게 먹지 않습니다. 유기농이나 자연농은 ‘무게나 부피로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패스트푸드나 공장 제품은 ‘값싸고 양 많이’를 내세웁니다. 음식 우파라고 하는 밥차림은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이 먹는 길을 간다고 하는데, 패스트푸드나 공장 제품은 더 먹고 또 먹어도 배가 제대로 차지 않습니다. 그래서 으레 과식을 하지요. 게다가 값이 싸다는 것 때문에 자꾸 과식을 합니다.


  유기농이나 자연농은 한결 더 맛있다고 할 테지만, 이보다는 ‘적은 부피와 무게’에도 영양소와 칼로리가 제대로 알차게 깃들기 때문에 조금만 먹어도 배가 찬다고 느낍니다. 유기농이나 자연농 먹을거리는 ‘값이 비싸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막상 유기농이나 자연농 먹을거리는 으레 ‘소식’을 하면서도 배가 부르면서 즐겁기 때문에 ‘패스트푸드나 공장 제품을 값싸게 많이 사서 먹을 때’보다 돈이 적게 들기까지 합니다.


  더군다나, 유기농이나 자연농으로 밥을 차려서 먹으면, 소식뿐 아니라 때때로 금식이나 절식을 합니다. 어느 때에는 단식을 하지요. 왜 이렇게 하느냐 하면, 유기농이나 자연농으로 밥을 차려서 먹으면 ‘몸과 마음이 부르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에요. 몸이 바라는 대로 ‘적게 먹’고 ‘알맞게 먹’으며 ‘즐겁게 먹’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뱃속을 가볍게 비우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밥을 한두 끼니쯤 건너뛰고, 하루나 며칠쯤 가볍게 밥굶기(단식)를 하면서도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사람은 사는 장소가 도시인지, 교외인지, 농촌인지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그리고 다니는 학교나 사는 동네에 따라서도 크게 다르다. (213쪽)



  유기농이나 자연농 먹을거리를 ‘관행농 먹을거리’하고 똑같은 부피와 무게로 먹어야 한다고 여기는 일은 그야말로 이론입니다. 삶으로 살림을 짓고 아이를 돌보며 살다 보면, 이론과 삶은 너무 동떨어지는 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패스트푸드나 공장 제품, 이른바 치킨이나 과자나 피자나 햄버거 같은 것을 밥상에 올리면 많이 먹었는데에도 손이 그치지 않아요. 자꾸 더 먹으려고 해요. 이와 달리 유기농이나 자연농 ‘식재료’로 지은 밥이나 주전부리를 주면, 배가 불러서 더 못 먹겠다고 남기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몸이 움직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삶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집니다. 살림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마음이 달라집니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몸을 떠나서, 아이하고 어떻게 하루를 짓느냐 하는 몸짓에 따라 그야말로 모든 삶과 살림과 사랑과 꿈이 달라지지요.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음식의 양극화는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건 ‘공업 제품이 된 음식’이다. (64쪽)


유기농업이 지역 내 농가 한 곳만 나서선 큰 효과를 얻기 어렵다. 헬리콥터로 일제히 농약을 살포하는 과정 자체도, 규모 이점도 무의미해질 뿐이다. (93쪽)


그들이 야사토에 정착해 농업 설비를 갖추고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삼은 건 ‘근대 농업’이었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대량으로 살포해 효율을 중시하고, 규모를 확대하는 논리로 수확량을 늘리는 공업화된 농업’이 바로 근대 농업이다. (95쪽)



  좌파도 우파도 아닌 ‘수수한 여느 어머니’는 비료나 농약을 쓴 곡식이나 열매나 푸성귀를 아이한테 안 먹이려고 합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며 이 모습을 아주 재미있게 지켜봅니다.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지내며 가만히 둘러보면,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사는 분들은 하나같이 ‘아이 아토피’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데, 시골에 계신 늙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농약과 비료로 지은 곡식이나 푸성귀’를 반기지 않아요. 도시에서 사는 ‘시골 출신’으로서 어떻게 짓는지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생협 매장을 따로 찾아가서 농약과 비료를 안 친 먹을거리를 아이들한테 먹이려고 애씁니다. 이러면서 시골 어머니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해요. 시골에 있는 늙은 어머니와 아버지도 이녁 손자를 생각해서 ‘농약과 비료와 비닐을 버리는 농사법’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냥 관행농으로 익숙한 대로 농약을 치고 비료를 듬뿍 뿌리고 언제나 비닐로 온 땅을 뒤덮습니다.


  도시에 있는 ‘시골 출신’은 ‘어머니 손맛’을 생각해서 먹을 뿐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머니 손맛’만으로 이녁 아이한테 밥을 챙겨 줄 수 없는 줄 알기에, ‘시골 출신 도시사람’은 도시에서 생협 매장을 찾고 ‘깨끗한 유기농이나 자연농’을 찾습니다.



오가닉 가게는 도심에서만 가능하고 인구가 적은 지방에서는 성립되기 어렵다 … 인구가 밀집한 도시에서는 다양성이 보장되고 그에 따른 선택지도 많다. 하지만 지방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인구 직접도가 낮기 때문에 선택지는 최저한의 획일적인 것만 제시되기 쉽다. (123, 125쪽)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근대 농법’이 나타나기 앞서, 한국도 일본도 지구별 어느 나라도 모두 ‘자연농’이거나 ‘유기농’이었습니다. 요즈음 갑자기 생긴 자연농이나 유기농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새마을운동 앞서까지, 햇수로 치면 1960년대까지 한국에서 지은 모든 농사는 자연농이자 유기농이었어요. 아무도 농약이나 비료나 비닐을 안 썼어요. 그리고, 그무렵에는 ‘흙 파서 먹는 아이’가 많았고, 온갖 풀을 골고루 잘 먹었습니다. 이무렵에는 기생충은 몸에 있더라도 아토피는 아무한테도 없었습니다. 기생충은 약이나 약초로 다스릴 수 있었고, 아토피란 아무한테도 없으니 가끔 과자나 공업 제품을 먹어도 큰 탈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밥만 먹는 사람은 ‘공업 우유’조차 꺼리거나 몸에서 안 받았습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자연농이자 유기농으로 땅을 일구던 지난날에는 모든 사람이 ‘음식 좌파’였을까요? 《음식 좌파 음식 우파》는 이러한 대목을 조금 더 깊고 넓게 차근차근 짚을 수 있어야 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우리가 먹는 밥을 놓고 섣불리 좌파와 우파로 가르기 앞서, ‘바른 밥’과 ‘맛난 밥’과 ‘즐거운 밥’과 ‘사랑스러운 밥’과 ‘아름다운 밥’이 무엇인가를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맛과 재미” 때문에 음식 좌파가 되었다고 하는 글쓴이라면, 바로 이 대목을 더 제대로 짚거나 살폈어야지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지구별 빈곤과 기아를 낳는 것은 ‘유기농’이 아닌 ‘군부대와 전쟁무기와 막개발’ 따위 때문이라는 대목을 슬기롭게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4348.9.2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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