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꽃 10
오시미 슈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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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57



깨어나고 싶은 어린 버러지

― 악의 꽃 10

 오시미 수조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6.25. 4500원



  오시미 수조 님이 빚은 만화책 《악의 꽃》(학산문화사,2014)은 처음부터 끝까지 ‘버러지’ 이야기입니다. 온누리 모든 것이 온통 ‘버러지’일 뿐이라고 느끼는 아이가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온누리 모든 것이 버러지로밖에 안 보이는 아이도 스스로 버러지예요. 너도 버러지이고 나도 버러지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어찌저찌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저 멍하니 집에서 나오고, 그저 멍하니 학교에 가서 자리에 앉으며, 다시 멍하니 집으로 돌아오고, 언제나처럼 멍하니 버러지한테 잡혀먹는 꿈에 사로잡힙니다.



‘죽는다. 죽어간다. 할아버지는 죽어가는 거야. 이 마을에서 태어나, 이 마을에서 죽어간다. 원래는, 나도 그랬다. 나는 이 마을을 떠나,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다. 이 마을, 이 마을은 대체 뭘까?’ (20∼21쪽)



  스스로 버러지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버러지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내가 스스로 버러지라서 내가 나쁘거나 좋지 않습니다. 내 눈에 네가 버러지로밖에 안 보이더라도 네가 나쁘거나 좋지 않습니다. 그저 버러지일 뿐입니다.


  그러면, 버러지란 무엇일까요? 이제 중학생 티를 살짝 벗어나서 고등학생이 되는 아이들은 어떤 버러지일까요?


  바로 ‘어린 버러지’입니다. 단출하게 줄여서 ‘아기 버러지’요 ‘애벌레’입니다. 새롭게 깨어나고 싶은 애벌레입니다. 꼬물꼬물 기는 몸짓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애벌레 삶은 끝내고, 어떤 모습으로든 새롭게 깨어나고 싶은 애벌레입니다.



“난 나나코를 잡을 수 없었어. 난 너희를 쫓아냈어. 왜 그랬지? 왜 그랬을까? 난 어떡해야 했던 거지? 난 내내 버려졌어. 이 마을에 갇혀서는 내내.” (76쪽)



  《악의 꽃》 열째 권에 나오는 사내 아이는 몸부림을 칩니다. 이제 더 ‘옛 굴레’에 얽매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옛 생각에 사로잡혀서 앞으로는 한 발짝도 못 떼는 바보스러우며 우스꽝스러운 제 모습을 떨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남을 탓할 일이 없습니다. 남을 탓할 까닭이 없습니다. 남을 탓할 수 없습니다. 바뀌는 사람도 나요, 안 바뀌는 사람도 나입니다. 바뀔 사람도 나요, 바꾸도록 힘을 쏟는 사람도 나예요.


  아무도 나를 가로막지 않습니다. 아무도 나를 해코지하지 않으며,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오직 내 마음이 나를 좀먹습니다. 오직 내 마음이 나를 들볶습니다. “나쁜(악) 녀석 같은 꽃”은 바로 내가 내 마음에 심었지, 남이 내 마음에 심지 않았어요. 나쁜 녀석이라는 생각은 바로 내가 나한테 한 말이지, 남이 나한테 한 말이 아닙니다.



“도키와. 축하해. 하지만, 지금의 난, 이 소설을 읽을 수 없어. 꼭 해야 할 말이 있어.” (118∼119쪽)



  한 걸음을 새롭게 내딛을 수 있어야 사랑을 합니다. 한 걸음을 새롭게 내딛을 때라야 삶을 짓습니다. 한 걸음을 새롭게 내딛는 몸짓이라면 이제부터 비로소 사람입니다.


  사랑하고 삶하고 사람을 생각하기에 ‘버러지’로 남을 수 없습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똑같아요. 그냥 버러지로 살 수 없습니다. 나도 너도 서로 버러지인 채 살 수 없습니다. 나도 너도 버러지라고 하는 몸을, 애벌레라고 하는 몸을, 철없고 바보스러운 몸을, 이제는 훌훌 내려놓고 ‘새로 깨어나는 숨결’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이제는 애벌레 아닌 나비가 되어야지요. 꼬물꼬물 기는 삶이 아니라, 눈부시게 훨훨 나는 삶으로 피어나야지요.



“너무 이기적이잖아. 난 소설을 읽어 달라고 햇을 뿐이라고. 나랑은 상관도 없는 일이잖아. 그저 토해내고 싶었던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뭔데?” “더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어. 이대로 네겐 계속, 아무 말도 않고 지내려고 했어.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걸 떠넘기는 건 이기적인 거라고. 하지만 과거는 지울 수 없어. 돌고 돌아 내 앞을 가로막아.” (132∼134쪽)



  만화책에 나오는 사내 아이는 ‘옛 굴레’를 끌어안을 마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좀 두렵습니다. 아직 혼자서는 못 할 듯합니다. 그러나 혼자서 해야 하는 줄 압니다. 그래서 가장 가깝고 마음이 맞는 벗님한테 찾아가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앙금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이야기를 합니다. 짐을 나누어 달라는 뜻이 아니라, 곁에서 손을 잡아 달라고, 곁에서 지켜보아 달라고, 씩씩하게 한 걸음을 내딛을 테니 사랑스러운 눈망울로 이 길을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걷자고, 비로소 말문을 열고 이야기를 꺼냅니다.


  자, ‘아직 앳된 버러지’인 세 아이는 앞으로 어떤 길을 갈까요? 어설프고 철없는 버러지인 세 아이는 앞으로 저마다 어떤 삶을 지을까요? 그리고, 이 세 아이를 둘러싼 수많은 다른 ‘철없고 여린 버러지’인 아이들은 먼먼 앞날에 저마다 어떤 삶을 지을까요? 눈물겨우면서 웃음꽃이 피는 삶입니다. 4348.9.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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