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이의 과학 공부 - 열여섯 살 손녀와 물리학자 할아버지가 나누는 즐거운 과학 토크
장 마르크 레비 르블롱 지음, 문박엘리 옮김, 김희준 해제 / 휴머니스트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12



‘생각하는 과학’일 때에 아름답다

― 프랑스 아이의 과학 공부

 장마르크 레비르블롱 글

 문박엘리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2015.8.24. 1만 원



  몸을 크게 다친 적이 있는 사람은 다친 데가 다 낫기까지 어느 만큼 걸리는가를 알고, 몸을 크게 다치면서 여느 때하고는 사뭇 다른 삶을 압니다. 태어날 적부터 몸이 여리다든지 몸 한쪽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사람은 여린 몸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몸 한쪽을 마음대로 쓰지 못해서 못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압니다.


  몸을 다친 적이 없거나 몸 한쪽을 못 쓰는 일이 없는 사람은 몸을 다친 사람이 어떠한가를 알지 못할 테고, 몸 한쪽을 못 쓰는 사람이 어떠한 마음인가를 알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어렴풋이 헤아릴 수는 있을는지 몰라도 ‘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니, ‘안다’고 할 수 없을 테지요.


  나는 스물사흗날 앞서 다친 오른무릎 때문에 벌써 스물사흗날째 제대로 못 걷습니다. 요즈음에는 제법 걷기도 하고 두 다리로 가만히 설 수 있기도 하지만, 한자리에서 삼십 분 즈음 서서 부엌일을 하면 이내 주저앉습니다. 아이들이 먹을 밥을 차리고 나면 함께 수저를 들 기운이 없어서 자리에 드러누워야 합니다.


  이제껏 겪지 못한 일을 겪으면서 곰곰이 돌아봅니다. 이웃이 아프거나 힘든 삶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테두리를 넓혀서 ‘서민을 안다’고 말하는 일이라든지 ‘가난하거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복지 정책’을 펴는 사람들은 무엇을 ‘안다’고 할 만한가 하고 돌아봅니다.



기구들로 실험하고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기구를 통해 관측한 결과와 얻어낸 영상을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거든. 바로 그때 우리 머리, 말하자면 생각하는 기구가 필요한 거야. 실험을 구상하고 도구를 만들 때 벌써 머리를 쓴 것처럼 말이지. (13쪽)


특히 젊은 연구자들은, 대규모 실험의 특정 부분에 대해서만 작업할 수밖에 없어서 자기가 거대한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처럼 느껴지는 게 불만이겠지. (16∼17쪽)



  장마르크 레비르블롱 님이 쓴 《프랑스 아이의 과학 공부》(휴머니스트,2015)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은 할아버지가 손녀한테 들려주는 ‘이야기’ 얼거리로 과학을 밝히거나 다루는 청소년책입니다. ‘물리학자 할아버지’가 열여섯 살 손녀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학교에서 교사가 가르치는 교과서 지식하고는 좀 다르다고 할 만합니다. 무엇보다도 할아버지는 오직 한 사람한테만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학교에서 교사는 적어도 스무 아이나 서른 아이를 마주보면서 교과서 지식을 ‘진도 맞추기’에 따라서 들려주어야 한다면, 할아버지는 오직 이녁 손녀 눈높이에 맞추어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내겐 아주 큰 장점이 있다는 거야. 그 장점은 내가 오류를 범할 거라는 걸 미리 안다는 사실이지. (25쪽)


과학을 한다는 게 오로지 연구만 뜻하지는 않으니 다행이지 뭐냐. 그건, 모든 과학자에게 마찬가지일 텐데, 가르치는 것이고 설명하는 것이기도 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 낼 뿐만 아니라 나누는 거야. (25∼26쪽)



  《프랑스 아이의 과학 공부》에서 다루는 ‘과학’은 자연과학일까요? 아무래도 물리학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과학이니까 자연과학이라 할 테지만, 이 책을 곰곰이 읽다 보면, ‘과학’은 ‘자연과학’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를 돌아보아도 손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과학’이나 ‘인문사회과학’이라는 말을 흔히 써요.


  그러니까, 과학은 ‘실험실 과학’과 ‘생각하는 과학’ 두 가지가 있는 셈입니다. 실험실 과학은 기계나 기구를 써서 ‘숫자를 따지는 정보에 맞추어서 지켜보는’ 과학이라 할 수 있고, 생각하는 과학은 ‘어떤 틀과 얼거리를 먼저 세운 뒤에 이러한 틀과 얼거리가 얼마나 알맞거나 올바른가 하고 따지는’ 과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자도 ‘실험 물리학자’하고 ‘이론 물리학자’가 있지요.


  그런데, 실험 물리학자라고 해도 ‘생각 없는’ 과학은 할 수 없습니다. 실험을 하려면 ‘무엇을 실험하려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을 실험할는지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왜 실험하려는가를 생각하고, 무엇을 어떻게 실험하려는가를 생각합니다. 이러면서 무엇을 실험하는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네가 배우는 탈레스와 피타고라스의 정리들을 설계사와 목수와 측량사 들이 활용하지 않은 게 분명한데, 그건 그 장인들이 대개 노예였다는 단순 명료한 사실 때문이야. 그들은 노예라서 글을 읽을 줄 몰랐고, 남성 자유인에게만 허락되던 이론 지식에 접근할 수가 없었어. (38∼39쪽)


“그리스인들은 수학을 왜 했어요?” “생각하기 위해서!” (40쪽)


한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다른 모든 사람은 아니라도 여러 사람이 할 수 있다는 거야! (47쪽)




  《프랑스 아이의 과학 공부》이라는 청소년 인문책 40쪽 첫머리에 나오는 말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옛 그리스 사람들은 “생각하려”고 수학을 했다고 합니다. 자, 그러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중·고등학교 푸름이는 왜 수학을 할까요? 교과서로 가르치니까? 학교 수업이니까? 시험을 보아야 하니까? 대학입시를 치러야 하니까?


  자연과학하고 인문과학이라 말하듯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수업은 ‘과학’입니다. 수학과 물리·화학·생물만 과학이 아니라, 국어와 영어와 역사와 철학도 모두 과학입니다. 모든 수업은 과학이고, 모든 가르침은 과학입니다. 그리고, 모든 수업과 가르침이 과학이듯이, 모든 수업과 가르침은 굳이 과학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아도 돼요. 모든 수업과 가르침은 바로 ‘생각’을 하도록 이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학을 하는 까닭뿐 아니라, 자연과학이나 실험실 과학을 하는 까닭도 생각을 하도록 북돋우려는 뜻입니다. 첨단과학이 나와서 첨단기기를 만드는 까닭도 생각을 키우거나 가꾸려는 뜻입니다. 생각을 펼치지 않는다면 과학이 아니요, 생각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과학이 아닌 셈입니다.



과학자도 자기 자신의 인품과 문화적 교양과 철학 견해와 심리적 상태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65쪽)


늘 새로운 우주의 면모를 발견한다는 건 정말 멋지거든. 그런데 이런 새로움이 더 멀거나 더 작은 대상을 연구할 때만 드러난다고 생각하지는 말아라. 우리 세계는 여전히 놀라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단다. (68쪽)


대개는 너희 선생님들도 그런 설명을 듣지 못했어! 암튼 이제 주저하지 말고 선생님께 그 말들이 언제 어디서 왔는지를 여쭤 봐. 만약 선생님이 바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분명히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네가 한 질문에 대해 고마워할 거야. (76쪽)



  과학자가 생각을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정치권력자가 큰돈을 대면서 전쟁무기를 만들라고 시키면 과학자는 이 말대로 따르겠지요. 큰 부자가 큰돈을 대면서 이녁 잇속을 채우려는 기계나 기구나 기기를 만들라고 시키면 과학자는 또 이 말대로 따를 테고요.


  생각을 하지 않는 과학자는 자연과학이든 실험실 과학이든, 아주 무시무시하고 무서우며 모진 자리에 함부로 쓰는 일에 몸을 바치고 맙니다. 생각을 하는 과학자일 때라야 비로소 ‘실험’이나 ‘이론’을 함부로 펼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전쟁무기를 만들어 낸 사람은 바로 과학자입니다. 모든 전쟁무기가 일으킨 전쟁을 떠올린다면, 과학자야말로 이 지구별에 끔찍한 전쟁을 끌어들인 ‘바보’이자 ‘멍텅구리’라고까지 할 만합니다. 다만, ‘생각 없는 과학자’가 끌어들인 전쟁이라고 해야겠지요.


  이리하여, 과학자뿐 아니라 정치 지도자도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생각하지 않는 정치 지도자는 무슨 짓을 할까요? 독재를 하고 전쟁을 일으키려 하며 사회와 문화와 교육 모두 꽁꽁 억누르거나 짓밟는 바보짓을 하고야 맙니다.



연구를 시작할 때 제기한 질문들 대부분은 난관에 부딪히기 마련이고, 질문이 너무 복잡하거나 잘못 제기되어서 답이 없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다시, 또다시 그 질문이 목적지에 닿는 길로 나아갈 때까지 질문을 거듭 손질해야 해. (91쪽)


여러 직업을 수행하고 개인 생활을 꾸려 가는 데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많은 물건이 과학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라. 게다가 어떤 면에서 보면, 인류가 만들어 쓰는 물건들 중 대부분이 정말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어. (95쪽)



  학교가 맡은 몫은 ‘가르침’입니다. 다만, 그냥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닙니다. 슬기롭게 생각하도록 이끌면서 가르칠 노릇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처럼 오직 입시지옥으로 치달아 대학바라기로 내모는 학교가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어린이와 푸름이 모두 스스로 슬기롭게 생각해서 아름답게 삶을 짓는 길을 북돋우는 학교여야 합니다.


  자연과학도 아이들이 ‘생각하는 사람’으로 이끌어야 하고, 인문과학도 아이들이 ‘생각하는 사람’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면서 즐거운 삶을 빚는 길로 펼치도록 해야지요. 남을 괴롭힌다거나 이웃을 밟고 올라서는 ‘못난 생각’이나 ‘어리석은 생각’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핵 개발의 ‘성공’으로 과학과 기술의 결합이 강화되었다는 걸 네가 알아 두면 좋겠구나. 이때부터 과학적 발견을 기다렸다가 응용하기보다는 응용할 수 있는 지식을 생산하도록 연구의 방향을 이끌고 고무하게 된 거야. 군대와 기업이 과학 연구에 많은 자본을 대어 군사력을 키우고 시장에 첨단 기술 제품을 공급하지. 과학은 점점 더 많은 돈을 받고 연구자는 점점 더 늘어나서 더 크고 복잡한 장치를 만들고 ……. (105쪽)



  《프랑스 아이의 과학 공부》라는 책은 ‘과학 공부’가 무엇인가를 넓고 깊게 다룹니다. 교과서를 외우기만 해서는 되는 일이 공부가 아닌 줄 알려줍니다. 첨단 제품이나 기술로 뻗기만 하는 일이 과학이 아닌 줄 알려줍니다.


  그나저나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쉽다면, 물리학자 할아버지가 과학을 손녀한테 들려주는데 양자물리학은 한 마디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모두 고전물리학 테두리에서 과학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고전물리학 테두리에서 과학을 이야기하더라도, 과학이 ‘실험실 기계 다루기’로 좁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대목을 잘 보여줍니다. 과학은 바로 삶을 가꾸는 수많은 길 가운데 하나라는 대목을 잘 보여주지요. 그리고, 집에서 빵을 굽거나 밥을 짓는 일부터 수많은 살림살이와 사람살이는 ‘과학이 처음부터 끼어들지 않았’어도 아주 오랫동안 지구별 모든 삶과 문화를 아름답게 가꾸어 왔다는 대목까지 잘 보여줍니다.


  이 책이 들려주는 가장 크고 뜻있는 대목이라면 바로 ‘열여섯 살 손녀한테’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삶이 얼마나 즐거운 꿈으로 나아가는가’ 하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쉽고 따사로이 짚어서 알려주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알려고 하기에 과학이 태어나고, 새롭게 알되 슬기롭게 알려고 하기에 과학이 태어납니다. 새로우면서 슬기롭게 알되 아름답게 알려고 하기에 과학이 자라고, 새로움과 슬기로움과 아름다움에 사랑스러움을 함께 껴안기에 과학이 튼튼하게 섭니다. 한국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어른들 모두, 또 한국에서 정치와 경제와 문화를 펼치는 어른들 누구나, 아름답게 생각하고 슬기롭게 생각하는 마음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4348.9.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청소년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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