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고 싶다면 보고 싶다는 뜻



  아이들하고 논둑길을 거닐다가 억새꽃을 본다. 저만치 앞장서서 달리는 아이들을 불러서 “얘들아, 여기 좀 봐. 억새꽃이야.” 하고 보여주고 싶으나 아이들한테 내 목소리가 안 닫는다. 너무 멀어서 부를 수조차 없다. 나락꽃이 한창 피던 무렵 나락꽃을 좀 보여주려고 했더니 아이들은 쳐다보지 않았다. 아이들 마음에는 아직 나락꽃이 깃들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하니, 우리 논이 있어서 우리가 손으로 어린 싹을 심었으면 나락꽃을 기쁘게 보았으리라 느낀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저 놀기에 바빠서 아직 나락꽃이든 억새꽃이든 들여다볼 틈이 없다. 마당에서 까마중알을 훑으면서 까마중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기 일쑤인걸.


  나는 어떠했을까? 나도 이 아이들하고 똑같다. 나도 까마중‘꽃’은 어른이 되어서 비로소 제대로 보았다. 어릴 적에 까마중‘알’만 신나게 훑어서 먹었다. 그래서 까마중‘풀’이 어떻게 돋고, 잎이랑 줄기는 어떻게 생겼는가를 하나도 떠올리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 우리 집에서 잘 자라는 까마중을 지켜보며 비로소 싹이랑 줄기랑 잎이랑 꽃을 모두 알아차렸다. 알(열매)도 어떻게 영그는가를 이제서야 차근차근 지켜보았다.


  아이들 앞에서 굳이 서두를 일은 없다. 어버이로서 내가 보고 싶으면 내가 스스로 보면 된다. 내가 알고 싶으면 내가 스스로 알면 된다. 나중에 아이들이 궁금해 하면서 묻거나 찾으려 하면, 그때에 넌지시 알려주면 되지. 어버이는 기다리는 사람이고, 먼저 배우는 사람이며, 스스로 즐겁게 깨닫는 사람이다. 어버이는 사랑으로 지켜보는 사람이고, 꿈으로 살림을 짓는 사람이며, 노래로 이야기를 엮어서 물려주는 사람이다. 4348.9.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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