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배움자리 61. 사름벼리 산들보라 이름



  어제 면소재지 놀이터에서 두 아이를 놀도록 하려는데, 이곳 초등학교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하고 함께 놀겠다고 하면서 우리 아이들 이름을 묻는다. 그러면서 저희 이름은 말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 이름이 ‘넉 자’이고 ‘성이 없다’고 하는 대목을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를 내면서 말한다. 여덟 살 큰아이는 이곳 학교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아무 말을 못 하고 놀지도 못 한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타이를 수 없는 노릇이기에, 우리 아이들을 불러서 그만 가자고 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집이나 학교에서 이름이나 삶이나 동무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배우거나 들은 적이 없으니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자전거를 달려서 면소재지를 벗어나 들길이 나올 무렵 큰아이한테 얘기한다. “벼리야?” “응?” “누가 벼리한테 이름을 물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겠어.” “누가 벼리한테 이름을 묻는다고 벼리 이름을 알려주지 마.” “응.” “아버지가 뭐라고 했지?” “어. 모르겠어.” “누가 벼리한테 이름을 묻는다고 벼리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어.” “알았어.” “누가 벼리한테 이름을 물으면, 그 사람 이름이 무엇인지 먼저 말하라고 해. 자, 아버지가 뭐라고 했지?” “모르겠어. 다시 한 번 얘기해 줘.” “누가 벼리한테 이름을 물으면, 그 사람 이름이 무엇인지 먼저 말하라고 해. 자, 아버지가 뭐라고 했지?” “누가 벼리한테 벼리 이름을 물으면 말하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음, 못 들었어.” “그 사람한테 그 사람 이름을 먼저 말하라고 해.” “그 사람한테 그 사람 이름을 먼저 말하라고 했어요.” “벼리야, 이름이 뭔지 알아?” “음, 몰라.” “벼리하고 보라한테 붙인 이름은, 벼리와 보라가 이곳에 태어난 까닭이야. 그리고, 벼리와 보라가 앞으로 살아갈 사랑이야. 그래서, 벼리하고 보라 이름을 아무한테나 함부로 알려주지 않아. 마음으로 사귈 사람이 아니라면 이름을 알려주지 않아.” 어른도 우리 아이들 이름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아이들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도 못 알아듣기 일쑤이다. 왜 그러한가 하면, 아이들 목소리와 눈높이에 제 마음을 맞추어서 귀여겨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읊는 말을 한 번에 다 알아들을 뿐 아니라 늘 잘 알아듣는 사람이 있다. 이런 이웃은 그야말로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똑같은 한 사람 숨결’로 아이들하고 마주하는 사람이다. 이런 이웃은 우리 아이들한테뿐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서나 누구하고라도 아름다운 사랑을 맺는 멋진 숨결이다. 자전거를 들녘 한복판에 세운 뒤 큰아이하고 찬찬히 이야기를 더 나눈다. “벼리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무한테나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을 말하지 않지?” “응.” “왜 그럴까?” “모르겠어.” “벼리야, 어머니 이름은 뭐지?” “응, 뭐더라.” “아버지 이름은?” “숲노래.” “그래, 어머니 이름은 라온눈이야.” “아, 그렇지.”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스스로 붙인 이 이름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 땅에 태어난 뜻이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랑이야.” “응. 알았어.”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 이름을 스스로 아끼면서 써. 벼리 이름도 보라 이름도 모두 뜻이 있고 사랑이야. 자, 아버지가 뭐라고 했지?” “벼리 이름에도 뜻이 있고 사랑이라고 했어요.” “우리 이 이름을 잘 생각하자.” 4348.9.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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