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들은 노랗게 물드는 빛깔
오늘날은 거의 모든 사람들, 이른바 구십구 퍼센트에까지 이를 만한 사람들이 도시에서 산다. 그리고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학교와 학원에 다니기에 바빠서 시골일을 거들지 않기 마련이고, 나락을 언제 심고 언제 거두는지조차 모르기 일쑤이다. 이리하여, 오늘날 한국사람 가운데 ‘들빛’이 가을에 어떠한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고 할 만하다. 어릴 적에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고 하더라도 어른이 되어 도시에서만 사느라 가을들 빛깔을 잊는다. 바로 오늘 시골에서 살면서 늘 들을 마주하지 않고서야 들빛을 알 수 없다.
옛날이라면 누구나 들빛을 알고 들빛을 말했다. 그래서 ‘한가을에 잘 익은 나락알’을 보면서 ‘금빛 물결’이라고 했다. 금빛이란 무엇인가? 바로 샛노란 빛깔이다. 푸른 들이 푸르스름한 들로 바뀌고 누르스름한 들로 바뀌다가 누런 들로 바뀌더니 어느새 노란 들로 바뀐다.
‘노랗다/누렇다’ 같은 빛깔말은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나락이 물결치는 들하고 보리가 물결치는 들은 그야말로 노랗다. 참으로 샛노랗다. 가을과 봄에 샛노란 물결이 들에 가득하다. 누런 빛깔은 무엇일까? 나락을 말리면 노란 기운이 천천히 빠지면서 누렇게 된다. 아직 샛노랗지 않지만 차츰 샛노란 빛깔로 거듭나는 들판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바라본다. 가슴 가득 노란 빛깔과 숨결과 바람을 맞아들인다. 4348.9.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