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2015년 9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


시골도서관 풀내음

― 구백 살 나무와 함께 살고자



  전남 고흥 읍내에는 머잖아 구백 살이 될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아이를 새로 낳고, 다시 한 번 아이를 낳을 무렵에는 천 살이 되겠구나 싶은 느티나무입니다. 이 나무한테는 천연기념물 같은 이름이 붙지 않습니다. 우람한 느티나무 둘레에서 이런저런 공사를 벌일 적마다 굵고 커다란 줄기는 아프게 잘립니다. 가게를 가린다든지 큰 짐차가 지나갈 때에 걸리적거린다고 여기지 싶습니다. 지난해부터 이 느티나무 바로 옆에 정자가 생기면서 대낮부터 나무 옆에서 술판이 벌어지기 일쑤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아기 적부터 우람한 느티나무한테 찾아가서 나무를 안거나 타면서 놉니다. 읍내에 볼일이 있어 찾아갈 적에 으레 들러서 나무한테 인사합니다.


  나무가 있는 곳하고 나무가 없는 곳은 바람이 다릅니다. 나무가 있기에 한결 짙푸른 바람이 붑니다. 나무가 없기에 더욱 땡볕이 따가우면서 메마른 바람이 흐릅니다. 나무가 우거진 길에는 새와 풀벌레가 찾아들어 싱그러운 노래를 베풉니다. 나무가 없는 길에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먼지바람만 가득하고 시끄럽습니다.


  정부희 님이 쓴 《곤충들의 수다》(상상의숲,2015)라는 책을 읽으니, “겨울이 오기 전 초가지붕의 볏짚을 갈았습니다. 썩은 볏짚을 걷어낼 때마다 헌 지붕 속에 있던 엄지손가락만 한 굼벵이가 지붕 아래로 뚝뚝 떨어졌지요. 그러면 어른들은 그 굼벵이를 집어들어 산 채로 입에 넣고 꿀꺽 삼키셨습니다. 볏짚만 먹고 자라 몸에 좋고 생고구마 맛이 난다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261쪽)” 몹시 놀랐다고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린 날 굼벵이한테 놀란 어린 가시내는 딱정벌레와 풀벌레를 귀엽게 돌보면서 살피는 학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만히 보면, 이제 볏짚으로 지붕을 이는 시골집은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이제 시골에서는 볏짚이 굵고 길며 튼튼한 나락을 심지 않아요. 짜리몽땅한 볏짚만 나오는 나락을 심습니다. 새마을운동은 슬레트지붕을 올리게 했고, 요즈막에는 슬레트가 ‘석면’인 줄 알아차려서 군청에서 목돈을 들여 철거를 해 줍니다.


  지난날 시골사람 시골집은 언제나 정갈하면서 싱그러운 나무와 흙과 돌로 지었습니다. 지난날 시골집을 손질하거나 고치거나 뜯을 적에는, 이 집에서 나오는 나무와 흙과 돌을 얼마든지 되쓸 수 있었어요. 지붕을 잇던 낡거나 묵은 짚은 새로운 거름이 되어 새로운 흙으로 돌아갔어요. 이와 달리 오늘날 집은 시골이나 도시 모두 시멘트나 슬레트나 쇠붙이나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을 아주 많이 씁니다. 오늘날 집은 조금만 손질하거나 고치더라도 쓰레기가 나오고, 오늘날 집에서 나오는 시멘트나 석면은 되쓸 수 없는 끔찍한 말썽거리가 될 뿐입니다.


  “생명은 다 같은 것. 사람이나 벌레나 새나 개구리나 모두 살아 숨을 쉰다는 건 아름다운 것입니다(114쪽).” 같은 생각을 가슴속에 품으면서 산다면, 우리는 어떤 집을 지으면서 살까요? 앞으로 쓰레기가 될 말썽거리를 벽이나 지붕에 올리면서 살까요, 아니면 앞으로 새로운 흙이 될 숨결로 집을 감싸면서 살까요?


  냇물이 맑게 흐르니 냇물을 길어다가 마시고, 냇물에서 빨래를 할 수 있습니다. 냇물이 맑게 흐르니 다슬기와 가재와 미꾸라지가 살고, 다슬기와 가재와 미꾸라지가 사는 냇물 둘레에서 개똥벌레가 깨어나서 춤을 춥니다. 그런데 맑은 냇물은 흙하고 자갈로 바닥을 이룬 곳에서 흐릅니다. 시멘트로 바닥을 댄 자리에서는 맑은 물이 흐를 수 없습니다. 흙하고 자갈은 물살에 쓸려 바다로도 흘러가면서 바다를 기름지게 가꾸기도 하지요. 이리하여, 숲이 튼튼하고 아름다울 적에 바다도 튼튼하고 아름다우면서 깨끗하기에, 바다에 온갖 물고기가 많이 삽니다. 숲이 무너지거나 온통 시멘트투성이에 석면투성이라면, 바다까지 망가지면서 온갖 물고기는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아요.


  오늘 나는 이곳에서 구백 살 가까운 나무와 이웃이 되어 지냅니다. 우리 아이들하고, 또 이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은 앞으로 천 살 가까운 나무와 이웃이 되어 지내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아이들이 다시 태어나고 거듭 태어날 무렵에는 천 살을 웃돌고 이천 살로 나아갈 나무하고 이웃이 되어 지내기를 꿈꿉니다.


  제비는 아무 곳으로나 돌아오지 않습니다. 먹이가 넉넉하고 숲과 들이 아름다우며 사람들이 따스한 마음으로 어우러지는 마을로 돌아옵니다. 아이들은 아무 곳에서나 놀지 않습니다. 맨발로 뛰놀 수 있고 자동차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마음껏 노래하며 웃을 수 있는 곳에서 놉니다.


  구백 살 가까운 느티나무는 굳이 천연기념물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구백 살 가까운 느티나무 둘레에서 막걸리이든 소주이든 얼마든지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나무가 왜 우리 곁에 있을 때에 삶이 아름다운가를 알아야 합니다. 나무 한 그루만 천연기념물로 삼을 노릇이 아니라, 온누리 골골샅샅 온갖 나무가 우거지면서 어디에서나 나무 그늘을 누리고 나무가 베푸는 짙푸른 바람을 마실 수 있어야 해요. 우람한 나무 둘레에서 어른들끼리 술판만 벌이지 말고, 우람한 나무 둘레에서 모든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떠들면서 맨발과 맨손으로 나무를 타며 놀 수 있어야지요.


  아이들이 맨발로 놀지 못하는 곳이라면 어른들도 맨발로 일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마음 놓고 드러나워 하늘바라기를 하며 일손을 쉬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싱그러이 노래하지 못하거나 개구지게 뛰놀지 못하는 곳이라면 어른들도 오순도순 모여서 두레나 품앗이를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마음 가득 기쁜 사랑을 길어올리면서 노래잔치나 밥잔치나 마을잔치를 하지 못합니다.


  도서관 한쪽에 커다란 상자를 놓으니, 두 아이가 커다란 상자에 들어가서 저마다 새로운 놀이를 찾아서 놉니다. 자동차 없는 길을 걸어가면서 만화책을 손에 쥡니다. 여름이 저물며 우리 집을 떠나는 제비를 마지막으로 지켜봅니다. 그저 신나게 논둑길을 달립니다. 어느덧 조용히 가을입니다. 4348.8.17.달.ㅅㄴㄹ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5-09-1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백 살이 될 느티나무를 찾아갈 적마다 인사를 하는 모습이...눈에 선하니
참 아름답습니다~~
아이들과 고양이들은 들어가 놀 수 있는 상자를 참 좋아하지요~?^^ ㅎㅎ

숲노래 2015-09-16 23:10   좋아요 0 | URL
저희 집 광에 쌓은 상자도
마을고양이가 사는 집이 되기도 합니다 ㅋㅋㅋ

읍내 느티나무에 자주 찾아가고 싶지만...
술냄새가 너무 나서... 참 버겁습니다... ㅠ.ㅜ

Grace 2015-09-17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상자 속에 들어 앉은 아이들,
더구나 자고 있는 아이는 너무너무 귀여워요!
나무타는 아이들, 논길 옆의 책읽는 아이~
온통 이쁩니다.^^

숲노래 2015-09-17 12:25   좋아요 0 | URL
상자에서 자는 척하는 작은아이예요.
눈을 질끈 감는데... ㅋㅋㅋ
큰아이는 논길을 걸으면서 그냥 책을 읽어요
늘 그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