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털실뭉치 문지아이들 120
권영상 지음, 김중석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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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67



아이들은 달팽이처럼 씩씩하게 나아간다

― 엄마와 털실 뭉치

 권영상 글

 김중석 그림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2.5.31. 9000원



  실뭉치가 있으면 아이들은 꼭 실뭉치를 노립니다. 왜 노리는가 하면, 실뭉치를 굴리면서 놀고 싶기 때문이에요. 두 아이가 있으면 한 아이가 끝을 잡고 다른 한 아이가 길게 이으려 합니다. 처음에는 커다란 공이던 실뭉치가 차츰 작아지면서 끝도 없이 길게 늘어지는구나 하고 느끼기 때문에 재미있어서 이 놀이를 멈추지 않습니다.


  노는 아이를 나무랄 수 없습니다. 차근차근 타이릅니다. 얘야, 이 실뭉치로 어머니가 무엇을 하든? 뜨개를 해요. 어떤 뜨개를 하든? 음, 나하고 동생이 입을 옷이랑 양말을 떠요. 그러면 이 실뭉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 막 굴리거나 풀지 말아야 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지?



먼저 떨어진 가랑잎이 / 나중 떨어진 / 가랑잎 곁에 / 다가가 묻는다. (가랑잎들)


우리 집보다 / 더 큰 느티나무가 / 참새네 집이다. (참새네)



  권영상 님이 빚은 동시집 《엄마와 털실 뭉치》(문학과지성사,2012)를 가만히 읽습니다. 국어교사로 오랫동안 일하다가 정년퇴직을 한 권영상 님입니다. 아이들한테 말과 삶을 가르치듯이 동시도 또박또박 이야기가 흐릅니다. 똑 소리가 날 만한 동시요, 말 한 마디마다 얽힌 삶을 찬찬히 읽을 만한 이야기입니다.



살구나무에서 / 뛰어내릴 때 / 나는 들었다. // 쿵, 하고 / 땅이 울리던 소리. (내 무게)



  예부터 이 나라 모든 어머니는 아기를 낳아 젖을 물리고 젖떼기밥을 끓이면서 말을 가르쳤습니다. 이 나라 모든 아기는 어머니 몸에서 태어나 젖을 물고 젖떼기밥을 거쳐서 이가 튼튼히 나며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아기는 어머니한테서 새로운 말을 듣습니다. 어머니는 아기한테 모든 말을 노래처럼 부드럽고 따스하게 들려줍니다. 어머니는 책이나 교재가 아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아이한테 말을 가르칩니다. 아이는 책이나 교재가 없어도 온갖 말을 사랑으로 배우니까, 제 마음을 실컷 드러낼 수 있는 넉넉하고 깊은 마음자리를 가꾸면서 자랍니다.


  어머니는 밥을 짓고 옷을 짓습니다. 아버지는 밥을 함께 지으면서 집을 짓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 곁에서 삶을 짓는 길을 곰곰이 지켜봅니다. 밥짓기를 보고, 옷짓기를 보며, 집짓기를 봅니다. 살림살이가 하나씩 태어나는 결을 마주합니다. 두 어버이 손에서 새롭게 깨어나는 멋진 이야기를 하나하나 눈부시게 만납니다.



하늘은 / 목욕하기 좋도록 / 버려진 꼬막 껍질에 / 빗방울을 채워 놓는다. (비 오는 날)



  아이들은 놀 적마다 놀이노래를 불러요. 이런 노래는 어디에서 배울까요? 바로 어버이 곁에서 배웁니다. 어버이가 일하면서 흥얼거리는 기쁜 사랑이 서린 가락을 배우기에 놀이노래를 새롭게 부르지요. 아이 스스로 호미를 쥐면서 놀이노래가 새로 나오고, 아이 스스로 등짐을 지면서 놀이노래가 새삼스레 나옵니다. 아이 스스로 저보다 어린 동생을 보살피면서 놀이노래가 새롭게 깨어나고, 아이 스스로 집일을 거드는 심부름을 하는 사이에 어느덧 놀이노래가 아름답게 터져나옵니다.



콩나물을 고르던 / 엄마가 / 왠지 조용하다. // 콩나물 잡은 손을 / 힘없이 무릎 위에 떨군 채 / 고주박잠을 잔다. (고주박잠)



  동시집 《엄마와 털실 뭉치》가 보여주는 삶을 읽습니다. 버려진 꼬막 껍질을 바라보는 삶을 읽고, 고주박잠을 자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삶을 읽습니다. 씨감자를 심거나 감자알을 캐는 삶을 몸소 겪는 삶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리고, 동시를 읽을 만한 나이인 어린이라면, 어떤 집일을 거들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이가 손수 콩나물을 골라 보았다면, 아이가 손수 걸레를 빨아서 방바닥을 날마다 훔쳐 보았다면, 아이가 손수 밥을 지어서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차려 주었다면, 도시락을 아이가 손수 싸 보았다면, 보채는 어린 동생을 달래면서 자장노래를 불러 주었다면, 이때에 아이 눈높이에서 피어날 동시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빠와 같이 / 감자를 캐는데 / 호미 끝에 큼직한 녀석이 걸렸다. / 당겨 보니 이게 또 뭔가? / 주먹만 한 돌멩이다. (감자를 캐며)



  한국 동시문학은 퍽 오랫동안 ‘동심 천사주의’라고 하는 이름처럼 아기를 귀염둥이로만 바라보는 이야기를 운율에 맞게 틀에 넣는 동시로 흘렀습니다. 삶을 담아서 아이 스스로도 삶을 느끼도록 돕는 동시가 나오기는 했으나 ‘어떤 삶을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대목을 깊이 헤아리는 동시는 아직 많이 드뭅니다. 여기에, ‘가벼운 말놀이’로 ‘가벼운 재주’를 부려서 ‘가벼운 재미’를 퍼뜨리려는 동시가 부쩍 크게 일어나서 요즈음 ‘주류 동시’가 되었습니다.


  권영상 님 동시는 동심 천사주의로 흐르지 않고, 가벼운 말놀이 재미로 흐르지 않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부대끼면서 삶을 생각하도록 이끄는 동시라고 할 만한 결을 보여줍니다. 다만, ‘어떤 삶’을 그리느냐 하는 대목에서 ‘학교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집에서도 ‘어머니가 하는 집안일 구경’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나서는 몸짓이 드러나지 못합니다. 학교 바깥에서 마을이나 숲을 마주하는 푸른 가슴을 동시로 담는 손길은 살짝 모자라지 싶습니다.


  〈달팽이는 다르다〉처럼 아이가 제 삶을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도록 돕는 동시를 더 즐겁게 쓰실 수 있다면 권영상 님 동시는 한결 눈부시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마을을 가꿀 아이들 슬기를 동시로 드러내고, 앞으로 이 삶터를 북돋울 아이들 꿈을 동시로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요.



그러나 달팽이는 다르다 / 천둥 치는 들판으로 / 홀로 나간다. (달팽이는 다르다)



  아이들은 달팽이처럼 씩씩하게 나아갑니다. 겉보기로는 다리가 느린 듯하지만, 운동선수처럼 잰 몸놀림도 아닐 뿐더러, 여느 어른보다 힘이 많이 여리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달팽이처럼 다부지게 나아갑니다. 비바람이 불건 천둥이 치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놀고, 눈을 반기면서 놀아요. 몸이 젖으면서 놀고, 몸이 꽁꽁 얼면서 놀아요.


  이 나라 모든 씩씩한 아이들한테 선물로 건넬 사랑스러운 동시를 기다립니다. 우리 둘레 모든 곱고 슬기로운 아이들한테 선물로 나누어 줄 짙푸른 나무 같은 동시를 기다립니다. 4348.9.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동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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