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 - 신혜정 시인의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 기행
신혜정 지음 / 호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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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28



‘원전’이 얼마나 비싸고 무서운지 누가 알까?

―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

 신혜정 글

 호미 펴냄, 2015.6.10. 12000원



  모기를 잡으려고 뿌리는 모기약은 모기를 잡고, 나비와 벌을 함께 잡습니다. 논이나 밭에 치는 농약은 나락이나 남새만 살리려고 뿌리는데, 나락이나 남새는 살린다고 하되 온갖 풀벌레와 개구리를 죽이고, 갖은 들새까지 모조리 죽입니다.


  그런데, 모기약이나 농약이 우리 삶터를 어떻게 일그러뜨리는가를 다루는 교과서는 제대로 없습니다. 모기가 있으면 모기약을 뿌리고, 파리가 있으면 파리약을 뿌리며, 바퀴벌레가 있으면 바퀴벌레약을 뿌려요. 이러한 약을 뿌릴 적마다 사람이 마시는 바람이 얼마나 망가지는가를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더군다가 다 쓴 빈 깡통이나 농약병은 어떻게 될까요?


  시골 논도랑이나 길가를 보면 빈 모기약병이나 농약병이 어지러이 뒹굽니다. 비가 오면 다른 곳으로 쓸려갑니다. 아마 거의 모두 바다로 갈 테지요. 한국에서 버린 쓰레기는 바다를 타고 일본이나 태평양으로 갑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버리는 쓰레기는 몽땅 바다 건너 한국으로 옵니다.



내가 발견한 원자력발전의 모든 과정은 한마디로 ‘차별’이었다. (29쪽)


그러나 자연은 길 위에 선 자의 마음을 너그럽게 풀어 주었다. 나는 천천히 풍경을 느끼고 싶어 속도를 늦췄다. 높고 낮은 능선들이, 잔잔한 바람이 나뭇결을 스치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33쪽)



  시인 신혜정 님이 쓴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호미,2015)라는 책을 읽습니다. 도톰한 듯하면서도 작고 가벼운 이 책은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 하고 물으면서 여행길에 나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행길인가 하면 ‘원전 여행’입니다. ‘핵발전소 여행’이에요.


  사회에서는 ‘원전(원자력발전소)’하고 ‘핵발전소’라는 두 가지 이름을 섞어서 쓰는데, 어느 이름을 쓰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이 이름이 아니라 참말 ‘원자력’을 쓴다고 하는 ‘핵’이란 무엇인가를 알지 않고서 이름만 따지는 일이란 덧없기 때문입니다.


  시인 신혜정 님은 수수께끼를 풀려고 ‘국도 7번’을 따라서 여행을 합니다. 아름답다고 하는 국도 7번이 아닌, 무시무시하고 끔찍끔찍한 핵발전소가 가득한 ‘국도 7번’을 달리면서 여행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원자력발전소는 해안가에 건설되었다. 전력 수요가 많지 않은 작은 어촌 마을에서 대단위 전력을 생산하여 멀리 떨어진 도시로 보내는 것은 언뜻 보아도 효율적이지 않다. (36쪽)


핵에너지가 상용화되지 못한 이유를 간단히 말하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핵분열에서 생성되는 폐기물은 방사능 덩어리인,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죽음의 재’이기 때문이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 인류는 이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 (37쪽)



  교과서와 정부는 원자력발전소로 얻는 전기가 깨끗하며 값싸다고 으레 외칩니다. 그렇지만 계산서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계산서는 안 보여주면서 깨끗하면서 값싸다고 외쳐요.


  그런데, 깨끗한 전기를 얻는다는 핵연료 전기인데 송전탑을 어마어마하게 박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이 나라 멧봉우리마다 ‘쇠말뚝’을 박은 짓이 나쁘다고들 목소리를 높이던 때가 그리 멀잖은 옛날 같은데, 한겨레 스스로 이 나라 곳곳에 ‘일제강점기 쇠말뚝’은 우습지도 않은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송전탑’을 끝없이 박고 또 박습니다.


  이러면서 정부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마을이나 마을사람한테 보상을 해 주지도 않아요. 다만, 홍보를 합니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해마다 ‘깨끗한 원전’을 홍보하느라 100억 원이 넘는 돈을 쓴다고 해요.



핵발전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는 해마다 홍보비로 100억 원이 넘는 비용을 지출한다 … 홍보의 핵심 내용은 바로 원자력발전은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것인데, 곰곰 헤아려 보자니 더럽고 위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1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들여 ‘깨끗한 원전’을 홍보하고 있을까. (39쪽)


한전이 보상을 비현실적으로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제대로 보상을 하면 765킬로볼트 송전선로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서 그 자체로 타당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60쪽)




  시인 신혜정 님은 ‘원전 여행’을 하면서 원자력발전소에 들어가 보기도 합니다. 빛도 그늘도 없는 원자력발전소에 ‘미리 마련된 옷’을 갖추어 입고서 들어가 보는데, 이동안 귀를 찌링찌링 울리는 소리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밖으로 나온 뒤에 큰숨이 절로 나왔다는데, 이러면서 “창문 없는 밀실에서 3교대로 일을 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81쪽).” 하고 말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비정규직 사회’입니다. 원자력발전소도 똑같아요. 정규직은 ‘원전에서 더 안전한 곳’에서 일하고, 비정규직은 ‘원전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서 일한다고 합니다.


  문득 책을 덮고 돌아봅니다. 교과서에서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줄까요? 핵연료로 얻는 전기가 ‘깨끗하다’고 홍보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알려줄까요?



폐쇄된 전 세계 원자력발전소의 평균 수명은 22년이다. (95쪽)


2005년 한수원에서는 고리 1호기의 폐로 비용을 약 1억 8800만 달러로 추산했다. 환율을 1200원으로 계산하면 2천억 원이 넘는 금액이다. (98쪽)


원자로 돔이 보이는 마을에서 그 지역의 특산품을 먹었다. 미역과 물가자미, 산나물과 유기농 채소까지. 은연중에 방사능 피해를 생각했던 나 자신을 나직이 꾸짖은 시간이었다. 나는 그 음식들을 먹으면서 핵을 안고 사는 주민들의 마음을 몸으로 느꼈다. (101쪽)



  원자력발전소 평균 수명이 고작 스물두 해라고 하지만, 한국은 이 평균 수명을 훌쩍 넘기면서 돌린다고 합니다. 위험을 무릅쓴 짓일 텐데, 한국은 왜 이런 위험한 짓을 할까요? 바로 돈 때문입니다. 고작 스물두 해를 돌려서 ‘폐로 비용’으로만 2천억 원이 넘는 돈을 써야 하는데, 이 돈으로 ‘폐로를 마무리짓지’도 못합니다. 방사능이 수십만 해 동안 못 새어나오게 지켜보아야 하니까, 2천억 원이라는 돈은 어림도 없지요.


  그러면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셈일까요? 엄청난 돈을 들여서 짓고, 또 엄청난 돈을 들여서 방사능폐기물 처리장을 지어야 하며, 다시 엄청난 돈을 들여서 ‘폐로’를 해야 하는 원자력발전소인데, 왜 이런 ‘돈 먹는 도깨비’가 ‘깨끗하다’고 하면서 해마다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다시 쏟아부어야 할까요? 오직 건설회사 밥그릇만 불려 줄 듯한, 이러면서 정치권력자 기득권만 단단하게 할 듯한, 원자력과 핵을 왜 자꾸 붙들려고 할까요?



원전 지역의 주민들이 살기 위해 핵의 위험성을 습득해 나가는 동안, 국가권력은 원자력발전이 주는 경제적 효과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렸다. (110쪽)


“앞바다엔 고기가 없다”, “이제 열대 어종도 보인다”, “옛날엔 멸치가 떼로 올라왔는데 이젠 안 잡힌다”, “바로 앞에서 잡히던 굴비도 이제 멀리 나가야 잡힌다” 원전 지역을 돌며 온배수에 대해 물을 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의 내용은 이랬다. 이론적 가능성을 지역민들은 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127쪽)




  시골마을 어르신은 이녁이 젊을 적에 농약이나 비료나 비닐이 앞으로 흙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하는 대목을 한 번도 배우거나 들은 적이 없습니다. 시골마을 어르신은 이녁이 젊을 적이든 요즈막이든 ‘석면(슬레트) 지붕’이 얼마나 몸에 나쁘거나 무서운가 하는 이야기를 한 번도 배우거나 들은 적이 없습니다.


  새마을운동 바람은 그저 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고개를 숙이도록 하면서 분 새마을운동 바람입니다. 그냥 석면 지붕으로 올려야 했습니다. 마을길을 그냥 시멘트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숲정이를 그냥 베어서 없애야 했습니다. 물길 흐름에 따라 다 다른 모습으로 짓던 논밭을 그냥 반듯하게 펴야 했습니다. 양수기가 없어도 물길 흐름에 따라 골고루 물이 돌던 옛 논밭이지만, 억지로 삽차가 들어가서 반듯하게 편 뒤에는 양수기 없이는 논밭에 물을 못 댑니다. 요새는 ‘시골 복지’라는 이름을 내건 토목건설이 한창인데, 논도랑을 시멘트도랑으로 바꾸어요. 흙으로 된 도랑을 시멘트로 바꾸면 어떻게 되는가를 아는 군청 일꾼도 없고 건설회사 일꾼도 없습니다. 시골 농사꾼도 이를 모릅니다. 나라에서 돈을 대어 이렇게 해 주니까 ‘복지’로구나 하고 생각할 뿐입니다.


  참말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아무도 ‘참거짓’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알아내려고 하지 않으면 참거짓을 알 수 없습니다. ‘석면 지붕’으로 바꾸도록 농사꾼을 들볶은 짓을 뉘우친 정치꾼이나 공무원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시멘트도랑’은 앞으로 스무 해쯤 뒤에 크게 말썽거리가 될 테지요. 물이 늘 흐르는 시멘트도랑은 머잖아 삭아서 논마다 시멘트조각이 처박힐 텐데, 이 말썽거리를 어떻게 풀어야 할는지 아는 정치꾼이나 과학자나 기술자나 전문가는 아무도 없을 테지요.



누군가는 말한다. 원전의 위험성이 과장되어 있다고. 반대로 원전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말한다. 그렇게 안전하면 서울에 핵발전소를 지으시라고. (130쪽)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정부는 스리마일과 체로노빌에 더해 후쿠시마 사고까지 점점 더 강력해지는 핵 참사가 발생할 때도 꾸준히 원전 신규 후보지를 발표하고 또 확정지었다. (151쪽)




  ‘원전’이 얼마나 비싸고 무서운지 누가 알까요? 어쩌면 한국전력 공무원조차 모르는 일은 아닐까요? 그들 스스로 아무도 모르니까 ‘깨끗한 원전’만 홍보하지 않을까요?


  아는 사람은 벌써 다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알 길이 없어서 모두 모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독일이라는 나라는 유럽에서 볕이 안 들기로 손꼽히는 나라인데, 얼마 앞서부터 독일에서는 ‘여느 살림집과 건물 옥상’에 붙인 햇볕전지판으로 ‘독일 전체 전기수요 50% 넘게’ 얻는다고 합니다. ‘대형 햇볕발전소’가 아니라, 그냥 여느 살림집하고 건물 옥상에 붙인 전지판만으로 말이지요. 독일에서는 아직 모든 집과 건물 옥상에 다 붙이지 못했을 테니까, 모든 집과 건물 옥상에 전지판을 다 붙이면, 독일에서는 ‘거짓말 아닌 참말로 깨끗한 전기를 100% 자급’하고도 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데에 들인 돈은 그야말로 얼마 안 됩니다.


  한국에서는 무엇을 할까요? 해마다 100억 원이라는 돈을 어디에 쓸까요? 송전탑 하나 세우는 데에 드는 돈은 얼마일까요? 원전 한 기를 짓는 돈이나 폐로를 하는 데에 드는 돈은 얼마일까요? 시설유지비와 인건비는 얼마일까요?



영덕의 바다에 처음 닿았을 때, 나는 블루 로드라는 말을 그대로 느꼈다. 물빛이 참 예뻤다. 해안선을 따라 쭉 내려갔는데 지역마다 물빛이 달랐다. 영덕은 제주도에서 본 바다와 비슷한 에메랄드빛을 띠면서도 동시에 동해의 깊고 푸른빛이 감돌았다. (159쪽)


독일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90퍼센트는 가정과 기업, 건물 옥상에 설치되어 있다(이 태양광 패널로 독일 전기 수요 50%가 넘는 전기를 얻는다). (186쪽)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정치권력자가 알려주지 않으면 스스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참말 알아야 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머리띠를 질끈 둘러매고 밤새우며 공부하듯이 알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 빨리 알아야 합니다. 참을 알고 거짓을 알아야 합니다. 거짓말쟁이는 참을 알려주지 않아요. 거짓말쟁이가 참을 털어놓을 때까지 기다리시렵니까? 거짓말쟁이는 죽음을 앞두고 참을 털어놓기도 하지만, 웬만한 거짓말쟁이는 죽을 때까지도 거짓말만 합니다. 거짓말쟁이는 언제나 스스로 무서워하니까 거짓말만 하거든요.



서해안에 밀집한 대형 화력발전단지에서도 그 고통은 때마다 불거져 나온다. 원전이 잠식한 우리 사회의 대형화 바람은 지역을 식민화했다. 그리고 중앙은 지방을 식민지화했다. 지역의 이러한 고통 없이 이 사회는 온전할 수 있을 것인가? (189쪽)



  그리고, 시인 신혜정 님이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라는 책에서 밝히듯이, ‘시골(지역)을 식민지로 삼은 도시(대형화)’라는 얼거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부끄러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는 99%가 도시에 몰려서 살아야. 이 대목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논도 밭도 없고, 도시에서는 맑은 시냇물도 골짜기도 없는 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시골이 없으면 도시는 모두 굶어야 하고, 배기가스에 갇힌 채 기침만 해야 합니다.


  시골(지역)을 식민지로 삼아서 온갖 공장과 골프장과 고속도로와 고속철도와 발전소와 쓰레기매립지에다가 대형축사까지 몽땅 몰아세우는 짓을 이제는 그쳐야 하는 줄 깨달아야 합니다. 도시 한복판에 누가 대형송전탑을 박을까요? 그 따위 짓은 아무도 안 하지요. 그런데 왜 시골마을 한복판에는 대형송전탑을 박을까요? 시골을 식민지로 삼은 도시 사회 얼거리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아픈 이웃’이 어떻게 아픈지 제대로 읽어야 원전 실마리를 풉니다. 이 나라에서 ‘슬픈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제대로 찾아야 ‘전기 자급’을 비롯해서 모든 아름다운 길을 새롭게 열 수 있습니다. 4348.9.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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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5-09-0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안타깝습니다ㅜㅜ

숲노래 2015-09-08 18:56   좋아요 0 | URL
우리 모두 뜻있는 삶을 바라보면서
대형발전소 아닌
옥상 전지판으로 가는
슬기로운 길만 생각해도
엄청난 돈이 엉뚱한 데로 새어 나가는 일이
없으리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