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너를 꽃이라 부른다
고홍곤 지음 / 지누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2015년에 나온 이 사진책은 아쉽게도 책방에 배본이 안 되었군요.

출판사에 직접 연락해야 장만할 수 있을 듯합니다. (02-3272-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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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99



꽃다운 삶을 사진으로 노래하는 아침

― 꽃시계는 바람으로 돌고

 고홍곤 사진

 지누 펴냄, 2015.3.24. 20000원



  밤이 되면 달빛이 드리웁니다. 달빛은 마루를 지나 방으로도 부엌으로도 들어옵니다. 풀벌레가 고즈넉하게 노래하는 밤이면 언제나 달빛을 바라보면서 고요히 잠이 듭니다. 다만, 시골집에서는 달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잠이 들지만, 도시에서라면 다르리라 느낍니다.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달빛이 아닌 전등불빛이 퍼질 테고, 수많은 자동차가 밤새도록 비추는 불빛이 넘칠 테지요. 저 먼 별에서 찾아오는 별빛이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여러 전자제품이 내뿜는 불빛이 가득할 테고요.


  요즈음은 전등불빛 아닌 달빛이나 별빛을 마주하면서 한밤을 누리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한낮에도 햇빛이 아닌 전등불빛에 기대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한낮이든 한밤이든 사진을 찍을 적에 햇빛이나 햇살이나 달빛이나 별빛을 살피기보다는, 전등불빛을 살피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저는 늘 당신 안에서 돋습니다. 세찬 눈보라에도 당신이라면 맨발도 따뜻합니다. (10쪽)

솟구쳐 솟구쳐 촛불처럼 밝혀라. 환한 날들이 네 앞에 있음을. (12쪽)






  고홍곤 님이 2015년에 선보이는 ‘꽃 이야기’ 사진책 《꽃시계는 바람으로 돌고》(지누,2015)를 읽습니다. 고홍곤 님은 지난 2006년에 《꽃, 향기 그리고 미소》를 처음 선보였고, 《꽃심, 나를 흔들다》(2007)와 《희망, 꽃빛에 열리다》(2009)와 《세상, 너를 꽃이라 부른다》(2011)와 《굽이굽이 엄마는 꽃으로 피어나고》(2013)를 차곡차곡 선보였습니다. 2006년에 처음으로 ‘꽃 이야기’를 선보인 뒤, 홀수 해마다 사진전시와 사진책을 함께 내놓습니다. 앞으로 2017년에도, 2019년에도 새로운 꽃 이야기로 꽃내음을 들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바람 속에도 우리는 웃어요. 웃어, 햇살 가득하지요. (22쪽)

당신의 음성은 사랑의 꽃별입니다. 별빛 달빛도 머물다 갑니다. (26쪽)





  꽃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시골꽃이 핍니다. 바닷가에서는 바다꽃이 피고, 숲에서는 숲꽃이 피며, 멧골에서는 멧꽃이 피어요. 서울에서는 서울꽃이 필 테고, 부산에서는 부산꽃이 필 테지요.


  다만, 자동차와 사람이 빽빽하게 넘치는 곳에서는 꽃을 쳐다보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시골에는 따로 꽃집이 없습니다만, 도시에는 따로 꽃집이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굳이 꽃집을 찾지 않아도 어디에서나 꽃잔치요 꽃내음이며 꽃누리인 터라, 모든 살림집이 ‘꽃집(꽃가게인 꽃집이 아닌, 꽃으로 이룬 집인 꽃집)’입니다.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바쁘고 자동차가 너무 싱싱 달리니 들꽃이나 길꽃이 제대로 자랄 겨를이 없습니다. 길가에서 하염없이 들꽃이나 길꽃을 들여다보면서 꽃내음을 맡을 틈이 없어요.


  그래도 도시에서 골목꽃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꾸준히 늡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가 갈라진 자리에서 돋는 조그마한 풀포기와 꽃송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이 천천히 늡니다. 골목마을 이웃이 작은 꽃그릇에 작게 심어서 가꾸는 골목꽃이 골목길을 환하게 밝히는구나 하고 깨닫는 사람이 차츰 늡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됩니다. 중앙정부나 지역정부에서 목돈을 들여서 서양꽃을 잔뜩 심어야 아름다울까요? 백만 송이에 이르는 국화나 장미나 튤립을 한곳에 몰아서 심어야 아름다울까요? 한 가지 꽃만 백만 송이나 천만 송이나 십만 송이를 심을 적에는 ‘다른 모든 들꽃’은 ‘잡풀’로 여겨서 마구 뽑아냅니다. 장미꽃잔치나 튤립꽃잔치나 국화꽃잔치를 벌이는 자리에서는 나팔꽃도 냉이꽃도 민들레꽃도 씀바귀꽃도 달맞이꽃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 쑥꽃이나 부추꽃이나 봄까지꽃이나 소리쟁이꽃은 아예 생각하지 않아요.





햇살과 바람의 이야기로 가득 채우는 (52쪽)

손 벌려 바람을 안고 가슴으로 하늘을 품으니, 늘 새로운 나날이여. (64쪽)



  사진책 《꽃시계는 바람으로 돌고》를 차근차근 읽습니다. 사진을 읽고, 글을 읽습니다. 고홍곤 님은 사진마다 이야기를 하나씩 붙입니다. 아니, 꽃을 찍은 사진마다 이야기가 한 타래씩 자랍니다. 꽃을 마주하는 동안에 사진을 한 장 얻고, 사진을 한 장 얻는 사이에 이야기를 한 꾸러미 얻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꽃한테 다가서는 동안 마음속으로 기쁜 숨결이 피어나고, 사진을 찍고 뒤돌아설 즈음 가슴속으로 기쁜 노래가 흐릅니다.


  사진책 《꽃시계는 바람으로 돌고》에 나오는 ‘사진말’을 꽃말이나 삶말로 여겨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를 그리는 말로 삼아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고스란히 ‘사진말’로 느끼며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찍기에 사진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하루를 내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로 찍습니다.


  “손을 벌려 바람을 안고 가슴으로 하늘을 품”을 때에 “늘 새로운 나날”인 줄 스스로 깨닫고, 이렇게 깨닫는 동안 꽃송이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문득 단추를 눌러 찰칵 소리와 함께 사진 한 장이 태어납니다. “처마 밑 비 오는 소리”를 듣다가 사진 한 장이 태어나고, “장독대 눈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사진 한 장이 거듭 태어납니다.





처마 밑 비 오는 소리, 장독대 눈 내리는 소리. (88쪽)

손을 잡으면 따스합니다. 손이 또 손을 부릅니다. (113쪽)



  꽃다운 삶을 사진으로 노래하는 아침입니다. 아이다운 놀이를 사진으로 노래하는 한낮입니다. 하늘다운 꿈을 사진으로 노래하는 저녁입니다. 냇물다운 사랑을 사진으로 노래하는 한밤입니다.


  꽃을 사진으로 찍든, 예쁜 이웃을 사진으로 찍든, ‘남들처럼 찍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멋져 보이거나 훌륭해 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든, 새롭거나 낯선 모습을 사진으로 찍든, ‘전문가나 프로 작가처럼 찍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모든 사진은 내가 나답게 살면서 찍습니다. 나는 나답게 내 둘레를 바라보면서 찍습니다. 내 사진은 오직 나다운 사진이지, 너다운 사진이 아닙니다. 내 사진은 ‘나다운 사진’일 때에 ‘내 이야기’가 서리면서 ‘내 꿈과 사랑’이 피어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내 사진은 ‘브레송다운 사진’이거나 ‘카파다운 사진’이거나 ‘이런저런 잘 알려진 작가다운 사진’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사진을 읽는 사람이 ‘아, 이 사진을 보니 아무개 작가 사진이 떠오르네’ 하고 말한다면, 내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함께하는 노래는 늘 가슴을 울립니다. (132쪽)

사랑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놓으면 삶은 감동입니다. (137쪽)



  시인은 시를 쓰고, 사진가는 사진을 찍습니다. 어버이는 밥을 짓고, 아이는 뛰놉니다. 시인은 시를 쓰면서 노래하고, 사진가는 사진을 찍으면서 노래합니다. 어버이는 밥을 지으면서 노래하고, 아이는 뛰놀면서 노래합니다.


  꽃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꽃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노래’합니다. 골목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골목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노래’할 테고, 숲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숲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노래’할 테지요.


  그러니,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는 사진을 찍을 적에 ‘내 노래’가 어떤 가락이거나 숨결인가를 헤아리면 됩니다. 사진책을 손에 쥔 우리는 사진을 읽을 적에 ‘내 이웃이 부르는 노래’에 어떤 이야기와 꿈이 서려서 사랑으로 피어나는가 하는 대목을 살피면 됩니다.


  아이도 꽃답고 어른도 꽃답습니다. 젊은 사람도 꽃답고 늙은 사람도 꽃답습니다. 스무 살 먹은 나무도 꽃을 피우고, 이백 살이나 이천 살을 먹은 나무도 꽃을 피웁니다. 작은 들풀도 꽃을 피우고, 무리지은 들풀도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꽃은 흙이 있어야 필 수 있습니다. 흙이 있는 곳에서 씨앗이 싹을 트고 뿌리를 내립니다. 흙이 있는 곳에서 씨앗이 싹을 트고 뿌리를 내리니, 줄기가 오르고 잎이 돋아서 꽃이 피면서 열매를 맺어요. 다시 말하자면, 흙이 있어야 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로는 밥이 나오지 않습니다. 꽃을 볼 줄 알아야 밥을 헤아릴 수 있고, 꽃을 가꿀 줄 알아야 밥을 지을 줄 알며, 꽃을 아낄 줄 알아야 밥을 함께 먹는 이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곱고, 네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아리땁습니다. 우리 마음밭에서 피어나는 꽃이 반갑고, 깊은 숲에서 피어나는 꽃이 고맙습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꽃은 언제나 피고 집니다. 한국에서 겨울이 되어 꽃이 지면, 지구 맞은편에서는 여름이 되어 꽃이 핍니다. 이 땅에서 피어나는 꽃이 고운 꽃내음을 싣고 지구 맞은편으로 퍼지고, 지구 맞은편에서 피어나는 꽃이 고운 꽃냄새를 퍼뜨려 이 땅에 베풀어 줍니다. 우리는 사진 한 장으로 ‘사진꽃’을 피워서 함께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4348.8.1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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