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9.2.

 : 논둑길에서 미끄러진 자전거



책을 부치러 우체국에 가자. 두 아이는 까르르 웃으면서 대문을 열어 주고, 나는 이 아이들 웃음을 바라보면서 홀가분하게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마을 어귀 샘터에서 큰아이는 낯이랑 손을 씻는다. 바람이 알맞게 불면서 하늘에는 구름이 끝없이 바뀌고, 그늘과 볕이 갈마들면서 새로운 가을이 싱그럽다. 자, 이제 신나게 달릴까?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문득 “아버지, 벼리가 예전에는 ‘가자!’라 안 하고 ‘출발!’이라 했어?” “응, 이제는 늘 ‘가자!’ 하면서 예쁘게 말하지.”


자전거를 바쁘게 달려야 하지 않으니 논둑길로 접어든다. 논을 옆으로 끼면서 시원하게 달린다. 논마다 나락이 무르익으면서 나락내음이 새롭다.


그런데, 모퉁이에서 꺾은 뒤 오르막이 되는 논둑길에서 자전거가 갑자기 휘청거린다. ‘뭐지?’ 하고 생각할 틈이 없이 손잡이는 벌써 한쪽으로 꺾였다. 마음속으로 ‘아차, 미끄러졌네.’ 하고 느낀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한다. 내가 자전거를 놓고 뒹구르르 구르면 내 몸은 안 다치리라. 그러나 이렇게 할 어버이는 없으리라. 나는 자전거를 단단히 움켜쥐기로 한다. 내 몸을 던져서 이 논둑길에서 미끄러진 자전거를 세우기로 한다. 몸을 길바닥에 날린다. 자전거와 함께 길바닥에 꽈당 하고 처박힌다.


길바닥에 처박히면서 뒤를 문득 돌아보니, 수레에 앉은 작은아이는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졌다가 바닥으로 콩 넘어진다. 히유, 두 아이를 모두 건사했구나.


그렇지만, 내 몸은 좀처럼 일으키기 어렵다. 목에 건 사진기는 바닥에 찧지 않았으나 논흙이 많이 튀었다. 어딘가 꽤 다쳤구나 하고 느끼면서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큰아이가 팔꿈치가 아프다면서 우는 얼굴이 된다. “아버지, 잘 달렸어야지요.” 작은아이는 멀쩡한 몸으로 수레에서 내린다. “난 괜찮은데?”


요 깜찍한 것들. 팔꿈치가 쓰라리다고 느끼면서 두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천천히 자전거에서 몸을 빼낸다. 무릎을 짚고 일어서 본다. 발바닥이 까끌거려서 고무신을 벗는다. 논둑길 바닥에 핏물이 주르르 흐른다. 아버지 무릎에 흐르고 팔뚝에 흐르는 피를 본 두 아이는 “아버지, 피! 피 나와!” 하면서 저희는 이제 더 아프지 않은 듯하다. 큰아이는 논물 흐르는 길바닥에 콩 떨어졌기에 가방이랑 옷이 흙범벅이 된다.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은 뒤에 큰아이더러 “그래, 벼리는 큰길에서 자동차 지나가는지 살피고 집으로 돌아가서 옷 갈아입어. 그리고 마른천 하나만 가져다 줘.”


이를 어찌해야 하나 하고 끙끙거리며 생각하다가 마을 어귀 샘터로 가야겠다고 느낀다. 샘터에서 무릎과 팔꿈치와 발등에 찍힌 생채기에 스며든 흙과 짚을 씻어야겠다고 느낀다.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논물이 많이 흐르는 길바닥을 보니 커다란 물이끼덩이가 있다. 그렇구나, 물이끼가 이렇게 큰 덩이로 이곳에 있네. 이 물이끼를 밟았구나. 논물이 흐르면서 물이끼가 넘쳤나 보구나.


살이 깊이 패인 데에 박힌 돌을 빼낸다. 걸을 수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는다. 곁님이 집에서 구급약을 챙겨 와서 소독을 해 주고 약을 발라 준다. 이 다리로 우체국에 다녀오기란 쉽지 않을 테지만, 아무튼 우체국에 오늘 다녀와야 하고 구급약을 더 장만해야 한다. 생채기에 소독약을 들이붓느라 다 떨어졌다.


쓰러진 자전거 있는 데로 돌아간다. 쩔뚝거리며 걷는다. 천천히 달리면 괜찮을 테지.


해오라기가 논둑길에 세 마리 나란히 내려앉다가 다시 날아오른다. 가을내음이 짙다. 다친 자리가 얼른 아물기를 빌며 노래하면서 자전거를 달린다. 우체국에서 책을 부치고 약국에 간다. 약국에서는 면소재지 의원에 다녀와야 소독약을 주겠다고 한다. 면소재지 의원에 간다. 깨진 무릎을 들여다보더니 면소재지 의원에서는 처치를 못하니 읍내에 있는 정형외과로 가라고 한다. 의원에서 나와 약국으로 간다. 소독약과 거즈를 잔뜩 달라고 하는데 몇 가지 안 준다. 면소재지 약국에는 이런 구급약이 얼마 없나? 병원에 가든 말든 집에서 자주 갈아 주어야 하니 소독약하고 연고가 있어야 할 텐데, 왜 소독약이나 연고를 몇 가지 안 줄까.


여덟 살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힘껏 발판을 구른다. 이 힘을 받아서 집으로 수월하게 돌아온다. 나는 아이들 힘으로 사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이 아이들이 있기에 이 시골에서 자전거를 달리며 노래할 수 있다.


집에 닿아 밥을 짓고 국을 새로 끓인다. 몸에 흐르는 땀하고 흙을 말끔히 씻는다. 다시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른 뒤 자리에 드러눕는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다 나은 아버지’라는 이름을 붙인 그림을 그려서 보여준다. 참으로 용하고, 더없이 사랑스럽다. 그래, 너희 그림처럼 아버지는 실컷 끙끙 앓은 뒤 말끔히 털고 일어날게. 너희 아버지는 ‘일어서면서 웃는’ 숨결이다. 고맙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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