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무릎이 깨진 책읽기



  자전거를 달려서 면소재지에 있는 우체국에 갈 적에 으레 논둑길을 달린다. 자동차 달리는 큰길은 재미없어서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논둑길을 달릴 적에 오르막길이 하나 있는데, 이 오르막에 늘 논물이 흐른다. 논물이 늘 흐르는 논둑길을 자전거로 달리다 보면 논흙하고 논물이 확 튄다. 아이들은 논흙이랑 논물이 튈 적에 눈에도 들어가니까 그리 반기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논흙이랑 논물이 덜 튈 만한 자리를 골라서 자전거를 달리는데 그만 그 자리에 뭔가 물컹한 것이 있어서 자전거가 미끄러졌다. 아차 할 적에는 벌써 내 자전거가 손잡이가 옆으로 휙 돌아가서 넘어지려 했고, 이때에 나는 샛자전거와 수레에 앉은 아이들이 놀라거나 다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이러면서 뒤로 충격이 덜 가거나 안 가도록 넘어졌는데, 이렇게 넘어지느라 무릎이 몹시 깨지고 팔꿈치가 제법 벗겨졌으며 이래저래 몸 여러 곳이 다쳤다.


  넘어지면서 자전거를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이렇게 해야 자전거가 옆으로 뒤틀리지 않는다. 이렇게 해야 논둑길에서 아이들이 논에 처박히지 않는다. 앞으로 더 미끄러지지 않고 내 몸으로 자전거를 세운 다음에 뒤를 돌아본다. 큰아이가 바닥에 ‘콩’ 찧어서 팔꿈치가 살짝 부은 듯하다. 큰아이는 아프다고 울먹이려고 하다가 아버지 다리에 철철 흐르는 피를 보고는 ‘아프다’는 말이 쏙 들어간다.


  나는 자전거에서 몸을 빼야 하니 억지로 일어섰다. 오른몸을 던져서 자전거가 더 미끄러지지 않도록 막았구나 싶다. 오른몸은 그야말로 너덜너덜하다. 그래도 반바지가 두꺼웠기에 오른몸은 덜 다쳤다. 다만, 오른무릎이 많이 다쳤다. 가까스로 서 보는데 끙 하는 외마디소리가 날 뿐 어찌할 길이 없다. 한동안 구부정하게 서서 숨을 가누니 작은아이가 “아버지 다리에 피가!” 하고 외친다. 내 다리를 내려다보니 참말 피가 줄줄줄 흐른다. 길바닥에도 핏물이 방울진다. 큰아이는 고맙게도 옷만 버렸다. 큰아이더러 집으로 가서 새옷으로 갈아입으라 하고 마른천 한 장만 갖다 달라고 이른 뒤, 절뚝절뚝 걸어서 마을 어귀 빨래터로 갔다.


  몇 해 만일까. 2005년을 마지막으로 길바닥에서 구르며 어깨마 무릎이 갈려서 다친 일이 더 없지 싶다. 2010년에도 한 차례 있었지. 큰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다녀오는데, 어쩐 일인지 마을 어귀 한쪽 길바닥이 움푹 패였고, 바로 이 자리에 자전거 바퀴가 빠지면서 붕 하늘을 난 적이 있다.


  무릎이 크게 깨져서 걷기조차 어려우니 몸이 후끈후끈 달아오르면서 도무지 생각을 하기 어렵다. 그런데 한 가지가 새롭게 있다. 몸이 참으로 많이 아파서 옴쭉달싹을 하지 못하고 곁님이 생채기를 달래 주어야 하고, 설거지도 밥차림도 모두 곁님한테 맡기고 보니, 내 마음이 오히려 여러모로 부드러워진다. 참으로 많이 아파서 잠자리에 누울 수 없어서 어쩌지 못하고 깨어서 멀뚱멀뚱 있는데, 아픈 몸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자꾸자꾸 돌아본다. 아파서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는 일도 퍽 오랜만이다. 오늘 밤만 아프고 아침에는 씩씩하게 일어나자고 꿈을 꾸자. 4348.9.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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