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이 아닌 글쓰기



  모든 말에는 마음이 깃든다. 먼먼 옛날, 말이 처음 태어나던 때부터 모든 말에는 마음이 깃든다. 그런데, 말을 하거나 다루는 사람들이 삶을 짓지 않은 채 권력을 짓거나 이름값을 짓거나 돈을 지으려고 하는 계급 사회가 되거나 신분 사회가 되거나 현대 물질문명 사회가 되면서 ‘말에 깃들던 마음’이 사라진다. 저마다 삶을 지으면서 어깨동무하던 삶에서는 어느 말이든 ‘마음이 깃드는 말’이었으나, 계급이나 신분이나 돈으로 굴러가는 사회나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교육이 되는 곳에서는 ‘마음이 없는 말’이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의사소통’만 하면 되는 말일 뿐이다.


  마음이 깃드는 말이란 삶을 살찌우는 말이면서, 삶을 밝히는 말이요, 삶을 가꾸는 말이다. 마음이 깃들지 않는 말이란 삶하고 동떨어진 말이면서, 삶을 억누르는 말이기도 하고, 삶을 잊거나 잃게 하는 말이다.


  오늘날 말은 ‘의사소통을 하는 기호’에 그치기 일쑤이다. 이리하여, 어느 한쪽에서는 아무 말이나 함부로 쓰고, 어느 한쪽에서는 외곬로 흐르며, 어느 한쪽에서는 장난과 겉치레가 판친다. 말에 사랑을 담아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사람은 차츰 줄어든다.


  어머니가 아이한테 아무 말이나 함부로 쓸까? 어머니가 아이한테 외곬로 흐르는 말을 쓸까? 어머니가 아이한테 장난이나 겉치레로 말을 할까? 어머니는 아이한테 ‘마음을 담는 말’을 들려주고, 아이는 어머니한테 ‘사랑을 실은 말’을 돌려준다. 이러한 얼거리로 먼먼 옛날부터 ‘낡지도 닳지도 않으면서 한결같이 빛나는 말’이었지만, 오늘날은 그야말로 ‘곧 낡고 빨리 닳으면서 유행처럼 떠돌다가 스러지는 바보스러운 시사상식 같은 지식으로 굴러떨어지는 말’이 된다.


  의사소통이 나쁘지 않다. 뜻을 알아차리도록 나누는 말이 나쁠 까닭이 없다. 그렇지만, 의사소통은 기호만 있어도 되고, 몸짓으로도 넉넉하다. 말이 ‘기호’나 ‘몸짓’이 아닌 ‘말’인 까닭은, 서로 마음을 나누고 삶을 북돋우는 길을 여는 슬기로운 말이 될 때에 비로소 사랑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4348.8.3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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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5-08-30 23:57   좋아요 0 | URL
잘못을 보면 분노하는, 그런 분노가 깃든 말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잘잘못을 갈피갈피 헤집어서 올바르게 밝히고, 새로운 깨달음(인식)을 가져다 주는 말(비판)도 필요하겠지요.

부드럽고 푸근한 마음, 서로 감싸주는 마음이 깃든 말도 필요하지만, 차가운(냉철한) 마음으로 문제점을 파고드는 말(분석)도 필요하겠지요. 논의/토론/논쟁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이 말과 저 말이 나름 모두 존재할 까닭과 값어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고 보니 숲노래 님 윗글도 어떤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을 비판하는 글입니다.

보통 한국인들은 논쟁을 나쁜 눈길로만 바라보는 성향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논쟁자를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피곤한’ 사람이라면서 매우 싫어들 합니다. 그러면서 또 불난 집 구경은 잘들 하고요. 즉 자신한테 비판의 화살이 날아오면 상대방 지적이 옳든 그르든 발끈하고부터 본다는 것입니다. 논쟁 개념이 없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나쁜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고 하더라도 논쟁은 좋은 측면이 더 많다고 봅니다. 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의사소통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논쟁이 더 많이 벌어져야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야 (나쁜) 논쟁이 줄어들 것입니다. 논쟁에 좀 더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봅니다. 넉넉한 마음, 여유롭게 받아넘길 수 있는 마음, 탄력 있게 잘 구부러질 수도 잘 되튕길 수도 있는 마음, 쓰담쓰담 푸근한 마음 등등은 오히려 논쟁을 거치면서 참된 인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건 제 자신의 말이 아닙니다. 누구나 머릿속에 담고 있고 들어본 얘기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실제 논쟁에 맞닥뜨리거나 남을 논박하는 처지가 되면 대부분 망각하고 마는 덕목들입니다.


숲노래 2015-08-31 00:18   좋아요 0 | URL
말씀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쓴 이 글하고는 많이 동떨어진 글을 써 주셨군요.
저는 `말이란 무엇인가`를 적었지
˝감정(분노)을 담은 말˝ 이야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다른 글에서 적기는 했는데
`논쟁`처럼 부질없는 `의사소통`도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은 `논쟁`이 뭔지도 모르면서 논쟁을 말합니다.
`논쟁`이란 ˝이론(논리) + 다툼(싸움)˝입니다.
저마다 제 이론을 앞세우면서 다투거나 싸우는 일이 `논쟁`입니다.

논쟁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 이론을 밀어붙이려고 하니까요.

이와 달리 `이야기`는 처음과 끝이 모두 있으며,
서로 생각을 나누는 일입니다.
말에 생각을 담아서 나누는 삶이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논쟁이 아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의사소통`을 넘어서 제대로 된 생각을 꽃피우면서
참다운 삶으로 나아갑니다.

한국 사회는 논쟁은 많아도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조금도 발돋움을 못하는 채
다람쥐 쳇바퀴처럼 제자리걸음만 한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