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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ㅣ 창비시선 214
김용택 지음 / 창비 / 2002년 2월
평점 :
시를 말하는 시 99
시와 배롱나무
― 나무
김용택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2002.2.25.
전라도라는 시골로 삶자리를 옮겨서 지내지 않았어도 배롱나무를 볼 일은 으레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 식구가 전라남도 고흥군으로 옮겨서 조그마한 마을에 조용히 깃들면서 늘 배롱나무를 만나면서 여러모로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도시에서나 다른 고장에서는 이 나무를 두고 ‘백일홍나무’라든지 ‘목백일홍’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마을이나 고장에서는 ‘백일홍’ 같은 이름을 안 씁니다. 도시에서 찾아온 손님이 ‘백일홍’ 꽃송이가 참 곱네요 하고 말을 여쭈면, 마을 분들은 이 말을 못 알아듣기 일쑤입니다. 나이가 제법 있는 분들은 ‘배롱나무’라는 이름뿐 아니라 ‘간지럼나무’라는 이름도 즐겨씁니다.
봄꽃들이 지는 날, 너의 글을 읽는다. 땅위에 떨어져 있던 흰 꽃잎들이 다시 나무로 후루루 날아가 붙는다. (올페)
김용택 님 시집 《나무》(창작과비평사,2002)를 읽으면서 나무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를 헤아리고, 우리 마을에서 자라는 나무를 헤아립니다. 이웃 여러 마을이나 우리 고장에서 자라는 나무도 곰곰이 헤아립니다.
고흥 읍내로 가 보면 큰길에 나무가 거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늘이 드리우는 나무조차 없습니다. 남녘은 여름에 불볕이요 봄가을에도 땡볕이 꽤 센데, 그늘을 드리울 만한 나무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다고 할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들에 나락을 심고 밭에 남새를 심으니 그늘을 안 좋아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마을 둘레에 있으면 나락이나 깨나 고추를 말리기 어렵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나락을 논에 볏가리를 쌓아서 말렸습니다. 더욱이 예전에는 나무를 땔감으로 삼았으니 나무를 함부로 다루는 일이 있을 수 없고, 마을 둘레에는 ‘숲정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을 만큼 고운 숲을 이루기 마련이었어요.
어머니는 동이 가득 남실거리는 물동이를 이고 서서 나를 불렀습니다 / 용태가아, 애기 배 고프겄다 / 용태가아, 밥 안 묵을래 / 저 건너 강기슭에 / 산그늘이 막 닿고 있었습니다 / 강 건너 밭을 다 갈아엎은 아버지는 그때쯤 / 쟁기 지고 큰 소를 앞세우고 강을 건너 돌아왔습니다 (이 소 받아라, 박수근)
나무가 있는 마을하고 나무가 없는 마을은 사뭇 다릅니다. 나무가 있는 마을에는 마을사람뿐 아니라 길손이나 나그네도 다리쉼을 할 만한 곳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무가 없는 마을에는 마을사람도 길손도 나그네도 다리쉼을 할 만한 곳이 없기 마련입니다.
높다란 건물만 빼곡하게 선 도시에서는 그야말로 쉴 곳이 없습니다. 돈을 치르고 들어가야 하는 찻집이나 밥집이 되어야 비로소 쉴 수 있으나, 돈이 없고서야 이러한 곳에 들어갈 수도 있고 느긋하게 있을 수도 없습니다.
나무가 잘 자라서 그늘을 드리우는 풀밭이나 평상이라면, 어른뿐 아니라 아이도 마음껏 뛰놀 수 있습니다. 나무가 없고 자동차와 건물만 빽빽한 도시에서는 어른도 느긋하게 쉴 자리가 없으며, 아이는 아무 데에서나 뛰거나 달리지 못합니다.
고향산천을 막무가내로 뜯어고치는 건설의 포크레인 소리, 여기저기 엄청나게 파뒤집어 쌓아놓은 흙더미. 아, 아, 하루라도 좋다 건설 없는 평화로움 속을 나는 거닐고 싶다. 정말 우린 왜 사는가? (세한도)
시집 《나무》에는 삽차 이야기가 곧잘 나옵니다. 삽차가 고향마을 들과 내와 숲을 망가뜨리는 이야기가 곧잘 나옵니다.
삽차를 모는 일꾼은 위에서 시키니까 삽차를 몰밖에 없습니다. 삽차를 몰도록 시키는 웃사람은 언제나 ‘개발·발전’을 외칩니다. 그런데, 웃사람이 외치는 개발이랑 발전은 늘 ‘시골이랑 숲을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려’서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새로운 도시를 일으키거나 공장을 늘리는’ 모습입니다.
한없이 부드러운 손을 뻗어 다른 나뭇잎을 건드리며 / 서로 신비로워서 깜짝깜짝 놀라는 저 몸짓들을 좀 보라지 / 어, 저 오리나무 아래 연보라색 아기붓꽃 보아 / 고사리도 손을 쪽 폈구나 두릅잎도 피고, 찔레순도 자랐네 / 너는 둥글레 싹이구나 캄캄한 땅 속에서 얼마나 천천히 솟았기에 (숲)
무화과밭에 가 보면, 무화과나무 가지를 철사로 단단히 감아서 땅바닥에 붙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무화과알을 따기 좋도록 한다고도 하고, 무화과나무는 가지를 삭둑 잘려야 더 굵은 알을 맺는다고도 합니다. 능금나무도 배나무도 모두 앉은뱅이나무이기 일쑤입니다. 포도나무는 열 해 즈음 포도를 맺으면 잘 맺는 셈이라고 합니다.
백 해는 우습고 천 해는 가볍게 산다고 하는 나무인데, 오늘날 문명사회에서 발전과 개발을 외치는 흐름으로는 나무 한 그루가 백 해는커녕 쉰 해나 서른 해조차 못 삽니다. 천 해를 살면서 넉넉히 모든 사람과 짐승과 벌레한테 나누어 줄 열매인데, 사람들끼리 더 많이 거두어서 더 많이 팔고 더 많이 쓴다고 하는 발전논리와 개발논리에 휩쓸려서 나무를 괴롭힐 뿐입니다.
가을비 그친 강물이 곱다 / 잎이 다 진 강가 나무 아래로 다희가 책가방 메고 혼자 집에 가는데, 그 많은 서울 사람들을 다 지우고 문재는, 양말을 벗어 옆에다 두고 인수봉을 바라보며 혼자 술 먹는단다. (맨발)
여름이 저무는 들녘이 곱습니다. 가을로 들어서는 하늘이 곱습니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부는 바람이 곱습니다. 나무 한 그루가 곱습니다. 소나무이든 방울나무이든 느티나무이든 감나무이든, 어느 나무이든 모두 곱습니다.
우리 마을 어귀를 밝히는 배롱나무도 곱고, 우리 집 마당에서 의젓하고 씩씩하게 크는 후박나무도 곱습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나무한테 인사하면서 내 마음도 곱게 거듭납니다. 나무하고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나무 같은 마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에도 도시에도 싱그럽고 예쁘면서 멋진 나무가 가득하기를 빌어요. 사람들 가슴속에 고운 사랑이 피어날 수 있기를 꿈꾸어요. 4348.8.2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