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음에 강의 원고 쓰기



  얼추 보름쯤 앞서였지 싶은데, 그날 아침에 밥을 짓다가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피어났기에, 큰아이를 얼른 불러서 ‘아버지가 들려주는 말’을 종이에 받아적도록 시켰다. 다음주에 사천에 있는 초등학교에 가서 그곳 선생님들하고 나눌 이야기가 불현듯이 떠올라서 이 말을 큰아이 손을 빌어서 옮겨적었다. 이러고서 보름 가까이 ‘원고 쓰기’를 안 했다. 다른 일도 많았지만, 원고가 내 손을 거쳐서 물결처럼 흐를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한달음에 강의 원고를 써 낸다. 큰아이가 받아적어 준 글 가운데 첫 줄만 놓고 강의 원고를 모두 마무리지었다. 강의 원고를 마무리지어서 사천에 있는 초등학교로 보내고서 생각해 본다. 참말 ‘한 줄 글’로도 원고지 서른 장 길이 글을 쓸 수 있구나. 아마 한 마디 낱말만 있어도 원고지 백 장 길이 글을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책 열 권도 쓸 수 있을 테지. 이를테면 ‘숲’이라는 한 마디만 있어도 책 백 권이 아니라 백 해에 걸쳐서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다. ‘사람’이나 ‘사랑’이라는 한 마디만 있어도 그렇다.


  생각해야 할 생각을 생각하자. 꿈꾸어야 할 꿈을 꿈꾸자. 사랑해야 할 사랑을 사랑하자. 말이 될 말을 말하자. 그러면 다 된다. 4348.8.20.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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