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3시의 무법지대 1
요코 네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42



사내들이 알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 오전 3시의 무법지대

 네무 요코 글·그림

 김승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09.9.15. 5500원



  《펜과 초콜릿》, 《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같은 작품을 그린 네무 요코 님이 빚은 만화책 《오전 3시의 무법지대》(대원씨아이,2009)를 읽습니다. 모두 세 권으로 나온 《오전 3시의 무법지대》이고, 이 만화에 뒤이어 《오전 3시의 위험지대》가 세 권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오전 3시의 무법지대》라는 만화책은 ‘전문대’를 막 마치고 회사원이 된 젊은이가 회사에서 겪는 일을 그립니다. 이 만화를 그린 네무 요코 님은 ‘만화에 나오는 회사’가 이녁이 처음 사회생활을 할 무렵에 다닌 회사와 거의 같다고 합니다. 밥먹듯이 밤일이나 밤새움을 해야 하고, 이제 일을 다 마치고 기지개를 켤라 치면 새로운 일감이 떨어집니다. 새벽까지 부시시하게 일하다가 회사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거나 몸을 씻기 일쑤입니다.



‘올봄 디자인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익숙지 않은 용어와 꽉 찬 담배 연기와 반복되는 자문자답에 완전히 쩔어 있다. 난 왜 여기 있는 거지?’ (4∼5쪽)


‘가장 필요했던 건 침대 따위가 아니라, 그 손이었는데, 이젠 굉장히 멀어 … 하지만, 솔직히 지금 나에겐 눈앞의 일을 납기 마감에 맞출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큰 문제라.’ (23, 25쪽)



  만화책 《오전 3시의 무법지대》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째, 사내들이 밤새움을 밥먹듯이 하는 회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둘째, 회사 일을 밤을 새우며 하더라도 남녀 사이에 나누는 짝짓기를 저버리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셋째, 많이 어리거나 젊은 나이에 홀로서기를 하면서 홀가분하게 살림을 꾸리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넷째, 꿈으로 나아가고 싶은 젊은 넋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섯째, 아주 조그마한 일에도 마음을 달랠 수 있지만, 바로 이 조그마한 일 때문에 마음을 다치는 가녀린 넋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 만화책에서 주인공은 사내 아닌 가시내입니다. 사내들이 우글거리고, 사내들이 변태스러운 짓을 하며, 사내들이 미친듯이 일감을 우악스레 맡아서 꾸역꾸역 해치우는 곳에 여린 가시내가 막내 일꾼으로 들어옵니다. 수많은 가시내가 막내로 들어왔다가 이곳에서 못 버티고 떠나는데, 이 일터는 재미있게(?)도 막내 일꾼을 자꾸 사내가 아닌 가시내로 뽑습니다. 일러스트와 디자인을 맡을 사람을 찾다 보니 사내는 드물고 가시내가 많을 수 있지만, 회사나 사회 얼거리를 살핀다면, 이만 한 일터라면 웬만한 사내도 버티기 힘든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괴로워 마땅한 그런 파괴적인 광경을 눈앞에 두고도 ‘어쩔 수 없지 뭐’라고 생각해 버릴 정도로 여자의 감성이 저하된 자신과,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저 맞은편에서 나부끼는 형광 핑크 현수막에 눈을 빼앗기는 자신. 도모코가 만든 거네, 예쁘다. 파칭코 현수막을 보고 ‘예쁘다’라…….’ (30∼31쪽)


“진짜 아무것도 안 느껴지더라. 충격이고 슬픔이고. 오히려 후련하기까지 하더라고. 이상하지?” “이상해. 널 그렇게 만든 게 회사라면, 그딴 데 가고 싶지도 않다.” ‘만약 회사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난 울었을까.’ (48쪽)



  일이 힘든 사람한테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일이 힘들다고 하는 사람은 무엇을 바랄까요? 왜 우리는 즐겁고 신나게 일하기보다는, 힘들고 고단하게 일하려 할까요? 일감을 더 많이 따와야 먹고살 수 있을까요? 저마다 일감을 더 따오려고 하는 바람에 먹고살 길이 외려 더 팍팍하지 않을까요? 알맞게 나누고 알맞게 쓰며 알맞게 일할 적에 삶이 눈부시게 빛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을 말하면, 매일 꽤 즐겁게 일하고 있다. 더 깊이 말하면, 요즘 들어서는 그만두고 싶은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70∼71쪽)


“이제 그만 결정해야지. 모모코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우릴 위해서도. ‘이딴 회사’라도, 우린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78쪽)



  만화책 《오전 3시의 무법지대》에서 말하는 ‘오전 3시’란 “밤 세 시”입니다. 밤 세 시에도 일해야 하는 곳이요, 밤 세 시는 아무것이 아닌 일터입니다. 아니, 밤 세 시까지 일을 마치고는 까무룩 잠이 드는 일터라고 할 만하다는 소리도 될 텐데, 문득 생각해 보면, 시골에서는 으레 네 시 즈음 일어나서 하루를 엽니다.  시골사람으로서는 새벽 네 시이건 세 시이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저 하루를 여는 때일 뿐입니다.


  고요한 서너 시에 눈을 뜨면, 맨 먼저 개구리 소리하고 풀벌레 소리가 잦아드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무렵에는 밤새도 거의 숨을 죽입니다. 다섯 시쯤 되면 낮새가 바지런히 깃을 털고 일어납니다. 풀잎도 나뭇잎도 가만히 자면서 이슬을 머금는 새벽 서너 시입니다. 이리하여 이런 때에 맨 먼저 일어나서 하루를 여는 사람을 두고 ‘이슬떨이’라고 하는 이름을 붙였겠지요. ‘이슬떨이’나 ‘이슬받이’로 하루를 여는 사람은 언제나 씩씩하면서 야무지고 의젓합니다. 즐겁게 노래하면서 삶을 짓고, 기쁘게 꿈꾸면서 일손을 잡습니다.


  그러니까, 《오전 3시의 무법지대》에 나오는 여린 아가씨는 이슬떨이나 이슬받이와 같은 길을 간다고 할 만합니다. 이 여린 아가씨를 아끼던 선배 언니도 지난날에는 이슬떨이나 이슬받이와 같은 길을 갔을 테고요.



‘하고 싶은 일과,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즐거운 일. 즐거운 일을 선택하면 안 되는 걸까?’ (93쪽)


“내일 데이트라며, 얼른 일 끝내야지.” “데이트. 그런 거나 가도 될까요?” “무슨 소리야? 파칭코 가게 바닥의 고작 80cm 공백이랑 자신의 데이트랑 뭐가 더 중요해? 응? 뭐냐고? 당연히 데이트지!” (151쪽)



  네무 요코 님 만화책 《오전 3시의 무법지대》에 나오는 사내들은 ‘사람 마음’을 잘 못 읽습니다. ‘사람 마음’을 헤아려 보려는 사내도 있으나, ‘사람 마음’을 도무지 못 헤아리는 사내가 꽤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내는 만화책에만 있지 않습니다. 만화책 바깥, 그러니까 우리 사회 곳곳에도 ‘사람 마음’을 읽지 못하거나 헤아리지 않는 사내는 참으로 많습니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읽지 못하거나, 사람으로서 사람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내라고 할까요.


  꽤 많은 사내는 밥을 차리는 기쁨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합니다. 참 많은 사내는 빨래하고 아이들 돌보는 사랑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합니다. 무척 많은 사내는 살림을 짓고 밭을 가꾸는 꿈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합니다.


  힘을 써서 더 많은 짐을 짊어지는 사내는 힘을 덜 쓰거나 못 쓰면서 짐을 짊어지지 못하는 사람들 마음을 잘 모릅니다. 어쩌면, 알려고 하는 생각조차 없을는지 모르지요. 여리거나 아프거나 슬프거나 괴로운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알려고 하는 사내가 드물 수밖에 없을는지 모릅니다. 사내는 예부터 전쟁터에 끌려가서 다른 사람을 죽이는 짓을 저질러야 했고, 사내는 힘자랑을 해야 뭔가 대단하다는 듯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하니까요. 4348.8.4.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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