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달리다가



  아이들을 태우고 한여름 들길을 자전거로 달리다가 문득 멈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들은 어쩐지 얄궂지 않은가? 멧등성이나 멧자락에 있던 나무를 솎아내면서 찻길을 늘리거나 햇볕전지판을 늘리는 모습은 아무래도 아리송하지 않은가?


  나무를 건사하거나 심으려고 하는 까닭은 ‘오늘 내가 쓸 생각’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무를 건사하거나 심는 마음은 적어도 백 해나 이백 해 뒤에 이 땅에서 살아갈 뒷사람을 헤아리려는 뜻이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쓰는 나무’라고 한다면 적어도 백 해나 이백 해 앞서 이 땅에서 살던 사람이 아끼거나 건사하거나 돌보거나 심은 나무인 셈이다.


  지구가 무너져도 능금나무를 심는다고 하는 할배는 이녁이 능금알을 얻으려는 뜻이 아니다. 이녁이 사는 이곳에서 지구별이 참말 무너질는지 안 무너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이녁은 곧 흙으로 돌아간다고 느끼기 때문에, 아무튼 능금나무를 심어서 ‘이 땅에서 살며 누린 고마운 능금알’을 이녁 뒤를 이어서 이 땅에서 살 아이들한테 선물로 나누어 주고 싶은 뜻이다.


  오늘 이 들에서 농약을 뿌리는 ‘어른’은 무슨 생각일까? 농약에 찌든 들을 물려받을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누려야 할까?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도, 송전탑과 골프장도, 고속도로와 온갖 터널도, 참말 아이들이나 먼먼 뒷사람을 헤아리면서 짓는 시설일까? 입시지옥 따위를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 ‘오늘 이 나라 어른’일까? 4348.8.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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