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사람, 글쓰는 사람



  ‘말하다’는 한 낱말이다. ‘글쓰다’는 한 낱말이 아니다. 말하는 사람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고, 글쓰는 사람은 이 지구별에 생긴 지 얼마 안 된다. 아스라하구나 싶도록 오랫동안 사람은 누구나 말을 했다. 아니, 사람이라면 마땅히 말을 하면서 삶을 지었다. 입에서 터져나온 말은 모두 삶이었고, 꿈이나 사랑은 언제나 말로 꽃피웠다고 할 만하다.


  글이나 책이라고 하는 문화나 문명은 역사가 대단히 짧다. 게다가 수많은 글이나 책은 요 천 해나 이천 해 사이에 몇몇 사람 손에서 태어나고 몇몇 사람 손에만 읽혔을 뿐이다. 글이나 책이 지구별 사람한테 두루 퍼진 지는 기껏해야 백 해쯤이라고 할 만하다.


  이제 지구별에서는 ‘글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글(서류)을 만지작거리는 솜씨를 가르치는 학교가 대단히 많고, 웬만한 사람은 글(문서)을 오물조물거리면서 돈을 번다. 숱한 공무원과 회사원은 ‘글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옛날에 처음 태어난 ‘말’을 다루는 ‘글’이라고 할까.


  시골에서 땅을 짓는 사람(말)이 있기에, 도시에서 회사를 꾸리거나 정치를 엮는 사람(글)이 있다. 대통령이건 시장이건 재벌 우두머리이건 의사이건 법관이건, 시골지기(말)가 있기에 비로소 이들은 손에 흙 한 번 묻히지 않고도 먹고산다. 그런데, 시골지기(말)가 사라지면 어찌 될까? 그때에도 도시에서 문화나 문명이 버틸 수 있을까?


  말이 있어야 글이 있다. 말이 없이 글이 있을 수 없다. 한국말이 있으니 이를 한글로 담는다. 한국말이 없다면 한국사람으로서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그러나, 말(시골과 숲과 사랑)을 살피지 않고 글(도시와 문명과 기계)만 주무르며 이론과 지식을 퍼뜨리는 사람이 자꾸 늘어난다. 말은 모르는 채 글만 뚝딱거리는 책을 손에 쥐는 사람도 자꾸 늘어난다. 말은 아예 잊은 채 글만 붙잡는 사람도 자꾸 생긴다. 삶이 없이 읊는 글은 문학도 철학도 종교도 정치도 교육도 안문도 되지 않는다. 4348.7.26.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