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68 마루, ‘밀다·미루다’



  ‘갓머리’나 ‘멧마루’나 ‘산마루’ 같은 말이 있습니다. ‘물결마루’나 ‘마루터기’나 ‘고갯마루’나 ‘등마루’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루’는 맨 위쪽 자리를 가리킵니다. 한창 고비에 이른 흐름이나 결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집에서는 방과 방을 잇는 한복판이면서, 집과 마당을 잇는 자리가 ‘마루’입니다.


  가만히 보면, 고갯마루나 물결마루는 ‘가장 높은 곳’이면서, 이곳과 저곳을 잇는 구실을 합니다. 집에서 마루도 이곳과 저곳을 잇는 노릇을 합니다. 이곳과 저곳을 잇되 가장 높이 있는 자리가 마루인 셈입니다.


  마루에 서면 어디나 돌아볼 수 있습니다. 마루에 있기에 모든 일을 환하게 꿰뚫어볼 수 있습니다. 마루에 서지 않으면 내가 있는 자리를 헤아리지 못하고, 마루에 있지 않으면 내 할 일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내 일을 너한테 밉니다. 네 일을 나한테 밉니다. 서로 밀고 당깁니다. 반갑지 않으니 밀어 줍니다. 달갑지 않기에 자꾸 밀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기쁘거나 반갑거나 고마운 선물을 서로서로 밀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밀’지 않고 ‘미루’기도 합니다. 오늘 누릴 삶을 오늘 누리지 않고 다음날로 미루기도 합니다. 내가 할 몫을 스스로 하지 않고, 남한테 미루기도 합니다.


  마루에 서는 사람은 어떤 일이든 남한테 밀거나 미루지 않습니다. 마루에 있는 사람은 모든 일을 스스로 맞아들여 건사합니다. 마루에 서지 않으니 으레 이쪽으로 저쪽으로 자꾸 밀고 맙니다. 마루에 있지 않은 탓에 지레 발목을 잡아서 남한테 미루거나 다른 날로 미룹니다.


  내 몸을 지키려면 내가 손수 밥을 떠서 먹어야 합니다. ‘밥술 뜨기’를 남한테 미루면 어떻게 될까요. 내 밥을 내가 안 먹고 미루면, 내 몸은 어떻게 될까요. 나는 바람을 마셔야 목숨을 잇습니다. 그런데 내가 ‘바람 마시기(숨쉬기)’를 안 하고 미룬다면, 내 숨을 내가 안 마시고 너더러 마시라고 한다면, 이렇게 미루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미루는 삶은 ‘죽음’으로 갑니다. ‘미루기’는 곧 ‘죽음’입니다. 나한테 오는 것을 너한테 민다고 하면, 이때에는 죽음길로 가지는 않으나 죽음길과 가까이 다가섭니다. 왜 남한테 밀까요. 남한테 밀 까닭이 없고, 남을 밀어서 어느 쪽으로 보낼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받을 것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내가 받으면 됩니다. 내가 누릴 것은 선물이든 가시밭길이든 스스럼없이 누리면 됩니다. 나는 모든 삶을 누리면서 온사랑을 나눕니다.


  마루에 서야 합니다.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마루를 보아야 합니다. 미루려는 생각을 지워야 합니다. 마루에 깃들어 아름다운 사랑으로 삶을 지어야 합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그만 내 삶을 스스로 놓치면서 죽음길로 가는 어리석은 짓은 그쳐야 합니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여겨 미룰 수 있겠지요. 그러면, 언제 때가 올까요. 잘 하든 잘 못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하면 되고, 잘 못하면 잘 못하는 대로 하면 됩니다. 굳이 미루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겪거나 치르지 않는다면, 무엇을 잘 하거나 무엇을 잘 못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온몸과 온마음으로 마주하면서 겪거나 치를 때에 ‘내가 나를 제대로 바라보’아서 ‘내가 나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제대로 못 보고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나는 내 삶을 제대로 가꾸지 못합니다.


  마루에 서는 사람만이 사람다운 삶으로 사랑을 짓습니다. 마루에 깃들면서 삶을 지으려는 사람일 때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랑을 나누면서 하루를 새롭게 엽니다. 4348.3.5.나무.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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