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달팽이호 아이북클럽 16
사토 사토루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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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07



버려진 자동차도 놀이터가 된다

― 비밀의 달팽이 호

 사토 사토루 글

 무라카미 쓰토무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크레용하우스 펴냄, 2000.8.17. 7500원



  마당에 이불을 널면, 이불은 아이들 놀이터가 됩니다. 두 아이는 이불 사이로 들어가서 숨기놀이를 합니다. 마당에 커다란 고무통을 놓으면 이곳에 물을 채워서 놀기도 하고, 물을 안 채워도 안에 숨거나 위에 올라타면서 놉니다. 커다란 고무통은 언제나 아이들 ‘숨기놀이터’ 구실을 합니다.


  두 아이가 퍽 작았을 적에는 평상 밑으로 기어들었습니다. 이제 두 아이는 평상 밑에 기어들지 못할 만큼 몸이 자랐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아쉬워 할 수 있습니다만, 시골집에는 이곳저곳 숨을 데가 많습니다. 크게 자란 모시풀 뒤로 숨어도 되고, 큰나무 뒤에 숨어도 되지요. 어디나 놀이터요, 어디나 숨는 곳이며, 어디나 신나는 곳입니다.



어느덧 아키라도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치원 때와 달라진 건 별로 없었습니다. 반 아이들은 다들 아키라를 왠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아이라고 여겼죠. 하지만 아키라는 여전히 자기가 굼뜨고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19쪽)



  사토 사토루 님이 빚은 어린이문학 《비밀의 달팽이 호》(크레용하우스,2000)를 읽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달팽이 호’는 ‘버려진 자동차’입니다. 마을 한쪽에 빈터가 있고, 빈터에 버려진 자동차가 있습니다. 빈터는 오래도록 빈터입니다. 빈터에 들어가지 말라며 줄을 쳐 놓지만, 아이들은 어떻게든 개구멍을 내어 빈터에서 놀려고 합니다. 어른 눈치를 보지 않을 만한 놀이터를 찾고 싶고, 다른 동무는 모르는 호젓한 ‘숨기놀이터’를 얻고 싶거든요.



다쓰오는 외아들인데 목에 열쇠를 걸고 다니진 않았습니다. 집에 할머니가 계시니까요. (25쪽)


“다쓰오, 저 자동차 말이야, 우리 비밀 기지로 삼지 않을래?” “기지?” “응. 국제 구조대나 우주 순찰대 같은 건 모두 비밀 기지를 갖고 있잖아.” (49쪽)



  가만히 돌아보면, 어른들은 아파트를 짓거나 재개발을 할 적에 어린이를 생각하는 일이 드뭅니다. 온갖 시설을 갖춘 아파트를 짓는다든지, 오래된 마을을 밀고 새로운 마을로 바꾸려고는 하지만,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 만한 마을을 생각하지는 못합니다. 아파트 한쪽에 놀이터를 마련하기는 하더라도, 놀이기구가 아니라 ‘아이들이 마음껏 다루거나 뚝딱거릴 수 있는 놀잇감’은 생각하지 못해요.


  아이들은 흙을 파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나무를 타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냇물에서 멱을 감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들판을 달리다가 뒹굴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온몸에 흙투성이가 되도록 놀고 싶습니다. 실컷 놀다가 드러누워서 낮잠을 잘 만한 잔디밭이나 나무 그늘을 헤아리면서 놀이터를 짓는 건설회사 어른은 얼마나 될까요?



다카시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서, 책을 아주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보통 책은 물론이고 오래된 만화 잡지도 몽땅 모아 두었죠. 다쓰오와 아키라는 그걸 빌려 읽었고요. 그럴 때면 달팽이 호는 마치 작은 도서관 같았습니다. (77쪽)



  내가 태어나서 살던 도시에도 버려진 자동차가 제법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곳에 버려진 자동차가 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누가 그곳에 자동차를 버렸는지 알 노릇도 없습니다. 다만, 마을 한쪽에 버려진 자동차가 있었고, 마을 아이들은 저마다 그 버려진 자동차를 놀이터로 삼습니다.


  다만, 주먹힘이 센 아이가 맨 먼저 놉니다. 주먹힘이 센 아이가 없으면 살살 살피다가 조용히 이 자동차에 들어가 봅니다. 운전대를 잡아서 돌려 보고, 이곳저곳 뒤집니다. 여러 아이가 자동차 지붕에 올라타기도 하고, 뒷자리에 앉아서 여기를 가라는 둥 저기를 달리라는 둥 조잘조잘 떠들면서 어디로든 달립니다. 버려진 자동차는 언제나 한곳에 멈춘 채 있지만, 이 자동차를 탄 수많은 아이들은 마음으로 그리는 새로운 터전으로 훨훨 날아갑니다.


  그런데, 버려진 자동차에서 한창 놀다가 어른들이 지나갈라치면 조용히 숨습니다. 마을 어른한테 들키면 크게 나무라면서 내쫓거든요. 어른이 지나갈 적에 조용히 숨을 죽이면서 숨는 몸짓도 재미난 놀이입니다.



다쓰오는 달팽이 호에서 얻은 소중한 백미러를 책상 앞에다 장식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금 들여다보았죠. 보통 거울과 똑같은 아주 평범한 거울이었지만, 다쓰오는 때때로 그 거울 속에서 커다란 분화구가 빽빽이 늘어선 달 표면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125쪽)



  아이라면 누구나 말타기를 좋아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말이 되어 아이를 태워 주면 몇 시간이고 말타기를 누리려 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등짝을 말등으로 삼은 아이는 방하고 마루 사이를 오가더라도 ‘방하고 마루’가 아니라 너른 들이나 숲이나 골짜기를 달린다고 여깁니다. 여러 별 사이를 가로지른다고 여기기도 하고, 높은 봉우리를 타넘는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 모든 아이들이 시골에서 시골일을 하면서 소등에 올라타며 놀던 무렵,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면서 하루를 보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고작 쉰 해 앞서만 하더라도, 백 해 앞서만 하더라도,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가슴이 따뜻한 집짐승’ 등짝을 어루만지면서 들길을 걸었겠지요.


  이제 오늘날 아이들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모는 자동차를 타고 어디로든 갑니다. 커다란 할인마트에도 가고, 고속도로도 달리며, 놀이공원이나 바다로도 갑니다. 학원버스를 타고 학원을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큰도시에 촘촘히 있는 지하철을 타기도 합니다.


  탈것도 많고, 버스나 자동차가 아주 많은 요즈음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와 함께 비행기나 기차나 배도 어렵잖이 타고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즈음 아이들은 이것 저것 타면서 얼마나 꿈을 키우거나 놀이를 즐기려나요. 요즈음 아이들은 기쁘게 웃고 노래하면서 온 하루를 놀이로 보낼 수 있으려나요. 4348.7.19.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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