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캥거루야 이제 뭘 할까? 꼬마 그림책방 12
에마 치체스터 클락 글 그림, 이상희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49



스스로 놀이를 지을 줄 아는 아이들

― 파란 캥거루야, 이제 뭘 할까?

 에마 치체스터 클라크 글·그림

 이상희 옮김

 아이세움 펴냄, 2004.9.20.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이 아이들이 많이 어릴 적에는 “인형 이름이 뭐야?”라든지 “인형은 이름이 뭐예요?”라든지 “이 인형한테는 무슨 이름을 붙여 주지?” 같은 말을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제법 자라고 나서는 아이들 스스로 인형한테 이름을 붙여 줍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저마다 저희 마음에 드는 이름을 짓습니다.


  아이들이 인형이나 장난감이나 꽃이나 돌한테 붙이는 이름은 날마다 바뀌기도 하고, 하루에도 수없이 바뀌기도 합니다. 어느 때에는 퍽 오랫동안 한 가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아이라면 모름지기 인형이나 장난감뿐 아니라, 돌이나 옷장이나 옷이나 나무토막하고도 말을 섞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파란 캥거루는 릴리 거예요. 누구 것도 아닌 릴리 캥거루랍니다. 뭘 하고 놀면 좋을지 모를 때 릴리는 물어 봐요. “파란 캥거루야, 이제 뭘 할까?” (3쪽)



  에마 치체스터 클라크 님이 빚은 《파란 캥거루야, 이제 뭘 할까?》(아이세움,2004)를 읽습니다. 나도 읽고 아이들도 읽습니다. 나는 혼자서 이 그림책을 읽고, 큰아이는 작은아이를 곁에 두고는 그림책을 읽어 줍니다.


  그림책 《파란 캥거루야, 이제 뭘 할까?》는 혼자 놀아야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놀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생각하는 하루를 보여줍니다. 한집에서 함께 사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이모도 모두 바쁠 수 있습니다. 아이하고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참말 함께 못 놀 수 있어요.


  이때에 아이는 어떻게 할까요? 으앙 하고 울면서 달라붙으면 될까요? ‘안 돼!’ 하고 빽 소리를 지르면서 떼를 써야 할까요? 아니면, 아무 말 없이 고분고분 따라야 할까요?



“다 그렸다!” 그런 다음 릴리는 또 물어 봐요. “파란 캥거루야, 이제 뭘 할까?” 캥거루는 아무 말도 안 해요. (7쪽)



  아이는 누구나 놀이를 스스로 지을 줄 압니다. 누가 시켜야 하는 놀이가 아닙니다. 스스로 하고 싶기에 하는 놀이입니다. 놀잇감이나 장난감을 주어야 하는 놀이가 아닙니다. 아무것이 없다고 할 만한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하는 놀이입니다. 맨손이나 맨몸으로도 기쁘게 노는 아이예요.


  어버이나 어른은, 아이가 스스로 기쁘게 놀 줄 아는 마음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야지 싶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기쁘게 놀고, 어른은 스스로 기쁘게 일할 줄 알아야지요. 아이는 마당이든 마루이든 방이든 어디에서든 신나게 놀 줄 알 뿐 아니라, 놀잇감을 찬찬히 치울 줄 알아야지요. 어른은 즐겁게 노래하면서 밥을 차린 뒤, 다시 즐겁게 노래하면서 설거지랑 청소를 할 줄 알아야지요.




“나 혼자 해야겠네.” 릴리는 손수레에다 비에 젖은 동물 친구들을 다 실은 다음, 집으로 달려가요. (17∼19쪽)



  그림책 《파란 캥거루야, 이제 뭘 할까?》를 보면, 비가 쏟아지는 저녁에 아이가 씩씩하게 혼자 마당으로 나가서 인형을 집으로 들이는 모습이 나옵니다. 아이는 캄캄한 밤에 빗소리를 들으며 아차 하고 생각하지요. 놀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적에 인형을 몽땅 마당에 두었거든요. 이튿날 다시 놀기로 하면서 그대로 두었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안 치운 셈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든 어른을 깨워서 비에 안 맞도록 해 달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함께 집으로 들이자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씩씩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스스로 하면 될까요?



파란 캥거루는 속으로 중얼거려요. ‘릴리가 아기 곰을 깜빡 잊었어. 이제 뭘 할까?’ (25쪽)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스스로 하기로 생각합니다. 비옷을 갖춰 입고 바지런히 인형을 나릅니다. 그런데 아기 곰 인형 하나를 빠뜨립니다. 아이는 미처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이하고 늘 함께 다니는 ‘파란 캥거루 인형’은 이를 알아챕니다.


  파란 캥거루 인형은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저 물끄러미 아이를 지켜봅니다. 아이는 인형을 다 들였다고 생각하면서 느긋하게 잠자리에 듭니다. 파란 캥거루 인형은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깨우지 못합니다. 그리고, 파란 캥거루 인형이 ‘움직입’니다.


  그림책이기 때문에 인형이 움직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인형은 참말 ‘모두 잠든 밤에 조용히 홀로 움직인다’고 할 만할까요. 아무튼, 파란 캥거루 인형은 아이를 생각하면서 몸을 움직이기로 했고, 마당에서 비를 쫄딱 맞으며 꼼짝을 못 하는 아기 곰 인형을 집으로 들여놓습니다. 이러고 나서 다시는 움직이지 못하는 몸으로 가만히 섭니다.


  《파란 캥거루야, 이제 뭘 할까?》에 흐르는 이야기를 헤아리다가 《위대한 돌사자 도서관을 지키다》(비룡소,2014)라는 그림책이 떠오릅니다. 도서관을 지켰다는 돌사자가 나오는 그림책에서도 돌사자가 움직였어요. 그러나 꼭 한 번 움직이고는 다시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파란 캥거루 인형이 나오는 그림책에서도 캥거루 인형은 꼭 한 번 움직이고는 더는 움직이지 못해요.


  살다 보면 어떤 것을 잃어버렸구나 하고 느꼈는데 어느 날 문득 아주 잘 보이는 자리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이 나타나는 일이 있습니다. 감쪽같은 노릇이지만, 어쩌면 내가 잠든 사이에 우리 집 인형이 조용히 깨어나서 살그마니 움직여서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을 찾아서 살그마니 옮겨 주었을는지 모릅니다. 나는 두 눈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으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요. 우리 둘레에는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이웃이 되는 수많은 숨결이 있구나 하고 느껴요.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를 지을 수 있는 까닭이라면, 아이들은 저희 둘레에 있는 수많은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숨결을 느끼거나 알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4348.7.17.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