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를 다시 빨아 버린 우리엄마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
사토 와키코 글.그림, 엄기원 옮김 / 한림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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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47



빨래 한 점에 사랑스러운 손길을 담아

― 도깨비를 다시 빨아 버린 우리 엄마

 사토 와키코 글·그림

 엄기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4.6.15.



  드센 비바람이 이틀 동안 몰아쳤습니다. 이틀 동안 빨래를 안 했습니다. 오늘 새벽부터 빗줄기가 가시고 바람이 잠들었기에, 이제 슬슬 빨래를 해야겠네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로 빨래를 하지는 않습니다. 마당이 마를 때까지 기다립니다. 마당이 다 마르지 않고 빗물이 고였을 적에는 빨래가 잘 안 마릅니다.


  아침을 먹고 읍내마실을 다녀온 뒤 빨래를 한 차례 합니다. 낮밥을 먹고 아이들이 실컷 뛰놀게 한 뒤에 땀이랑 때를 벅벅 문질러 씻기고는 빨래를 한 차례 더 합니다. 오늘은 빨래를 두 차례 하지만, 아직 빨랫감이 남습니다. 마저 다 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이튿날로 미룹니다. 하루에 빨래를 세 차례 하면 어깨가 좀 뻑적지근하거든요.




“하늘이 흐리지만 빨래를 미룰 수는 없지.” 엄마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억센 팔로 빨래를 했습니다. (2쪽)



  사토 와키코 님이 빚은 그림책 《도깨비를 다시 빨아 버린 우리 엄마》(한림출판사,2004)를 아이들이 재미나게 읽습니다. 사토 와키코 님은 ‘빨래하는 어머니’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여러 권 그렸고, 이 가운데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1991)하고 《달님을 빨아 버린 우리 엄마》(2013)가 한국말로 나왔어요. 《도깨비를 다시 빨아 버린 우리 엄마》는 한국말로 나온 두 번째 ‘빨래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우리 엄마’는 늘 손빨래를 합니다. 마당 한쪽에 빨래바구니를 놓고는 빨래판으로 옷가지를 벅벅 비벼서 손빨래를 하지요. 한겨레 빨래살이하고는 살짝 다릅니다. 우리 겨레는 마당에서 빨래를 하지 않아요. 마을 빨래터에 옷가지를 이고 가서 빨랫돌에 옷을 척척 올리고는, 빨래방망이로 철썩철썩 두들기면서 빨았어요.


  아무튼 ‘빨래하는 어머니’가 나오는 그림책을 보는 우리 집 아이들은, 이 그림책에서 ‘빨래하는 아버지’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우리 엄마’는 빨래를 좋아해서 늘 소매를 걷어붙입니다. 아이들이 늘 얼굴을 맞대는 ‘우리 아버지’는 빨래를 좋아해서 웃통을 벗고 신나게 북북 비빕니다.



“우리 집에 있는 커다란 연을 날려서 구름 위에서 말리면 되겠군. 구름 위에는 햇볕이 있으니까 금세 말릴 수 있어.” (8쪽)





  그림책에 나오는 ‘빨래하는 어머니’는 날이 찌푸리지만 빨래를 미루지 않습니다. 멋지고 당찹니다. 아무렴, 저도 우리 집 두 아이가 갓난쟁이였을 적에는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신나게 빨래를 했습니다. 한겨울에 눈이 와도 눈발이 그쳤다 싶으면 조금이라도 바깥바람을 쏘인 뒤 집으로 들였습니다.


  그나저나 날이 찌푸려서 빨래가 잘 안 마를 듯하니, ‘빨래하는 어머니’는 걱정스럽습니다. 요리조리 생각하다가 아하 하고 손뼉을 칩니다. 연줄에 빨래를 꿰어 높이높이 날려야겠다고 생각해요.


  빨래쟁이라 할 어머니는 어쩌면 연놀이를 하고 싶었을 수 있어요. 빨래를 널면서 연을 날리고 싶었다고 할 만해요. 연날리기란 얼마나 재미있는가요. 아이한테만 재미있는 연날리기가 아니라, 어른한테도 몹시 재미납니다.


  빨래쟁이 어머니는 연줄을 높이 드리워서 기쁘고 신납니다. 그런데 구름 너머에서 놀던 도깨비는 깜짝 놀라요. 아무도 구름 위로 오지 않을 텐데 연이 불쑥 고개를 내미니까요.


  천둥번개도깨비는 무슨 일인가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이윽고 연줄인 줄 알아챕니다. 그리고, 연줄에 매달린 옷가지처럼 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올망졸망 귀여운 천둥번개도깨비는 구름놀이는 그만두고 땅으로 날아갑니다. 빨래쟁이 어머니한테 천둥번개도깨비를 모조리 빨아서 널어 달라고 얘기해요.



천둥번개도깨비들은 하늘에서 내려와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빨아 주세요.” “말려 주세요.” “아주 높이높이 올라가고 싶어요.” “펄럭펄럭 날게 해 주세요.” (19쪽)




  빨래를 좋아할 뿐 아니라 잘 하는 어머니는 도깨비도 척척 빨듯이 씻깁니다. 이러고 나서 수없이 많은 도깨비를 연줄에 꿰어 구름 너머로 훨훨 날립니다. 도깨비는 저희 스스로 하늘을 날 줄 알 텐데 일부러 연줄에 꿰이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집 아이들도 빨래터에서 일부러 옷을 적시며 놉니다. 처음에는 옷을 적실 생각이 없으나, 물을 튀기고 던지다가 어느새 온몸을 적시고, 이윽고 빨래터 바닥에 엎드리거나 누워서 개구리가 되어요.


  옛날에는 냇가에서 어머니가 빨래를 하면, 아이들은 냇물놀이를 즐깁니다. 빨래를 마친 옷을 널 적에 아이들은 곁에서 거듭니다. 이불을 빨아서 너는 날이라면 아이들은 이불놀이를 하면서 마당을 가로지릅니다. 빨래를 비롯한 집안일은 힘을 많이 들여야 합니다. 그리 만만하거나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웃고 노래하면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새롭게 기운이 솟아요. 어버이가 아이들하고 딱히 놀아 주지 못해도, 아이들은 저희끼리 물놀이를 하고 이불놀이를 하며 마당놀이를 합니다.


  빨래하는 어버이는 빨래를 하는 동안 일놀이를 누립니다. 두 손으로 비비든 빨래방망이를 두들기든 일이면서 놀이입니다. 옷가지를 비틀어 물을 짜도, 빨랫줄에 척척 널어도, 언제나 일놀이입니다. 그래서 빨래를 하며 빨래노래를 부릅니다. 밥을 지으며 밥노래를 부르고, 풀을 뜯으며 풀노래를 불러요. 잘 놀아 기운이 빠져 낮잠을 자는 아이를 달래며 잠노래(자장노래)를 부릅니다. 들일을 하며 들노래를 부르고, 바느질을 하며 바느질노래를 불러요.



하늘로 돌아가는 천둥번개도깨비들을 보고 엄마가 말했습니다. “빨래하러 또 오렴! 맑은 날도, 비가 오는 날도 언제든지 빨래할 수 있으니까!” (32쪽)



  삶은 일하고 놀이로 이루어집니다. 일만 하는 삶이 아니요, 놀이만 하는 삶이 아닙니다. 일하고 놀이를 함께 하면서 사랑이 싹트는 삶입니다. 일하고 놀이를 지으면서 사랑이 싹트기에 꿈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빨래를 조물조물 주무르면서 온 식구 몸을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빨래가 햇볕하고 바람을 머금으면서 보송보송 마르는 동안 온 식구 마음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씩씩하게 일하고 튼튼하게 놀기를 바랍니다. 기쁘게 일하고 즐겁게 놀기를 바랍니다. 서로 아끼면서 웃음으로 짓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따스한 기운하고 싱그러운 숨결이 옷가지에 깃들기를 바라요. 빨래하는 어버이는 빨래 한 점에 사랑스러운 손길을 담습니다. 4348.7.1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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