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의 아이들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7
김재홍 지음 / 길벗어린이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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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47



아이는 몇 살부터 혼자 집을 볼 수 있을까

― 동강의 아이들

 김재홍 글·그림

 길벗어린이 펴냄, 2000.6.30. 9500원



  아이들은 몇 살쯤 되면 혼자서 집을 볼 수 있을까요? 일곱 살 어린이가 혼자서 집을 볼 만할까요? 아홉 살이나 열 살쯤 되면 의젓하게 집을 볼 만할까요? 언니하고 동생이 있으면, 여러 아이는 몇 살쯤부터 어버이 없는 집을 씩씩하게 볼 만할까요?


  아이마다 다 다르리라 느낍니다만, 일고여덟 살 아이가 혼자서 집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아이하고 함께 놀지 못하고 집에서 다른 일만 하더라도, 한집에 함께 있을 적에는 든든하다고 여깁니다. 곁에 있는 믿음직한 기운을 느끼기에, 아무 걱정도 근심도 없이 놀 수 있습니다.


  아이가 혼자 집을 볼 수 있는 나이란, 제 어버이가 먼 마실을 다녀오더라도 마음으로 늘 함께 있는 줄 알아차리는 때이지 싶어요. 함께 있는 숨결을 더욱 깊고 넓게 느낄 무렵, 아이들은 혼자서 집을 볼 뿐 아니라, 혼자서 도마질도 하고, 비질도 하고, 걸레질도 하고, 작은 옷가지는 혼자 빨래할 수 있습니다.




장날, 어머니는 깨도 팔고 콩도 팔러 장터에 갔어요. 돌아올 땐 순이 색연필하고 동이 운동화도 사 온댔어요. (2쪽)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길벗어린이,2000)을 읽습니다. ‘숨은그림찾기’라는 얼거리가 살며시 깃든 그림책입니다. 강원도 영월 동강이라는 곳을 삶터로 삼은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가 하는 대목을 살짝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다만, 이 그림책은 아이 눈높이가 아니라 어른 눈높이로 그렸습니다. 시골아이가 무엇을 하고 노느냐 하는 대목으로 보여주는 그림책이 아니라, 아련한 옛 시골살이를 떠올리는 오늘날 어른이 ‘아름다운 시골 삶자락’을 요즈음 도시사람한테 알려주려고 빚은 그림책입니다. 아름다운 시골을 잘 지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빚은 그림책이고,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 곱게 자라는 아이들을 따스히 돌보자는 마음으로 엮은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무척 어리다’ 싶은 나이입니다. 혼자 집을 보기에는 아직 어리다 싶은 나이예요. 이만 한 나이인 아이라면, 집에 아버지가 안 계시고 어머니 혼자 계실 적에, 어디를 가든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움직일 테지요. 아침 일찍 저잣거리로 가야 하면, 참말 아침 일찍 아이들을 데리고 움직입니다. 시골아이는 무척 일찍 일어나요. 동이 틀 무렵 아이들도 일어납니다.




“아기 곰아, 그럼 우리 엄마가 내 색연필도 사셨니?” 순이가 아기곰에게 물었어요. “아기 곰이 그러는데, 엄마가 우리 순이 색연필도 사셨대.” 이번에도 동이가 아기곰 대신 대답해 주었어요. (8쪽)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에 나오는 아이들은 맑은 냇물이 흐르는 곳에 커다랗게 박힌 바위를 보면서 큰새를 떠올리고, 아기 곰을 떠올리며, 공룡을 떠올립니다. 큰새야 집 둘레와 마을에서 흔히 볼 텐데, 아기 곰이라면 텔레비전에서 보았을까요? 아니면, 그림책에서 보았을까요? 공룡은 어디에서 보았을까요? 시골아이는 공룡이라는 것을 어디에서 보고 알았을까요?


  아무래도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공룡을 보여주거나 말하기에 ‘공룡’이라고 하면 무섭거나 무시무시한 것이라고 여기지 싶습니다. 지난날에는 ‘도깨비’가 이 몫을 맡았을 테고, ‘귀신’이 이 몫을 물려받았다가, ‘공룡’하고 ‘괴물’이 이러한 몫을 새삼스레 한다고 느낍니다. 막상 코앞에 아무것도 없지만, 마치 뭔가 무서운 것이 있다고 여기지요.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냇가에서 큰새하고 아기 곰을 봅니다. 그러니까, 무엇이든 눈앞에 떠올리면서 놀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공룡이라는 이름을 빌어 술래잡기나 숨기놀이를 하는 셈입니다. ‘경찰 도둑 놀이’가 있어서, 한 사람은 쫓기고 한 사람은 좇으며 놀기도 합니다.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하는 ‘경찰 도둑 놀이’가 아니라, ‘잡기놀이’일 뿐이지만, 이름을 이렇게 붙일 뿐입니다.



“봐라, 아무것도 없잖니?”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어요. “아니, 근데 누가 여기다 빈 병을 버렸누? 쯧쯧.” 할아버지는 빈 병을 배에 싣고 노 저어 가 버렸어요. (25쪽)




  혼자 저잣거리에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냇가에서 물수제비를 뜨고, 바위를 타거나, 먼바라기를 합니다. 문득 우리 집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라면 냇가에서 무엇을 하며 놀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틀림없이 옷을 다 적시면서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헤엄도 치며 깔깔거리리라 생각해요. ‘혼자 집을 보면서 어머니를 기다릴 만한 나이인 아이’라고 한다면, 옴팡 젖은 옷은 벗어서 바위에 척 걸쳐서 말리겠지요. 깊은 멧골에 두 아이만 있다면, 젖은 옷을 벗어서 알몸이 된 채 다시 깔깔거리면서 놀 테고, 이렇게 놀다가 으슬으슬 추우면 바위에 얹어 햇볕에 다 마른 옷을 얼른 꿰겠지요.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가거나 밭자락을 살피거나 들이나 숲에서 푸성귀나 열매를 훑어서 먹을 테고요.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은 ‘동강’이라고 하는 무척 아름다운 시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이 아름다운 시골을 도시에 있는 이웃이 함께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책을 내놓았구나 싶습니다. 어른뿐 아니라 아이도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터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랐구나 싶어요.


  그런데, 이 그림책은 아이들이 보기에는 좀 심심하겠구나 싶습니다. 어머니를 마냥 기다리다가 졸린 동생을 업어 주는 오빠가 듬직하면서 대견하고 사랑스럽습니다만, 두 아이가 시골에서 신나게 노는 삶을 제대로 드러내지는 못하거든요.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모든 걱정이나 근심을 잊거나 털어내는데, 아이가 아이다운 모습을 미처 담지 못했고, 더욱이 시골아이가 시골스럽게 씩씩하면서 의젓한 모습도 찬찬히 그리지 못했습니다.


  그림책 이름이 “동강 아이들”이라면 ‘동강에서 나고 자라며 노는 아이’한테 눈길을 맞출 노릇입니다. 그러나, 그림책에서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데에 눈길을 맞추려 했다면, 처음부터 “동강 숨은그림찾기”를 더 드러내도록 엮을 때에 뜻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림책이라고 해서 꼭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와야 하지 않습니다. 안노 미쓰마사라고 하는 그림책 작가는 ‘사람이 하나도 안 나오는’ 그림책 《숲 이야기》를 그리면서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재미를 한껏 보여줄 뿐 아니라, 숲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가 하는 대목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동강의 아이들》을 빚은 김재홍 님도 ‘숨은그림찾기’라는 대목에 더 눈길을 모아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엮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림책이라고 해서 꼭 ‘아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림책은 ‘아이하고 어른이 함께 삶을 기쁘게 바라보도록 돕는 이야기가 흐르’면 됩니다. 《동강의 아이들》은 동강을 담아낸 그림만으로도 넉넉히 아름답습니다. 이 아름다운 그림을 한결 싱그러이 살리도록 ‘수수께끼 찾는 그림’을 더 그리면 훨씬 재미있었을 텐데 싶어 좀 아쉽습니다. 4348.7.1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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