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펴내는 재미난 잡지 <전라도닷컴>에 싣는 글입니다. <오마이뉴스>에도 이 글을 함께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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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빨래 누리는 아버지



  하루 내내 비가 퍼붓는 날에는 빨래를 할 엄두를 내지 않습니다. 마룻바닥에 앉아서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아이들이 마루와 방과 부엌 사이를 뛰어다니며 노는 소리를 함께 듣습니다. 아이들은 궂은 날이건 맑은 날이건 개구지게 뛰어놀면서 날마다 빨랫감을 내놓습니다. 맑은 날에는 땀이랑 흙으로 버무러진 빨랫감을 내놓고,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맞으며 마당이나 뒤꼍에서 놀다가 넘어지면서 땀이랑 흙이랑 빗물이 어우러진 빨랫감을 내놓습니다.


  이 아이들이 갓 태어나던 때를 가만히 그립니다. 가시내인 큰아이는 막 태어나서 세이레가 될 무렵까지 하루에 천기저귀를 마흔다섯 장씩 내놓았습니다. 삼십 분에 한 장씩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를 베풀었어요. 큰아이를 낳을 무렵 천기저귀를 서른 장 마련했으니, 이 아이가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를 내놓으면 두어 장씩 바지런히 빨았습니다. 백 날이 지날 무렵 하루에 마흔 장 남짓 내놓고, 석 달이 지날 무렵 마흔 장 밑으로 떨어집니다. 기저귀 빨래가 줄 적마다 아기한테 절을 했습니다.


  큰아이는 밤에도 삼십 분마다 오줌기저귀를 베풀었으니, 밤새 잠을 잘 겨를이 없습니다. 참말 처음 보름 남짓 한숨조차 못 자면서 기저귀를 갈아서 빨래하고 미역국을 끓이며 집일을 건사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이렇게 했겠거니 여겼고, 우리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도, 그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도 …… 먼먼 옛날부터 숱한 어머니도 이렇게 했으리라 여겼습니다.





손으로 만지는 삶


  큰아이를 거쳐 작은아이도 천기저귀를 대었습니다. 둘레에서는 ‘왜 그리 힘들게 사느냐?’ 하고 묻더군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는 손빨래가 즐거워요.’ 손으로 아기 똥오줌을 조물락거리면서 기저귀랑 이불을 빨면서 웃는 내 모습이 아무래도 아리송해 보일까요? 날마다 기저귀 빨래가 그득하고, 이불까지 사나흘에 한 차례씩 새로 빨아야 했지만, 기계가 아닌 두 손으로 모든 빨래를 하는 동안 ‘힘들다’는 생각이 아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갓난쟁이 아기를 안고 어르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때때로 물었어요. “얘야, 너도 재미있지? 네 아버지는 어떻게 네가 오줌을 누면 곧바로 알까?” 이무렵, 나는 밤에 잠을 자다가도 아이가 기저귀에 쉬를 하는 소리에 잠을 깨서 기저귀를 갈았습니다. 처음에는 부시시 일어나서 갈았으나 달포쯤 지나고부터는, 누운 채 손만 척척 뻗어서 젖은 기저귀를 풀어서 한쪽에 놓습니다. 다른 한손으로 마른 기저귀를 댄 뒤 척척 이불을 고이 여민 뒤 고요히 쉽니다.


  장마철에는 오줌기저귀가 두 장 나올 적마다 빨고는 곧장 다리미질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기저귀가 잘 마르지 않아 밤새 빨래와 다리미질을 했어요. 고지식한지 어리석은지 바보스러운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기저귀를 빨고, 아기 샅을 달래며, 다리미질을 하고 빨랫줄에 널면서 두 손은 차츰 단단히 야뭅니다. 여느 때에도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힌 몸이었는데, 두 아이를 돌보는 사이 내 손바닥은 훨씬 두툼한 굳은살투성이가 됩니다.


  그나저나 왜 손빨래를 할까요? 손빨래를 하면 무엇이 재미있을까요? 도시에서는 그저 ‘빨래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우리 집은 옥탑집이었기에 빨래를 널며 하늘을 바라보는 기쁨이 컸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해와 구름이 우리 옷가지를 보듬어 준다고 느꼈어요. 시골에서 우리 집은 후박나무랑 동백나무랑 초피나무랑 감나무가 마당을 살그마니 감싸는 예쁜 보금자리입니다. 이곳에서도 하늘과 바람과 해와 구름이 우리 옷가지를 보듬는데, 여기에 나무랑 새랑 풀벌레랑 온갖 풀이랑 개구리랑 뱀이랑 나비랑 잠자리가 우리 옷가지를 어루만져 줍니다. 두 손으로 옷가지를 만지고, 우리를 둘러싼 숲동무와 숲이웃이 빨래를 살살 건드립니다.





 손으로 누리는 사랑


  시골물은 여름에 차고 겨울에 따뜻합니다. 시골물은 여름에 더위를 식히고, 겨울에 추위를 다독입니다. 우리 마을 샘터하고 빨래터는 한겨울에 물이 안 업니다. 한겨울에 물이 따뜻합니다. 어떻게 이러할 수 있을까요? 고이 흐르는 물일 뿐 아니라,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샘터하고 빨래터가 있어요. 여름이고 겨울이고 늘 물을 만져야 하던 옛 어머니와 할머니는 ‘겨울에도 물이 따뜻한 곳’을 잘 살피셨겠지요.


  빨래터에서 손빨래를 하고, 이동안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라치면, 마을 어르신이 으레 “세탁기 없나?” 하고 묻습니다. 우리 집에도 세탁기는 있습니다. 그러께에 집에 들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 ‘빨래 기계’는 늘 쉬고, 내 몸이 움직입니다.


  마당이랑 뒤꼍에서 나물이나 남새를 뜯을 적에 아이들하고 함께 두 손으로 풀내음을 맡으면서 뜯듯이, 빨래를 할 적에도 아이들이 지켜볼 수 있는 자리에서 빨래를 합니다. 아이들하고 논둑길을 걷습니다. 아이들하고 노래합니다. 온 하루를 함께 누리면서 아이들은 어깨 너머로 사랑을 배우고, 아침저녁을 함께 어우러지면서 서로 믿고 아끼는 이야기를 빚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요 사내인 내가 빨래를 도맡으면서 아버지다움과 사내다움을 한결 씩씩하게 배운다고 느낍니다. 아버지요 사내인 나는 스스로 빨래를 하고 밥짓기를 하며 비질이랑 걸레질을 하는 동안 ‘아이를 낳아 누리는 사랑’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내 몸은 아기를 낳지 못하지만, 내 몸은 아이와 곁님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습니다. 빨래란 어떤 일인가요? 힘을 쓰는 일이지요. 밥짓기란 어떤 일일까요? 슬기를 살리는 일이에요. 비질이랑 걸레질이란 어떤 일이 될까요? 즐겁게 노래하는 일이에요. 기계를 빌지 않고 두 손으로 아기 똥오줌을 주무르며 살기에, 아기가 어떻게 자라는가를 더 또렷이 느낍니다. 손수 빨고 널고 말리고 개고 건사하기에, 집살림이 흐르는 얼거리를 찬찬히 되새깁니다.


  손빨래는 손으로 누리는 사랑입니다. 호미질이나 삽질이나 못질이나 톱질은 손으로 짓는 살림입니다. 손으로 밥을 짓고, 손으로 밥을 먹어요. 손으로 살가이 쓰다듬고, 손으로 씩씩하게 빨래를 비빕니다. 맑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빨래를 널면 나도 모르게 노래가 저절로 솟습니다. 4348.6.2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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