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슬란 전기 2 - 만화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다나카 요시키 원작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31



전쟁이 남기는 이야기

― 아르슬란 전기 2

 다나카 요시키 글

 아라카와 히로무 그림

 김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12.25.



  전쟁이 남기는 이야기는 ‘전쟁영웅’ 이야기이거나 ‘전쟁피해’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전쟁에서 지거나 이긴 이야기가 있고, 전쟁으로 땅을 잃거나 빼앗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역사책에는 전쟁 이야기가 꽤 넓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전쟁터에서 훈장을 가슴에 단 몇몇 이름난 장수 이름이 역사책에 나오고, 이름난 몇몇 장수를 거느린 임금 이름도 역사책에 나옵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 이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쪽이든 진 쪽이든, 여느 병사는 그저 목숨을 맡겨야 할 뿐, 아무것도 되지 못합니다.. 



“감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르슬란 전하. 저는 전하의 부군께 1만 닢이나 되는 금화를 받은 적이 있지요. 오늘 식사는 은화 한 닢도 못 되는 것이었습니다.” (11쪽)

“전하, 새삼스레 아뢰기도 부질없사오니, 부왕 폐하께서는 노예제도를 폐지하셔야 했습니다. 국가에게 학대를 받았던 자가 어떻게 국가를 위해 싸울까요?” (14쪽)



  《아르슬란 전기》(학산문화사,2014) 둘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갑자기 등돌린 장수가 있어서 나라를 빼앗긴 이들이 있고, 이들은 힘과 슬기를 모아서 나라를 되찾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임금 자리에 앉아서 정치를 꾀한다는 사람만 바뀔 뿐, ‘나라를 버티는 바탕이 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대로입니다.


  흙을 부치는 사람도 늘 그대로입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는 사람도 늘 그대로입니다. 궁궐에서 밥을 짓는 사람도 늘 그대로입니다. 심부름꾼이 되거나 짐꾼이 되는 사람도 늘 그대로입니다.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으레 명예나 종교를 내세웁니다.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지구별이 오직 한 사람 손으로 움직여야 하는 듯이 여깁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사랑을 가꾸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헤아리는 권력자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전쟁무기를 안 만들면서 다 함께 손을 맞잡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권력자는 그야말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전쟁도 정치도 어차피 재가 되어 사라질 뿐. 후세에는 오로지 위대한 예술만이 남는 법입니다.” (17쪽)

“나는 루시타이아의 고명한 화가에게 죽은 모습을 그리게 하느니, 나르사스에게 살아 있는 모습을 그려 달라고 하고 싶다.” (40쪽)



  어느 모로 보아도 전쟁은 그저 전쟁입니다. 너를 죽이느냐 내가 죽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는 전쟁입니다. 네 것을 내가 빼앗느냐, 아니면 내 것을 네가 빼앗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다투는 전쟁입니다.


  너랑 내가 이웃이라면 우리 둘 사이에 전쟁무기가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나랑 네가 이웃이라면 우리 둘 사이에 가시울타리를 쳐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가 다 함께 이웃이라면 서로 윽박지르거나 깎아내리는 짓을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냉큼 죽여라. 네놈들의 신 따위에게 구원을 받느니 나는 지옥이든 어디든 가 주마. 그리고 그곳에서 네놈들의 신과 국가가 네놈들 자신의 잔인함에 잡아먹히는 모습을 지켜봐 주지!” (68쪽)

“절세까진 아니지만 미인을 죽이다니 무슨 짓이냐! 살아 있었으면 뉘우치고 나를 벌어먹여 줬을지도 모르는데. 나 원, 연약한 여자를 목 졸라 죽이고, 심지어 타고 넘기까지 하다니, 네가 말하는 ‘참된 정의’가 인간의 존엄을 타고 넘어가는 거냐?” (114쪽)



  둘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니 ‘이교도’라는 말을 합니다. 둘이 서로 아끼지 않으니 한쪽은 ‘노예’가 됩니다. 둘이 서로 보살피지 못하니 권력이 서고 계급에 따라 사람이 갈립니다.


  우리가 손에 칼을 쥐어야 한다면, 밥을 맛나게 짓도록 도마질을 하는 칼을 쥘 노릇입니다. 내가 너를 찌르거나 네가 나를 찌르는 칼놀림 때문에 칼을 쥐어야 하지 않습니다.기쁘게 웃으면서 즐겁게 노래할 수 있는 삶이 되도록, 총도 칼도 내려놓은 뒤, 호미와 쟁기를 씩씩하게 쥘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을 지을 때에 사랑이 흐로고, 삶을 짓지 않을 때에 자꾸자꾸 싸움판이 벌어집니다.



“투항하게, 삼. 이알다바오트교로 개종하면 자네의 목숨도 지위도 보장해 주지.” “개가 인간의 지위를 운운하다니, 우습기 짝이 없구나!” (130쪽)

“보댕 놈, 저항도 못하는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기만 할 뿐, 전장에 나가 싸운 적도 없는 주제에, 왜 저런 놈이 목숨 걸고 싸운 우리보다 부와 권력을 더 마음껏 누리는지.” (183쪽)



  만화책으로 새롭게 태어난 《아르슬란 전기》는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참으로 낱낱이 보여줍니다. 전쟁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 하나하나 드러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이들은 으레 바보입니다. 전쟁을 내세워서 사람들을 홀리거나 들볶는 이들도 으레 바보입니다.


  전쟁터에서 사람을 많이 죽여서 ‘영웅’이 되거나 ‘훈장’을 받는다면, 이러한 영웅이나 훈장은 우리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가꿀 만한 바탕이 될까요.


  젊은 사내가 총이나 칼을 손에 쥐고 군사훈련을 받으니, 몸과 마음에 ‘폭력’이 자랍니다. 젊은 사내가 총이나 칼을 손에 쥐고는 이웃을 죽이고 또 죽이면서 제 목숨을 건사하다 보니, 자꾸자꾸 ‘폭력’에 무딘 바보로 나뒹굽니다.


  군대가 있기에 폭력이 있습니다. 전쟁이 도사리니 폭력이 안 멈춥니다. 전쟁무기가 득실거리니 폭력이 넘칩니다. 온누리에 군인이 바글거리니 폭력이 안 끊어집니다.


  젊은 사내는 총이나 칼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한손에는 호미를 쥐고, 다른 한손에는 연필을 쥘 노릇입니다. 한손으로는 사랑을 그리고, 다른 한손으로는 꿈을 지을 노릇입니다. 4348.6.2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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