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말 손질 359 : 가는 도중
가는 도중에 길가에 있는 늪지대에서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리 호이나키/김병순 옮김-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달팽이,2010) 360쪽
도중(途中)
1. 길을 가는 중간
2. 일이 계속되고 있는 과정이나 일의 중간
가는 도중에
→ 가다가
→ 가는 길에
→ 길을 가다가
→ 길을 가는데
…
‘도중’이라는 한자말은 “길을 가는 중간”을 뜻합니다. “가는 도중에”나 “길을 가는 도중에”처럼 적으면 겹말입니다. 그런데, 한국말사전을 보면 “학교를 가는 도중에”나 “시청으로 가는 도중에” 같은 보기글이 나옵니다.
학교를 가는 도중에 → 학교를 가는 길에 / 학교를 가다가
시청으로 가는 도중에 → 시청으로 가는 길에 / 시청으로 가다가
그런데 ‘도중’이라는 한자말은 으레 “가는 도중에” 꼴로 쓸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를 도중에”나 “시청으로 도중에”처럼 쓰지 못해요. 이 한자말을 쓰자면 언제나 겹말 꼴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할 노릇입니다. ‘도중’이라는 낱말을 꼭 쓰고 싶다면 겹말 꼴이 되더라도 쓸 노릇이기는 한데, 꼭 이 한자말을 써야 하는가를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가는 길에”나 “가다가” 꼴로만 쓰면 넉넉한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4348.6.22.달.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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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길가에 있는 늪에서 애처롭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늪지대(-地帶)’는 ‘늪’이나 ‘늪 둘레’로 손질하고, ‘처절(悽絶)하게’는 ‘애처롭게’나 ‘끔찍하게’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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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60 : 삼세번
교정과 교열을 보는 일도 그렇다. 기본으로 삼세번을 보고도 만족스럽지 못하면 네 번, 다섯 번도 봐야 한다
《김정선-동사의 맛》(유유,2015) 46쪽
삼세번(三-番) : 더도 덜도 없이 꼭 세 번
삼세판(三-) : 더도 덜도 없이 꼭 세 판
삼세번을 보고도
→ 세 번을 보고도
→ 세 번이나 보고도
→ 세 번씩 보고도
→ 세 번씩이나 보고도
…
한겨레는 셋이라는 숫자를 몹시 크게 여깁니다. 아주 뜻깊은 숫자요, 매우 사랑하는 숫자입니다. 이러다 보니, ‘삼세번’이나 ‘삼세판’처럼 ‘三’이라는 한자하고 ‘세(셋)’라는 한국말을 나란히 적는 겹말을 널리 쓰지 싶습니다.
‘삼세번·삼세판’은 틀림없이 겹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마디를 겹말로 여겨서 손질하거나 걸러내려고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겹말인 줄 알면서 일부러 겹말로 쓴다고까지 할 만한 말마디입니다.
힘주어 말하려고 한다면 “꼭 세 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씩”이나 “세 번이나”이나 “세 번만”처럼 쓸 수 있습니다. 한겨레는 어떤 뜻을 힘주어서 밝히려고 할 적에 토씨를 다르게 붙이거나 꾸밈말을 앞에 붙입니다.
우리 삼세번으로 끝내자 → 우리 꼭 세 번으로 끝내자
삼세번에 득한다는 옛말 → 꼭 세 번에 얻는다는 옛말
가위바위보 삼세판으로 → 가위바위보 세 판으로
‘삼세번’은 한자가 이 나라에 들어온 뒤에 비로소 생긴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투는 한자가 여느 사람들 삶터까지 두루 퍼진 뒤에야 쓰였습니다. 한겨레가 ‘셋’을 크게 여기거나 몹시 사랑했으면 ‘셋’이라는 낱말을 썼지, 이를 굳이 다른 말로 나타낼 일은 없습니다. 한자를 쓰던 양반이라면 1500년대나 1800년대에 이런 말투를 썼을는지 모르지만, 시골에서 흙을 만지던 수많은 여느 사람이라면 1800년대뿐 아니라 1900년대 첫무렵에도 이런 말투를 쓸 일이 없었다고 느낍니다.
아무튼, 이 말마디를 그대로 쓰려 한다면 그대로 쓰되, ‘세 번’을 힘주어 나타내는 말마디를 골고루 헤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8.6.22.달.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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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과 교열을 보는 일도 그렇다. 적어도 세 번씩 보고도 마음에 차지 못하면 네 번, 다섯 번도 봐야 한다
‘기본(基本)으로’는 ‘적어도’로 손질하고, ‘만족(滿足)스럽지’는 ‘마음에 차지’로 손질합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