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632) 지금의 1
지난 삶을 반추하는 이 책을 세상에 선보이는 지금의 심정도 그렇다 … 사진이 아니라 다른 길을 택하였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떠할까
《임응식-내가 걸어온 한국 사단》(눈빛,1999) 5쪽
지금의 심정도
→ 지금 마음도
→ 이 마음도
→ 오늘 마음도
지금의 내 모습은
→ 지금 내 모습은
→ 오늘 내 모습은
→ 오늘 이곳에서 내 모습은
…
‘지금’이라는 한자말에 붙인 토씨 ‘-의’는 군더더기입니다. “지금 심정”이나 “지금 내 모습”이라 하면 그만이에요. “지금 느끼는 마음”이나 “지금 바라보는 내 모습”처럼 사이에 다른 말을 넣어서 느낌을 살려도 됩니다. “지금 돌아보는 내 모습”이라든지 “지금에 와서 느끼는 마음”처럼 살을 더 붙여도 됩니다.
한자말 ‘지금’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이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지금 마음”은 “이 마음”이나 “오늘 마음”으로 손질할 만하고, “지금 내 모습”은 “오늘 내 모습”으로 손질할 만합니다.
지금부터 한 시간 → 이제부터 한 시간
왜 지금에서야 → 왜 이제서야 / 왜 이때에야
지금 막 집에 도착했다 → 이제 막 집에 닿았다
지금 운동을 하고 있다 → 한창 운동을 한다
한자말이기 때문에 쓰지 말아야 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한자말이니 모두 털어내야 하지 않습니다. 쓸 만한 낱말이면 쓸 노릇이요, 쓸 만하지 않다면 쓰지 않을 노릇입니다.
우리는 토박이말을 배우느냐 한자말을 배우느냐가 아닌, 우리한테 쓸 만한 말인지 아닌지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삶을 북돋울 만한 낱말인가 아닌가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넋을 살찌울 만한 말투인가 아닌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우리 말글을 제대로 다시 익혀야 합니다. 나이가 쉰이건 예순이건, 대학교를 마쳤건 대학원을 나왔건, 우리 누구나 말과 글을 똑바로 다시 보며 새롭게 톺아보는 넋으로 나답게 말넋과 글삶을 펼치는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걸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39.6.13.불/4343.7.23.쇠/4348.6.2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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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삶을 되새기는 이 책을 세상에 선보이는 이 마음도 그렇다 … 사진이 아니라 다른 길을 걸었다면 오늘 내 모습은 어떠할까
‘반추(反芻)하는’은 ‘되새기는’이나 ‘곰삭이는’이나 ‘돌아보는’이나 ‘되돌아보는’으로 손보고, ‘심정(心情)’은 ‘마음’이나 ‘느낌’으로 손봅니다. “길을 택(擇)하였다면”은 “길을 골랐다면”이나 “길을 갔다면”이나 “길을 걸었다면”으로 다듬습니다.
지금(只今)
[명사] 말하는 바로 이때
-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만 놀자 / 왜 지금에서야 말을 하느냐?
[부사] 말하는 바로 이때에
- 나는 지금 막 집에 도착했다 / 그는 지금 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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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829) 지금의 2
헤어지지 않았다면 그대로 남아 있었겠지.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야.
《아즈마 카즈히로/김완 옮김-알바고양이 유키뽕 11》(북박스,2006) 58쪽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야
→ 오늘 같은 나는 없었겠지
→ 오늘 내 모습은 없었겠지
→ 이런 나는 없었겠지
→ 이 같은 나는 없었겠지
→ 오늘처럼 살지 못했겠지
→ 오늘처럼 바뀌지 않았겠지
…
이 보기글은 먼저 “지금 같은 나”로 손질합니다. “지금 같은 나”는 “오늘 같은 나”라는 뜻이고, “이 같은 나”라는 소리입니다. 오늘 같은 나라고 할 적에는 오늘처럼 사는 모습이라는 뜻이요, 이 같은 나라고 할 적에는 이렇게 사는 모습이라는 소리예요. 오늘처럼 살거나 오늘처럼 바뀌거나 오늘처럼 거듭난 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4339.12.2.흙/4343.7.23.쇠/4348.6.2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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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지 않았다면 그대로 남았겠지. 오늘 같은 나는 없었어
“남아 있었겠지”는 “남았겠지”로 다듬고, “없었을 거야”는 “없었겠지”나 “없었으리라 생각해”나 “없지 않았을까”나 “없었을 테지”로 다듬습니다. ‘이별(離別)하지’가 아닌 ‘헤어지지’로 적은 대목은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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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011) 지금의 3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자유로운 견해를 살리는 것이다
《야나기 무네요시/김순희 옮김-다도와 일본의 미》(소화,1996) 86쪽
지금의 우리
→ 우리는 오늘
→ 우리는 이제
→ 오늘 우리
→ 이제 우리
→ 오늘날 우리
→ 오늘을 사는 우리
→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
…
이 보기글은 글짜임이 좀 엉성합니다. 글 사이와 글 끝쪽에 ‘것’을 잇달아 적으면서 여러모로 엉성합니다. ‘것’을 모두 덜면서 글짜임을 손질하면 “다시 자유로운 생각을 살려야 한다” 같은 바탕글이 나옵니다. 이 바탕글 앞쪽에 “우리는 오늘”이나 “오늘 우리는”을 넣으면 되고, “우리는 이제”나 “이제 우리는”을 넣으면 돼요. 4340.6.9.흙/4348.6.2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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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다시 자유로운 생각을 살려야 한다
이제 우리는 다시 자유롭게 생각을 살려야 한다
‘필요(必要)한’은 ‘있어야 할’이나 ‘쓸모 있는’이나 ‘도움 되는’으로 다듬을 수 있는데, ‘찾을’이나 ‘갖출’로 다듬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흐름에서는 아예 덜어서 말짜임을 바꾼 뒤 “-해야 한다” 같은 말투가 글끝에 오도록 할 수 있습니다. ‘견해(見解)는 ‘생각’으로 손질하고, “살리는 것이다”는 말투를 바꾸어 “살려야 한다”로 손질합니다. 말끝을 이렇게 하면 ‘필요’라는 한자말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