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의 영감 - 포토그래퍼 조선희 사진 에세이
조선희 지음 / 민음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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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07



마흔 넘긴 나이에 쓴 ‘사진 자서전’

― 조선희의 영감

 조선희 글·사진

 민음인 펴냄, 2013.12.12.



  패션사진을 찍는 사진가 조선희 님은 2004년에 《왜관 촌년 조선희, 카메라와 질기게 사랑하기》를 내놓은 뒤, 2008년에 《네 멋대로 찍어라》를 내놓았고, 2010년에 《조선희의 힐링 포토》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2013년에 《조선희의 영감》을 내놓습니다. 열 해에 걸쳐 네 권째 사진책을 내놓는데, 이 사진책들은 모두 자서전이라고 할 만합니다. 사진 한길을 걸어가는 발자국을 책마다 담고, 앞으로도 이 한길을 더 씩씩하게 내딛으려는 뜻을 책마다 싣습니다.



보라색도 그냥 한 가지 보라색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왜 우린 그 수많은 보라색을 하나로 부르게 된 걸까? (16쪽)



  보라빛은 한 가지만 있지 않습니다. 제비꽃으로 읽는 보라빛하고 등꽃으로 읽는 보라빛은 다릅니다. 새벽에 보는 보라빛하고, 저녁에 해가 지면서 보는 보라빛은 다릅니다. 같은 제비꽃이어도 해가 잘 드는 자리하고 그늘이 지는 자리에 피는 보라빛은 다릅니다.


  보라빛뿐 아니라 노랑이나 빨강도 모두 다릅니다. 하양이나 검정도 언제나 다릅니다. 똑같은 빛깔은 없고, 한 가지 빛깔은 없습니다. 자리에 따라 달라지는 빛깔이요, 우리가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새롭게 마주하는 빛깔입니다.


  흑백사진을 찍더라도 까망이나 하양이 모두 똑같은 까망이나 하양이지 않습니다. 때와 곳에 따라 모두 다른 까망이나 하양이요, 흐름하고 숨결에 따라 언제나 새로운 까망이거나 하양입니다.




나를 뒤흔들어 놓은 것은 1960년대 이후,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거의 1980년대를 전후한, 그러니까 그의 나이 예순 무렵에 작업되었다는 사실이다. (42쪽)



  모든 사진은 저마다 뜻이 있습니다. 젊은 사진가 한 사람이 빚은 사진도 뜻이 있고, 늙은 사진가 한 사람이 빚은 사진도 뜻이 있습니다. 마흔 해쯤 사진 한길을 걸었기에 더욱 그윽한 사진을 선보이지 않습니다. 일흔 살 나이에 처음으로 사진기를 쥐거나 일복 살 나이에 처음으로 사진기를 쥐든, 어설프거나 얕은 사진을 선보이지 않습니다.


  삶을 깊이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이가 빚는 사진은 늘 깊으면서 멋스럽습니다. 삶을 깊이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이가 빚는 사진에서는 깊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이 찍는 사진에는 사랑이 깃듭니다. 꿈을 꾸는 사람이 찍는 사진에는 꿈이 감돕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이 찍는 사진에는 사랑노래가 흐릅니다. 꿈을 노래하는 사람이 찍는 사진에는 꿈노래가 넘실거립니다.




맨 처음, 시각 장애우들이 사진을 찍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쇼크에 빠졌다. 어떻게? 무엇을? 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본다’에서 출발하지 않던가? (62쪽)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기에 눈을 댑니다. 그런데, 사진에 찍히는 모습은 ‘눈에 보이는 모습’만은 아닙니다. 사람들 가슴을 적시는 사진은 ‘눈에 보이는 모습’만 찍은 사진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을 마음으로 다가서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이 눈에 보이는 모습만 찍는 일이라고 한다면, 기계한테 맡기면 됩니다. ‘사진찍기’가 눈에 안 보이는 모습까지 담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사람이 아닌 로봇이 찍어도 됩니다.


  사진은 언제나 마음을 찍습니다. 마음을 찍되, ‘눈에 보이도록 나타내려’고 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사진은 언제나 사랑을 찍어요.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는 숨결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랑을 찍은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은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사랑을 찍은 사진을 마주하는 사람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어떤 여행이든 모든 여행은 축복이다 … 내가 아무 목적 없이 사진을 찍어 본 것이 언제였더라? 사소한 것들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내 삶의 주변 것들에 관심을 가져 본 것이 … 서점에 가는 것은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110, 136, 146쪽)



  곰곰이 돌아보면, 모든 사진은 선물입니다. 어떤 사진을 어떤 사진기로 찍든지 모든 사진은 선물입니다. 값싼 사진기로 찍기에 어설픈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값비싼 사진기로 찍기에 멋진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마음을 찍어서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거나 울리거나 움직일 때에 비로소 사진이 되듯이, 어떤 사진기로 어떤 모습을 찍든, 내 삶에 드리우는 선물이 되도록 찍을 때에 즐거우면서 아름답습니다.


  책방마실은 왜 여행이 될까요? 내 삶을 북돋울 만한 아름답고 즐거운 책을 찾아나서는 길이니 여행입니다. 책방마실처럼, 사진찍기는 사진마실이요 삶마실이며 사랑마실입니다.




우리는 단지 아름답고 예쁘기만 한, 별다른 느낌 없는, 그저 그런 그림을 원치 않는다 …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살아온 나의 시간들을 찍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시간들이 쌓여 내 속 깊숙이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만들고, 그것들이 세상을 향해 소리치게 만든 것이다. (30, 277쪽)



  조선희 님은 앞으로 쉰 언저리에 다시 ‘사진 자서전’을 쓸까요? 쉰을 지나고 예순 살을 넘은 뒤에도 ‘사진 자서전’을 선보일 수 있을까요? 사진가 조선희 님 스스로 쉰 살을 밟고 예순 살을 디디며 일흔 살을 지나갈 무렵, ‘사진으로 쓰는 자서전’은 어떻게 달라질 만할까요?


  ‘아름답다’와 ‘예쁘다’는 다릅니다. 똑같은 보라빛이 없듯이, 똑같은 낱말이란 없습니다. ‘아름답다’는, 보거나 듣거나 느끼기에 좋을 뿐 아니라, 보거나 듣거나 느끼면서 즐겁다는 마음이 함께 일어나는 느낌을 밝히는 낱말입니다. ‘예쁘다’는, 좋다는 느낌이 아닌, 하는 짓이나 모양이 마음에 드는 느낌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아름다운 사진하고 예쁜 사진은 다릅니다. 딱히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 사진이라면 ‘그럴듯한’ 사진이거나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입니다. 그럴듯한 사진은 아름답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고운 나이를 먹으면서 고운 한길을 걸어가면, 언제 어디에서나 고운 사진을 찍으리라 생각합니다. 열 살 어린이도, 서른 살 젊은이도, 예순 살 어르신도, 또 일흔 살이나 여든 살을 넘긴 분들도, 저마다 이녁 삶을 곱게 사랑하면서 고운 숨결 넘치는 사진을 밝힐 수 있기를 빕니다. 4348.6.1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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