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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 - 왜 전쟁 반대와 평화가 중요할까요? ㅣ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0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3년 6월
평점 :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를 놓고 예전에 느낌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 책을 놓고 몇몇 매체에서 자꾸 '좌편향 불온도서' 딱지를 붙일 뿐 아니라,
전국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비롯한 여러 '청소년 인문역사책'을 추천도서 목록에서
지우거나 아예 도서관에서 없애도록 하려는 몸짓을 보여주기 때문에,
<오마이뉴스>에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새롭게 써 봅니다.
바보짓을 일삼는 어른들이 있지만,
슬기로운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는 청소년을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책 하나를 바라봅니다.
..
‘바보짓 분서갱유’ 일삼는 ‘좌편향’ 딱지
―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는 ‘평화 인문책’이다
‘인문(人文)’은 “인류 문화”를 뜻합니다. ‘인문학’은 “언어·문학·역사·철학을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킵니다. 이리하여, ‘인문책’은 “인류 문화를 다루는 책”이면서 “사람이 쓰는 말(언어), 사람이 빚은 이야기(문학), 사람이 걸어온 길(역사), 사람답게 사는 슬기로운 넋(철학)을 다루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나날이 책을 덜 읽는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인문학 살리기’를 말합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푸름이는 책을 읽을 겨를이 없다고 합니다. 입시지옥에 휘둘리기 때문에 교과서 아닌 책을 들출 틈이 없다고 할 텐데, 아무리 입시 때문에 힘들다고 하더라도 푸름이로서 ‘사람답게 사는 슬기로운 넋’을 잊거나 잃지 않도록 도우려고 ‘청소년 인문책’이 새롭게 나옵니다.
먹고살기 바쁘다거나 바깥일이 힘들다고 하더라도 어른들이 인문책을 읽는 까닭은, 바로 인문책이란 “인류 문화”요,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길을 생각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푸름이가 입시 때문에 큰짐을 짊어지면서 고단하다고 하더라도 애써서 청소년 인문책을 여러 출판사에서 펴내어 읽히려고 하는 까닭은, 이 나라 푸름이가 ‘대학교만 들어간다고 해서 슬기롭거나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5년 2월에 부산시립도서관에서 자그마한 일이 있었습니다. 부산시에서는 ‘시민 추천도서로 뽑는 이달의 책’이 있다는데, 2013년 6월에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철수와영희,2013)라는 책을 뽑았다고 해요. 그래서 부산시 푸름이한테 이 책을 널리 알리면서 읽혔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줄거리가 알차다고 여겼으니 ‘시민 추천도서’가 되었을 테고, 부산시립도서관에서도 ‘이달의 책’으로 뽑았을 테지요.
그동안 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즐겁게 읽으면서 ‘전쟁과 평화를 바라보는 눈길’을 돌아보았을 텐데, 2015년 2월에 갑자기 ‘시민 추천도서로 뽑는 이달의 책’에서 이 책을 취소했다고 합니다. 부산시교육청에서는 이 책을 갑작스레 ‘좌편향 도서’라는 빨간 도장을 찍었다고 합니다.
‘좌편향’이란 무엇이고, ‘우편향’이란 무엇일까요?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어 봅니다.
세계를 서로 적대하는 두 세계로 나누어 바라보는 방식은 소련과 북한 또한 미국과 다르지 않았어요. 두 손바닥이 부딪쳐야 소리가 나듯 냉전의 세계관은 서로 마주보고 귀를 막은 채 자기만 옳다 소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곧 냉전의 세계관은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상대가 있어야만 성립하는 세계관이라는 뜻입니다. (184쪽)
이 책은 한국 전쟁이 일어난 여러 해에 걸쳐서 남·북녘 군대와 정부가 뿌린 삐라를 바탕으로 ‘한겨레가 치른 슬프고 끔찍한 전쟁’을 다시 돌아보자는 뜻을 들려줍니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삐라를 보면, 남녘은 북녘을 깎아내리고 북녘은 남녘을 비아냥거립니다. 서로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삐라를 보면서 엿볼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이 나라 푸름이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쟁무기나 군대를 키워서 서로 억누르려고 하는 전쟁은 그치고, 마음으로 서로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평화로 나아가자는 이야기를 꾸준히 들려줍니다.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상대를 힘으로 누르거나 굴복시키려 할 게 아니라,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와 교류로 이해해야 합니다. (199쪽)
그리고, 이 책은 친일파 이야기를 함께 다룹니다. 역사에 또렷이 아로새겨진 이야기를 온갖 삐라를 보기로 들면서 하나하나 알려줍니다.
해방이 되자 친일파들은 대중들의 열기에 놀라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벌벌 떨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친일파들에게 희소식이 들려왔죠. 미군이 38도선 이남 지역에 들어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친일파를 포함한 지주, 자본가들은 재빨리 모여 한국민주당을 만들었어요. 한국민주당은 미군정에 앞장서 협력하면서 새로 세워질 나라의 지도자로 이승만을 지지했답니다. (16쪽)
이와 함께,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는 ‘민간인 학살’을 건드립니다.
이 삐라들은 한강을 건너오는 모든 민간인을 적이라고 말하네요. 실제로 미군에게는 피난민에게 총을 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어요 … 미군은 민간인 거주지를 포함한 (인천) 월미도 동쪽 전체를 집중 폭격했답니다. 민간인 희생을 줄이려는 어떠한 조치도 없이 월미도 전체를 무차별 폭격하고 눈으로 식별 가능한 높이에서 주민에게 기총 소사가 행해졌죠. (43, 54쪽)
이는 ‘월미도 양민학살’이나 ‘월미도 민간인 미군 폭격’ 같은 이름으로 알려졌고, 학살 피해자한테 피해보상을 하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를 쓴 이임하 님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과서는 한국 전쟁의 원인, 과정, 결과를 사진을 곁들여 두 쪽에 걸쳐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읽고 ‘아이들은 전쟁과 평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 중요하다면서도 정작 교과서는 이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는 것 같네요. (머리말)
수백만에 이르는 한겨레가 끔찍하고 슬프게 죽어야 했던 전쟁인데, 막상 이 전쟁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달리해야 했고, 생채기를 입었으며, 괴로웠고, 아팠는가 하는 이야기를 교과서에서는 그저 두 쪽으로 가볍게 다룬다고 합니다. 우리 푸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과서에서 달랑 두 쪽으로 다루는 한국 전쟁이니까, 이 이야기는 시험문제에 안 나오면 가볍게 지나쳐도 될까요? 교과서에 나오는 만큼만 한국 전쟁을 알면 될까요? 교과서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대목을 따로 인문책을 찾아보면서 스스로 읽고 헤아릴 수 있어야 할까요?
인문책을 읽는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앞서 살짝 밝혔듯이,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사는 슬기로운 넋을 북돋우면서,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꿈을 키우려는 뜻으로 인문책을 읽습니다. 슬기롭게 말하고 슬기롭게 생각하며 슬기롭게 삶을 짓는 넋을 가꾸고자 인문책을 읽습니다. 이웃과 사랑하고 동무를 아끼는 마음을 가꾸려고 인문책을 읽습니다. 지구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이 길을 걸어갈 내 발걸음을 씩씩하고 아름답게 가꾸려고 인문책을 읽습니다.
옳은 말을 아름답게 펼치면서 따사롭고 넉넉한 사랑으로 생각을 지으려고 인문책을 읽습니다. 참다운 말을 착하게 펼치면서 즐겁고 기쁜 사랑으로 삶을 지으려고 인문책을 읽습니다. 슬기로운 말을 정갈하게 펼치면서 맑고 밝은 사랑으로 어깨동무를 하는 꿈을 지으려고 인문책을 읽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교과서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으니 따로 인문책을 읽습니다. 교과서에서 다루기는 하지만 나 스스로 삶을 한결 깊고 넓게 살피려고 애써 인문책을 읽습니다. 교과서에서 다루든 안 다루든 내 삶을 내 손으로 씩씩하고 튼튼하게 일으키려는 뜻을 품으면서 인문책을 읽습니다.
인문책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인문책은 사람이 걸어온 길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이리하여, 전쟁이나 양민학살이나 군사독재나 식민지 같은 발자국을 다루는 인문책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사람’이나 ‘학살을 저지른 사람’이나 ‘군사독재로 이웃을 괴롭힌 사람’이나 ‘식민지로 짓밟으며 이웃을 종으로 부리려던 사람’을 낱낱이 파헤치면서 나무라기도 합니다. 잘잘못을 따지려는 뜻이 아니라, 참거짓을 밝히려는 뜻인 인문책입니다. 참거짓을 슬기롭게 살펴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새롭게 그리려는 인문책입니다.
그러면, 가해자나 친일파나 독재자나 착취자 자리에 선 사람들은 ‘참거짓을 밝히려 하는 인문책’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아무래도 곱게 바라보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지난 생채기와 아픔과 슬픔을 달래서, 이제부터 아름답게 삶을 짓는 길을 밝히려는 책을 거북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겨레한테 아프고 슬픈 발자국인 전쟁을 돌아본다면, 남녘도 북녘도 서로 아끼거나 믿거나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무렵 정치를 이끈 어른들이 더 슬기롭거나 따스하거나 넉넉한 마음이 되지 못했습니다. 전쟁무기를 갖추려고 애쓰지 말고 평화로 나아가도록 애써야 했는데, 이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쳤는데에도, 남·북녘 모두 외국 군대를 이 땅에 끌어들여서 한겨레 스스로 이 땅을 짓밟고 말았습니다. 아직 남녘하고 북녘은 평화로운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군대와 전쟁무기를 줄이는 길로도 접어들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싸움이 붙으면, 어른들은 ‘때린 아이’도 ‘때린 아이한테 달라붙어 맞서 때리는 아이(맞은 아이)’도 똑같이 나무랍니다. ‘때린 아이’는 처음부터 때리지 말았어야 했고, ‘맞은 아이’도 똑같이 주먹다짐으로 나아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한국 전쟁이 아프고 슬픈 까닭은, 한겨레가 둘로 쪼개진 채 서로 ‘때린 아이’가 되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먼저 때린 짓’이 잘못이라고 말할 노릇이 아니라, ‘사이좋게 어깨동무할 생각이 아니라, 주먹으로 때린 짓’을 살펴서 나무라고는 타이를 노릇입니다. 서로 사랑이 되도록 나아갈 노릇이에요.
그러니까, 인문책이 나아가는 길은 바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사는 슬기로운 넋을 다스리도록 돕는 인문책이기에, 사람이 사람으로서 슬기롭게 사는 길은 언제나 ‘사랑’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니, 아름다운 인문책에는 언제나 따사로운 사랑이 흐릅니다. 청소년 인문책을 읽는 손길에도, 어른 인문책을 읽는 마음길에도, 고우면서 포근한 사랑과 꿈이 샘솟을 수 있기를 빕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청소년 인문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