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맛있게 먹는 법 문학동네 동시집 34
권오삼 지음, 윤지회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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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59



노래하는 마음이면 다 맛있지

― 라면 맛있게 먹는 법

 권오삼 글

 윤지회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15.2.15.



  권오삼 님이 쓴 동시를 모은 《라면 맛있게 먹는 법》(문학동네,2015)을 읽습니다. 책이름으로도 나온 〈라면 맛있게 먹는 법〉이라는 동시를 보면 “노란 양은 냄비에다가 / 파르르 라면 끓인 뒤 / 냄비 뚜껑 안쪽에다 / 건더기를 올려놓고 / 젓가락으로 집어 / 후후 입김 불며 / 후루룩후루룩 / 먹으면 된다”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양은 냄비를 썼다고도 하고, 라면은 양은 냄비에 끓여서 먹어에 제맛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라면은 구공탄에 끓여야 제맛이라고 말하며, 라면봉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먹어야 맛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라면맛은 사람마다 ‘처음 먹어 본 맛’이 맛있다고 마음에 남기 마련입니다. 무엇보다도 배고플 때에 먹으면 다 맛있습니다. 배고프지 않을 때에는 맛도 잘 못 느끼기 마련이고, 외롭거나 힘들 때에 혼자 먹는다면 맛이 덜 할 수 있어요. 동무랑 함께 먹으면 더 맛있을 수 있고, 한식구가 오순도순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자리에서 먹으면 한결 맛있을 수 있습니다.



곤충도감에는 없어도 / 국어사전에는 있는 // 엄마들이 / 제일 좋아하는 벌레 (공부벌레)



  요즈음 어머니라면 ‘공부벌레’를 가장 좋아하거나 반긴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공부벌레나 책벌레보다는 ‘공부박사’라든지 ‘공부천재’가 아니라면 좀처럼 쳐다볼 마음을 안 둘 텐데 싶기도 합니다. 이제 도시에서는 바퀴벌레조차 쉽게 보기 어려울 만큼 벌레가 사람 곁에서 멀리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어머니가 아무리 ‘공부벌레’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어버이로서 낳아 돌보는 아이’보다 더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입시지옥 현대사회가 초등학교까지 옭아매는 터라, 수많은 어머니는 이녁 아이가 이 수렁에서 허덕이거나 헤매지 않기를 바라니 자꾸 공부를 닦달하지요.


  우리 사회가 입시지옥이 아닐 때에도 수많은 어머니가 이녁 아이를 공부벌레나 공부박사나 공부천재가 되도록 몰아세우지는 않으리라 느낍니다. 대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고, 자격증이나 졸업장이 있어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면, 수많은 어머니가 이녁 아이를 다그쳐서 공부만 시키려고 하지는 않으리라 느낍니다.



엄마가 나보고 공부만 하라고 한다면 / 나도 오늘부터 내가 좋아하는 / 쇠고기, 돼지고기만 먹을 거야 / 햄만 먹을 거야 / 닭볶음만 먹을 거야 / 김치는 안 먹을 거야 / 시금치도 안 먹을 거야 / 가지고 안 먹을 거야 (용감한 어린이)



  동시집 《라면 맛있게 먹는 법》을 읽으면, ‘어머니’는 아이한테 공부만 시키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꼭 이 동시집이 아니더라도 다른 분 동시집이나 동화책에서도 어머니는 으레 ‘공부 닦달 도깨비’처럼 그리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동시나 동화에서 아버지는 잘 안 나옵니다. 아버지는 으레 회사에 가서 돈만 벌고, 집안일은 거의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사회가 성평등으로 나아간다고 하지만 막상 그리 평등하지는 않기 때문에 동시와 동화에서도 ‘집안일’하고 ‘아이키우기’ 몫은 오직 어머니한테만 있는듯이 그리는 셈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아버지가 집안일하고 아이키우기에 등을 돌리거나 마음을 안 쏟으니, 언제나 어머니만 ‘공부 닦달 도깨비’라는 이름을 뒤집어써야 하는지 모릅니다.


  어린이문학에서도 아버지는 으레 ‘아이와 놀아 주는 사람’으로 나오지만, 거의 ‘주말에만 놀아 주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주말에도 낮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게임을 하느라 바쁜 사람이 아버지로 나옵니다. 아무래도 아직 한국 사회에서 수많은 아버지가 이런 모습이니까 어린이문학도 이런 모습으로 아버지를 그릴 수밖에 없을 수 있으나, 어린이문학은 ‘다른 길’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엄마’나 ‘아빠’는 아기 말입니다. 아기한테는 ‘맘마’나 ‘쭈쭈’나 ‘까까’ 같은 말을 쓰면서 입술과 혀를 잘 놀리도록 이끕니다. 어린이가 읽는 문학인 동시쯤 되면 ‘아기 말’은 이제 내려놓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제대로 써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왜 / 세상에서 제일 예쁜 / 봉숭아꽃이냐 하면 / 우리 집 화분에서 / 피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



  가장 맛있는 밥은 바로 내가 손수 지어서 먹는 밥입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차려 주는 밥도 맛있고,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차려 주는 밥도 맛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스스로 씩씩하게 자라서 ‘내 손으로 비로소 밥을 차려서 먹을’ 수 있을 때에, 또 아이가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처음으로 밥상을 차려서 내밀’ 수 있을 때에, 이 밥맛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라면을 어떻게 끓이면 그야말로 맛있을까요? 양은 냄비이든 스탠 냄비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부침판에 끓이든 주전자로 물을 끓이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기쁘게 노래하는 마음이 되어서 즐겁게 끓이는 라면이라면 다 맛있습니다. 기쁘게 노래하는 삶을 누리면서 언제나 웃고 춤추는 홀가분한 사랑이라면 김치 한 조각이랑 간장 한 종지만 밥상에 올려도 매우 맛있는 밥이나 라면이 됩니다.



해님도 / 사진 찍어요 / 곧은 나무는 곧게 / 굽은 나무는 굽게 / 동그란 것은 동그랗게 / 네모난 것은 네모나게 / 꼭 그대로 찍어요 (그림자)



  어린이문학이 그릴 이야기는 바로 ‘사랑’이어야지 싶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어린이가 가슴에 품을 사랑을 그릴 때에 어린이문학이고, 오늘 이 땅에서 괴롭거나 힘든 어린이가 가슴에 고이 담아서 씩씩한 기운을 잃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을 때에 아름다운 어린이문학이 되리라 봅니다. 예쁘장한 말을 구슬처럼 들려주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쁘장한 말이나 말짓이나 말투보다도 ‘아름다운 사랑’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날마다 새롭게 기운을 내도록 북돋울 때에 비로소 환하게 빛나는 어린이문학이 된다고 느낍니다.


  “포로들처럼 / 꽁꽁 / 한 줄에 묶여 / 우리 집에 온 / 조기들(조기 한 두름)” 같은 동시는 비유법이나 표현법이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포로’는 ‘전쟁 포로’를 가리킵니다. 아이들한테 ‘전쟁 포로’를 굳이 빗대어서 말해야 할는지 곰곰이 되새길 노릇입니다.


  “우리나라에 일하러 온 / 방글라데시 아저씨 / 처음 배운 말이 이거래요. / “야, 너 이리 와!”(야, 너 이리 와)” 같은 동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한국에 수십만 사람이 있다는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넌지시 짚는 동시로 보아야 할까요?


  그런데 말이지요, “야, 너 이리 와!” 같은 말은 이주노동자한테만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나라 수많은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흔히 뇌까리는 말입니다. 나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면서 학교에서 어른(교사)들한테서 “야, 너 이리 와!”를 날마다 들었습니다. 군대나 회사에서도 이런 말을 늘 들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야, 너 이리 와!” 하고 외치는 어른들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늘 듣고 살던 어린이가 요즈음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습니다. 이주노동자한테만 이런 말을 다그치듯이 하지 않습니다. 한국사람끼리도 이런 말을 으레 읊습니다.


  “꽃은 아기 손톱만 해도 / 씨는 개 불알 닮았다고 / ‘큰개불알풀꽃’(큰개불알풀꽃)” 같은 동시는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개불알풀꽃’이라는 꽃이름은 일본사람이 쓰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이 동시를 쓴 권오삼 님이 ‘개불알풀꽃’이라는 꽃이름을 재미있다고 여겨서 말놀이를 하듯이 이 이야기를 썼구나 싶습니다.


  ‘개 불알’이라는 이름을 쓰니 재미있을까요? ‘며느리밑씻개’ 같은 이름을 쓰면 재미있을까요? ‘개불알풀꽃’이나 ‘며느리밑씻개’ 같은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한테서 배운 한국 식물학자가 잘못 퍼뜨린 이름입니다. 한국에서 먼 옛날부터 이야기한 이름은 ‘봄까지꽃(← 개불알풀꽃)’이고, ‘사광이아재비(← 며느리밑씻개)’입니다. 동시를 쓴 분이 한국 역사와 문화를 조금 더 깊이 살피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이야기꽃을 새롭게 돌아보려고 했다면, ‘개 불알’ 말놀이 동시가 아닌 다른 동시를 쓸 만하리라 봅니다. 꽃이름이나 풀이름 하나에 맺힌 아픔과 슬픔이 어떠한가 하는 대목을 다시 바라보고 새롭게 마주하면서 ‘다른 동시’로 풀어낼 만하리라 봅니다.



해가 나왔다. / 장맛비 그치자 나왔다. // 빨래들이 좋아서 /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네! / 한다. (지화자 흉내)



  노래하는 마음으로 끓여서 함께 먹는 라면이 참으로 맛있습니다. 그리고, 노래하는 마음으로 논밭을 일구어 거둔 열매를 손수 갈무리하고 다루어 차근차근 지은 밥이 대단히 맛있습니다. 아이가 손수 콩씨를 한 톨 심어서 얻은 콩알로 지은 콩밥이라면 아주 맛있습니다. 아이가 손수 토마토나 오이나 고추를 꽃그릇에 길러서 열매를 얻으면, 이 또한 몹시 맛있습니다.


  어린이한테 들려줄 문학에는 ‘어린이가 손수 지으면서 이웃하고 동무랑 사랑을 함께 나누고 가꾸는 길’을 곱고 정갈하게 담을 수 있으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문학은 삶을 아름답게 살찌우는 마음밥 구실을 합니다. 문학을 읽고 쓰는 까닭은, 아이도 어른도 삶을 아름답게 맞아들여서 생각과 마음을 사랑으로 북돋우려는 길을 걸어가면, 즐겁고 재미나면서 신나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사회 현상을 살펴서 담는 어린이문학’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아름답게 나아갈 새로운 꿈과 사랑’을 조금 더 슬기롭게 헤아리면서 빚는 어린이문학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4348.6.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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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6-05 06:58   좋아요 0 | URL
야, 너 이리 와.....

참 생각없이 많이들 하는 말이 아닌가 싶어요.
아이들에게 다짜고짜 하는 말들이 마음에 상처가 될 때도 많지요.
우리 한솔이는 택시 기사님들이 던지는 농담을 제일 싫어해요.
아이들 곯려주는 재미로 하는 말들이긴 하지만, 아이는 엄청 싫어하더라구요.

숲노래 2015-06-05 10:26   좋아요 1 | URL
많은 어른들이 농담 아닌 농담을 말장난으로 하는데...
참(진실)이 안 담긴 말을 아이들은 다 안다고 느껴요.
저도 저 스스로 참을 제대로, 따스하고 사랑스레
말하고 나누자고 아침마다 새롭게 생각하면서 엽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결같이 따스한 마음으로
따스한 말을 하자고 자꾸자꾸 저를 담금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