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돋는 길
바닥이 흙이라면 풀이 돋는다. 바닥에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깔면 풀이 못 돋는다. 풀이 돋는 자리는 비가 거세게 내려도 흙이 얼마 안 쓸린다. 풀이 안 돋는 자리는 비가 왔다 하면 빗물이 콸콸콸 흐르면서 흙이 많이 쓸린다.
멧자락에 나무만 있으면 흙은 빗물에 쉽게 쓸린다. 나무 곁에 풀밭이 있어야 비로소 흙이 덜 쓸리거나 안 쓸린다. 밭자락이나 논둑도 이와 같다. 풀을 죄 죽이거나 뽑으면 흙은 버티거나 배길 수 없다.
길바닥을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깔면 자동차가 다니기 좋다. 이러면서 빗물이 콸콸콸 흐르니, 길바닥 둘레는 흙이 쓸리기 쉽다. 길바닥이 흙이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밟고 지나가는 자리는 움푹 패이면서 풀이 못 돋는다. 자동차 바퀴가 안 닿는 자리는 덜 밟히기도 하고 풀이 잘 돋는다.
숲에서 살면서 늘 풀과 나무를 바라보면 다 알 수 있다. 숲에서 살지 않으면서 풀과 나무를 바라보지 않으면 이론을 세우기 마련이요 실험을 할 테지. 숲에서 배우지 않고 책으로만 배우면, 삶이 없는 지식인이 된다. 4348.6.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