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산진 평전
신한균.박영봉 지음 / 아우라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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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꽃그릇에 담긴 꽃밥’을 반긴다

― 로산진 평전

 신한균·박영봉 글

 아우라 펴냄, 2015.5.15.



  빗살무늬그릇과 민무늬그릇이 있습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인 1988년부터 학교에서 이러한 낱말을 썼습니다. 우리 형이 중학교에 들어가던 때에는 ‘즐문토기(櫛文土器)’나 ‘무문토기(無文土器)’ 같은 낱말을 썼어요. 나는 학교에서 ‘고인돌’이라는 낱말로 배웠으나, 우리 형은 ‘지석묘(支石墓)’라는 낱말로 배웠습니다. 똑같은 하나를 놓고 두 가지 말이 있는 셈입니다. 오늘날에도 한국 사회는 ‘한국말’을 오롯이 쓰지 못하고, 두세 가지 말을 섞어서 쓰기 일쑤입니다.


  형이 쓰던 교과서를 물려받아서 쓰던 지난날, 두 가지 말을 한 자리에 놓고 곰곰이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왜 한국이라는 나라는 한국말을 제대로 못 쓰고 이렇게 스스로 둘이나 셋으로 갈린 채 여러 나라 말을 섞어서 쓰는지 아리송했습니다. 이러다가 ‘빗살무늬’와 ‘민무늬’라는 낱말에 눈길이 갔고, 얼추 1만 해 앞서 살던 사람들이 ‘흙으로 빚은 그릇’에 ‘무늬를 새겨서 썼다’는 대목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무늬가 없이 ‘그릇 모습’이면 되었지만, 나중에는 ‘아무 무늬가 없던 그릇’에 저마다 새로운 무늬를 아로새겨서 썼어요. 살림살이에 재미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 로산진은 이 시기(1910년대)에 조선의 가구가 지닌 아름다움과 김치의 맛에 빠져들었는데, 김치는 그가 죽을 때까지 즐긴 음식이기도 했다. 또한 한반도에 널려 있던 옛 가마터 답사를 통해 조선 도자기에 대해서도 깊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 지난날 서도의 대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로산진은 정해진 과정을 충실히 밟으라는 말은 절대로 듣지 않았다 ..  (42, 56쪽)



  “그들은 왜 정해진 틀만을 고집할가? 한마디로 말해 그들에게는 예술이 없기 때문이다(로산진/35쪽).” 같은 이야기가 흐르는 《로산진 평전》(아우라,2015)을 읽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서 아이들하고 함께 먹는 내 삶을 돌아봅니다.


  아이들은 배만 채우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배불리 먹기만을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아무 그릇에나 밥을 담아서 줄 수 없습니다. 참말, 아무 그릇에나 밥을 담아서 준다면, ‘개밥’을 주는 셈입니다.


  아이들도 꽃그릇을 반깁니다. 스텐그릇에 멋없이 퍼 담아서 주면 아이들이라고 해서 ‘그저 고맙게’ 받아먹지 않습니다. ‘스텐 밥판(식판)’도 그렇지요. 군대에서는 으레 ‘식판’에다가 똑같은 밥을 퍼 담아서 먹입니다. 다 다른 젊은이한테 다 다른 숨결을 느끼도록 하지 않고, 모두 똑같은 틀에 맞추어 똑같이 움직이도록 길들이려고 식판을 쓰고, 제복을 입히며, 군사훈련을 시킵니다.


  곰곰이 살피면, “도자기도 글도 생활이 녹아 있지 않으면 아름다움이 없다(로산진/58쪽).”는 말처럼, 군대 제식훈련에는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똑같은 몸짓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놀라워’ 보일는지 모르나, 아름다움은 아닙니다. 전쟁무기를 짊어지고 큰길을 걷는 모습도 사람들한테 ‘놀라워’ 보이는 모습은 될 터이나, 아름다움일 수 없습니다.



.. 그는 버려지는 재료에 대해서도 철저히 연구했다. 버리는 걸 아깝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을 꿰뚫어보려고 했다 … 그의 손에서 탄생한 비젠은 이전과는 다른 부드러운 도자기로 바뀌었다. 생기 있고 전혀 메마르지 않았다. 로산진의 비젠은 지금까지의 관념이나 전통을 무시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도자기였다. 그런데 마치 그것이 비젠의 본성이었던 것처럼 멋지게 탄생한 것이다 ..  (96, 162쪽)



  어떤 그릇에 밥을 담느냐에 따라서 즐거움이 달라집니다. 어떤 그릇에 밥을 담든 ‘먹는다’는 몸짓은 같아요. 배는 똑같이 찰 테지요. 그러나, 마음이 달라집니다. 꽃그릇에 정갈하게 담아서 차린 밥을 마주할 적에는, 마치 내 몸도 꽃과 같은 숨결로 달라지면서 한결 깔끔하면서 반가이 수저를 듭니다. 바쁘다고 해서 아무 그릇에나 아무렇게나 담아서 밥상에 올리면, 아이들도 거칠게 먹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거친 말을 쓰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거친 말을 씁니다. 골을 자주 부리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도 골을 자주 부려요. 방긋방긋 웃고 보드랍게 말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도 방긋방긋 잘 웃고 보드랍게 말합니다.


  밥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생각에 잠깁니다. “지금 외국 요리에 빠져 있는 일본인들은 수프는 알아도 된장국은 모른다. 빵맛은 구별하지만 밥의 깊은 맛은 모르고 있다 … 일본의 자연은 천혜의 재료를 빚어낸다. 산과 바다에 식재료가 가득하고, 눈도 코도 입도 즐겁다(로산진/171쪽).” 같은 말처럼, 우리는 우리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나하고 밥상을 마주하는 아이들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읽고, 내가 손에 쥐어 다루는 여러 먹을거리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사는 시골마을 들녘과 하늘과 숲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읽을 때에 제대로 알 수 있고, 내 보금자리를 내가 스스로 제대로 알 때에 이곳을 사랑하고 보듬는 손길로 삶을 아름답게 지을 수 있습니다.



.. 로산진의 예술은 실용적이고 창의적이었지만, 그들(다른 예술인)의 시각에서 보는 기준은 정통 기술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 로산진이 말한 요리의 진수는 어디까지나 가정 요리였다 … 로산진의 요리철학은 이렇게 어머니의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친절하고 진실한 마음이 담긴 요리,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요리가 그런 것이다 … 가정에서 필요한 것은 결국 진실한 마음이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  (192, 208, 209쪽)



  즐거운 마음이 되어 밥을 먹을 때에 즐겁습니다. 반찬 가짓수가 한두 가지만 있더라도 하하하 웃고 이야기하면서 먹으면 즐겁습니다. 안 즐거운 마음이 되어 밥을 먹을 때에는 거북하거나 더부룩하기 일쑤입니다. 반찬 가짓수가 스물이나 서른 가지가 된다고 하더라도, 웃음 하나 없이 차갑거나 썰렁한 자리에서 수저를 들어야 하면 밥 한 술을 떠서 삼키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멋지거나 대단한 밥을 차리지 않더라도, 온마음을 사랑스레 담아서 밥을 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영양소도 잘 살필 줄 알아야 할 테지만, 영양소를 챙기는 ‘마음’부터 즐거움과 웃음과 노래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로산진 평전》에 나오는 “요리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를 선택하는 마음의 눈이다(로산진/212쪽).”와 같은 말처럼, ‘마음으로 보는 눈’이 대수롭습니다. ‘마음으로 먹는 밥’이며, ‘마음으로 누리는 밥’입니다. ‘마음으로 지어서 나누는 밥’이요, ‘마음으로 사랑을 북돋우는 밥’입니다.



.. 로산진의 요리에서 차림멋은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게 아니라, 손길이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풍경을 말한다 … 로산진은 요리사들이 밥을 등한시하며, 밥하는 것을 체면 구기는 일로 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에서는 요리사를 이타마에라 하기도 하는데 나무판, 즉 도마 앞이라는 의미다. 그 말처럼 요리사들이 그저 도마 앞에서 회나 요리하면 되는 줄 안다고 로산진은 비판했다 ..  (215, 241쪽)



  나는 날마다 꽃밥을 차립니다. 나 스스로 내 밥차림에 ‘꽃밥’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꽃송이를 얹지 않더라도 꽃밥입니다. 꽃접시나 꽃그릇을 쓰니까 꽃밥이 아닙니다. 꽃송이가 피어나듯이 온마음을 사랑스레 가다듬어서 차리려는 밥이기에 ‘꽃밥’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아침저녁을 지어 아이들하고 나눕니다. 언제나 꽃마음이 되고 꽃사랑 같은 숨결로 살림을 가꾸고 싶어서 곁님하고 함께 꽃밥을 즐깁니다.


  앞으로 우리 집 아이들도 스스로 꽃밥을 지어서 꽃동무하고 꽃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면서, 부엌에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밥 한 그릇을 차려서 올립니다. 4348.5.3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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