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62 수수께끼 놀이 하자
우리 삶을 이루는 모든 수수께끼는 내가 스스로 내서, 내가 스스로 풉니다. 수수께끼는 남이 나한테 내지 않습니다. 수수께끼는 남이 내 몫을 풀어 주지 않습니다. 때로는 남이 내 수수께끼를 슬기롭게 풀어 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남이 풀어 준 대로 길을 가지 않아요. 나는 내가 스스로 푸는 결대로 하나하나 살피면서 내 길을 갑니다.
‘묻는’ 사람이 ‘안다’고 했습니다. 물어 볼 수 있는 사람이 알아볼 수 있습니다.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이 스스로 수수께끼를 짓고, 궁금하게 여기는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롭게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를 얻습니다.
길은, 길을 찾으려는 사람이 찾습니다. 길은, 길을 걸으려는 사람이 걷습니다. 길은, 길을 짓는 사람이 스스로 지어서 닦고 돌봅니다.
삶은 수수께끼와 같습니다. 실마리를 하나 풀어서 이 수수께끼를 끝마쳤구나 싶으면, 어느새 곧바로 새로운 수수께끼가 나한테 찾아옵니다. 나는 이 수수께끼를 풀면서 저 수수께끼로 나아가고, 저 수수께끼를 풀면 새롭게 이 수수께끼로 나아갑니다. 언제나 새로운 수수께끼가 깨어납니다.
수수께끼가 없는 삶이라면 삶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서 목숨을 잇는 까닭은, ‘삶 = 수수께끼’이기 때문입니다. 수수께끼가 없으면 우리 목숨은 곧장 끝나요. 궁금한 이야기가 없으면 삶이 아닌 죽음이고, 궁금한 이야기가 없는 채 목숨만 잇는다면, 삶에 아무런 보람도 재미도 기쁨도 웃음도 노래도 없습니다. 궁금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내 하루에 보람과 재미와 기쁨과 웃음과 노래가 피어납니다. 궁금해 하면서 길을 찾고, 궁금하기 때문에 길을 열며, 궁금한 꿈이 바야흐로 삶꽃으로 피어나도록 하려고 길을 걷습니다.
궁금함이 없으니 ‘딴 재미’를 찾으려고 여러 가지 ‘여흥·오락·여가·쾌락’으로 나아갑니다. 궁금함이 없어 ‘딴 재미’를 찾으려고 여러 가지 ‘여흥·오락·여가·쾌락’으로 가지만, ‘여흥·오락·여가·쾌락’을 붙잡고 또 붙잡더라도 보람이나 기쁨이나 웃음이나 노래가 흐르지 않습니다. 자꾸자꾸 다른 오락이나 쾌락으로 나아가지만, 내 마음을 채우지 못합니다. 온갖 여흥과 여가로 내 하루를 가득 채우려 하지만, 하루를 빡빡한 일정으로 채운들 이튿날이 되면 모든 것은 다시금 물거품처럼 됩니다. 여흥도 오락도 여가도 쾌락도 ‘소비’이기 때문에, 내 삶을 못 채웁니다. ‘소비’는 쓰고 없어지면서 쓰레기로 남기 때문에, 내 삶을 넉넉하게 북돋우지 않습니다.
돈이 많기에 넉넉한 삶이 아닙니다. 궁금해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넉넉한 삶입니다. 돈이 많아도 쓸 줄 모르면 아무런 재미도 보람도 찾을 수 없습니다. 궁금해 하는 마음이기에, 스스로 길을 찾으면서 재미를 누리고 보람을 얻습니다. 궁금해 하는 마음은 이윽고 꿈결로 닿고, 꿈결로 닿는 마음은 시나브로 사랑에 이릅니다.
수수께끼 놀이는 스스로 삶을 찾으려는 기쁜 몸짓입니다. 수수께끼 삶은 스스로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고운 노래입니다. 내 목소리를 내가 들으면서 기쁩니다. 내 웃음을 내가 느끼면서 아름답습니다. 내 눈빛을 내 숨결이 바라보면서 사랑스럽지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는 없습니다. 풀지 않는 수수께끼만 있습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없습니다. 풀려는 마음이 없을 뿐입니다. 4348.3.11.물.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