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가면 43
미우치 스즈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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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13



한길을 가려는 몸짓

― 유리가면 43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09.8.15.



  누구나 한길을 걷습니다. 다만, 누구나 한길을 걷되 한길을 걷는지 안 걷는지 못 알아채기 일쑤입니다. 누구나 한삶을 짓습니다. 다만, 누구나 한삶을 짓되 내가 참말 내 한삶을 짓는지 아니면 갈 곳을 잃고 어지러이 헤매기만 하는지 모르기 일쑤입니다.


  곧게 이 길을 걷든 이리저리 헤매든 우리는 모두 한길을 걷습니다. 가시밭길을 걷거나 수렁에 빠지더라도 모두 한길을 걷습니다. 제자리걸음이나 쳇바퀴질 같아도 누구나 한길을 걷습니다. 나를 스스로 바라보면서 생각을 이으면 됩니다. 나를 스스로 아끼면서 사랑을 품으면 됩니다.




- “좋아하는 여자한테 자기 마음을 당당히 밝히다니, 참 남자답네요.” (27쪽)

- “웬일로 도쿄 하늘에 별이 다 보인대?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던데, 넌 빌어 본 적 없니?” “응.” “그래, 어떤 소원?” “근데, 이젠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33쪽)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09) 마흔셋째 권을 읽으면서 ‘한길’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연극 〈홍천녀〉에서 주연 배우가 되려고 하는 마야와 아유미가 있는데, 두 아이는 온힘을 그러모아 저희 나름대로 ‘새로운 홍천녀’가 되는 길을 걷습니다. 다른 어느 길도 두 아이 눈에는 안 보입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새로운 홍천녀가 되어야 마음이 찹니다. 아유미로서는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이 큽니다. 어머니가 맡지 못한 배역인 홍천녀가 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어머니 그늘과 품에서 나와 홀가분하게 설 만하리라 여깁니다. 마야는 꼭 홍천녀라는 배역에 마음을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마야로서는 연극이기 때문에 홍천녀를 하고 싶은 마음이요, 수많은 유리가면 가운데 하나로 홍천녀에 마음이 갑니다.





- ‘대사 하나하나가 전부 아코야의 마음? 난 아코야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어! 바람, 불, 물, 흙. 자연계를 움직이는 생명의 에너지! 아코야는 분명 당연한 듯이 알고 있었을 거야!’ (47쪽)

- “왜 그래? 이 나무도 살아 있는 거잖아. 인간처럼 말은 못 해도 아코야는 나무와도 얘길 나눴어.” (51쪽)

- “이대로 가면 그 녀석한테 승산은 없어. 있다면, 그 녀석이 얼마나 관객에게 자신이 ‘진짜’임을 깨닫게 하느냐겠지.” “진짜?” “그래, ‘진짜’. ‘진짜’ 홍천녀 말야.” (90∼91쪽)



  조금 더 헤아리자면, 마야가 홍천녀 배역을 하려는 까닭은 ‘사랑’ 때문입니다. 둘이지만 하나인 넋이고, 하나이지만 둘인 몸으로 사는 숨결을 잇는 끈을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름과 돈과 힘 따위를 내려놓고 마음과 마음이 다시 새롭게 만나서 이루는 사랑을 알고 싶어서 홍천녀 배역을 하고 싶습니다.


  아유미로 보나 마야로 보나, 두 아이는 모두 홀로서기를 바랍니다. 아유미는 이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는 집에서 나와 홀로 살림을 꾸리는 길을 걷고 싶습니다. 마야는 이제 ‘꼬마’가 아닌 ‘사랑’으로서 떳떳하게 서며 씩씩하게 한길을 걷고 싶습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 있으나 서로 같은 꿈입니다. 서로 다른 마음이지만 서로 한마음입니다. 이리하여, 츠기카게 님은 두 아이더러 ‘홍천녀는 벌써 너희 마음에 다 있다’고 말했어요. 어느 한 가지 모습을 똑같이 따라해야 하는 홍천녀가 아니라, 아유미는 아유미대로 마야는 마야대로 제 삶을 스스로 깨달아서 제 힘으로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어야 비로소 ‘내 홍천녀’가 되고, ‘내 홍천녀’는 다른 사람 것에 휘둘리거나 이끌리거나 흉내내는 모습이 아닌, ‘오롯한 내’가 되는 삶입니다.





- “누구를 위해? 뭐 때문에? 왜! 홍천녀를 하려는 거지? 꼬마.” ‘마스미 씨!’ (99쪽)

- “아, 다행이다. 안 밟아서.” ‘벌레도, 풀도, 살아 있어. 흙이 생명을 키우고 있는 거야. 아코야가 캐는 약초도 분명, 생명을 지닌 풀. 분명 아프겠지? 미안해. 미안해.’ (120쪽)

- ‘따뜻해. 소중한 삶의 불! 분명 보물처럼 소중할 거야. 아코야의 불은! 혹시 매일의 삶 속에 아코야의 세계가 있는 게 아닐까? 아주 조금 모양만 바꿨을 뿐이고, 아코야의 세계는 언제든 눈앞에 있어. 흙도 물도 불도!’ (128쪽)



  아유미한테는 홍천녀 배역이 가장 높은 봉우리입니다. 마야한테는 홍천녀는 수많은 배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유미는 홍천녀 연기를 하고 나면, 앞으로 다른 모든 연기가 ‘어려울 일도 쉬울 일도 없’는 똑같은 연기인 줄 알아차릴 만하리라 느낍니다. 마야는 홍천녀 연기를 하고 나면, 이제 삶과 사랑과 사람이라는 실마리를 풀어서, 스스로 옭아매었던 ‘난 연기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바보스러운 생각을 내려놓을 만하리라 느낍니다.


  이리하여, 만화책 《유리가면》은 두 아이가 저마다 제 허물을 벗고 일어나는 흐름을 차분히 보여줍니다. 마흔 해가 되도록 연재가 끝나지 못하는 만화책 《유리가면》인데, 어느 모로 보자면, 이 만화에서 보여줄 이야기는 다 끝났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츠기카게 님이 두 아이한테 ‘너희 마음속 홍천녀’를 말했을 때에 벌써 이야기는 다 끝났지요. 두 아이가 스스로 제 마음을 제대로 읽어서, 제 한길을 제 손과 발로 일굴 수 있으면, 앞으로는 홍천녀 배역이든 무슨 배역이든 가리거나 따질 까닭이 없다는 뜻을 밝혔으니, 마흔셋째 권이든 마흔아홉째 권이든, 언젠가 나올 쉰째 권이든, 모두 ‘같으면서 다른’ 이야기를 품습니다.





- ‘그럼, 아코야의 옷은? 집은? 누에고치와 식물에게서 실을 자아내고, 베틀로 천을 짜고, 의복을 만든다! 누에나 식물의 생명을 받아서 입는다!’ (131쪽)

- “다행이다. 한 송이라도 건져서. 한 송이라도.” (180쪽)



  《유리가면》 마흔셋째 권에서 마야는 비로소 제 마음을 안 숨기기로 합니다. 보라빛 장미를 건사하려는 몸짓을 여러 사람 앞에서 다부지게 보여줍니다. 한 송이라도 건지려고 하는 몸짓을 보여줍니다. 마야가 어떤 마음인가를 둘레 사람한테 아주 짙고 드세게 보여줍니다.


  마야는 바로 이 길을 가야 합니다. 마야는 바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삶을 노래하는 길을 가야 합니다. 마야는 마야 스스로 가슴에 품을 사랑을 알아야 홍천녀를 할 수 있습니다. 아유미라는 아이는 어떠할까요? 아유미라는 아이는 제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그늘을 제대로 깨달아서, 그냥 혼자서 씩씩하게 서면 됩니다. 굳이 어머니와 아버지네 집에서 살아야 할 까닭이 없고, 어느 모로 보면 굳이 그 집을 나와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나는 나’인 줄 알아차려서 스스럼없이 바라보면 됩니다.


  아유미는 마야한테 시샘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유미는 아유미 스스로도 ‘하늘이 내린 선물(천재)’을 넉넉히 한몸에 받을 줄 알고 느껴서 누리면 됩니다. 기쁨으로 삶을 누리고, 즐거움으로 삶을 노래하면 됩니다. 4348.5.15.쇠.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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