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돌이 쳇 - 미야자와 겐지 동화집 1
미야자와 겐지 지음, 이노 가즈요시 외 그림, 박경희 옮김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99



맑은 마음을 잃어버린 어른이더라도

― 쥐돌이 쳇

 미야자와 겐지 글

 이노 가즈요시·스카사 오사무 그림

 박경희 옮김

 작은책방 펴냄, 2003.11.6.



  아이들이 노래하는 소리는 맑고 싱그럽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착하고 보드라운 마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른들이 노래하는 소리는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어른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는 사람은 착하거나 보드라운 마음이 될는지 안 될는지 궁금합니다.



.. “무슨 소리야? 난 자네를 속이지 않았어. 분명히 별사탕이 있었단 말야.” “예, 있긴 있었지요. 하지만! 벌써 개미들이 와 있었다고요.” “뭐, 개미가? 그랬나. 정말 잽싼 놈들이로구먼.” “개미가 다 가져가 버렸다고요. 나같이 약한 쥐를 속이다니 물어줘요, 물어줘.” … 고양이 대장은 크게 웃으며, “아하하, 선생도 돼먹지 못하고, 학생도 나쁘군. 선생은 언제나 그럴싸한 거짓말만 하고, 학생은 배울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으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러워.” 하고 말했답니다 ..  (11, 37쪽)



  미야자와 겐지 님이 쓴 어린이문학 《쥐돌이 쳇》(작은책방,2003)을 읽습니다. 작은책방 출판사에서는 모두 여섯 권으로 ‘미야자와 겐지 동화집’을 선보였고, 《쥐돌이 쳇》은 여섯 권 가운데 첫째 권입니다. 첫째 책에는 〈쥐돌이 쳇〉과 〈새 상자 선생님과 쥐돌이 후유〉와 〈쥐돌이 흥〉과 〈도토리와 살쾡이〉 같은 네 가지 이야기가 담깁니다. 여러모로 ‘쥐돌이’가 많이 나오는 《쥐돌이 쳇》입니다.


  《쥐돌이 쳇》에 나오는 쥐돌이는 하나같이 살짝 어리석거나 어리숙합니다. 이웃이나 동무를 살필 줄 모르고, 제 앞가림에 바쁩니다. 제 삶을 살뜰히 가꾸는 길로 나아가기보다는 다른 쥐 눈치를 살살 보면서 겉치레를 하는 길로 나아갑니다.



.. 테 의원은 아주 어려운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자신이 대견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쥐돌이 흥은 그것이 너무도 아니꼬워서, “에헴, 에헴!” 하고 상대편 귀에 들리지 않도록, 하지만 가능한 한 높은 소리로 헛기침을 하며 … “이놈은 사회 분열을 꾀하는 놈이야! 분열 분자라고! 체포해라, 어서 체포해!”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쥐는 마치 돌팔매질을 하듯이 흥에게 덤벼들어 쥐돌이 오랏줄로 칭친 묶어 버렸습니다 ..  (48, 50쪽)



  쥐돌이는 왜 하나같이 으스댈까요. 쥐돌이는 왜 저마다 우쭐거리면서 남을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릴까요. 쥐돌이는 왜 다른 쥐는 낮은 데에 두고 저는 높은 데에 두려 할까요.


  미야자와 겐지 님은 쥐돌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사람살이를 고스란히 보여주려고 했다고 느낍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이 나고 자란 일본에서 늘 바라보거나 마주하는 사람살이를 바로 쥐돌이 이야기로 갈무리해서 보여주려고 했구나 싶습니다.


  정치권력을 쥔 쪽에서 본다면, 미야자와 겐지 님이 살던 무렵(1896∼1933)은 일본이 군대힘을 키워서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던 때입니다. 곳곳에서 제국주의 물결이 넘쳤고, 사람들인 정치권력이나 군대힘에 억눌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끌려가면서도 숨을 죽였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공장에서 총알이나 탱크나 군인옷 따위를 만들면서도 소리를 죽였습니다.



.. 쥐돌이 흥은 새끼 고양이들이 너무나도 영리했기 때문에 부아가 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쥐돌이 흥이 1에 1을 더하면 2가 된다는 것을 외우는 데 반 년이나 걸렸기 때문입니다 … 고양이 대장에 돌아와서 물었습니다. “뭣 좀 배웠니?” 그러자 네 마리 새끼 고양이가 일제히 대답했답니다. “예, 쥐 잡는 법을 배웠어요.” ..  (58, 59쪽)



  쥐돌이는 나이가 많은 어른이어도 새끼 고양이보다 어리숙합니다. 《쥐돌이 쳇》에 나오는 쥐돌이는 새끼 고양이가 아주 어릴 적에 손쉽게 깨우치거나 알아차린 이야기를 어른이 되어서야 겨우 깨우치거나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쥐돌이는 새끼 고양이를 시샘하고, 괜히 거드름을 피우고 싶습니다. 새끼 고양이보다 ‘나이가 많다’는 대목을 내세우고 싶습니다.


  고양이 앞에 놓인 쥐이면서도 고양이한테 거드름을 피우는 쥐돌이입니다. 아무리 새끼인 고양이라 하더라도 쥐 한 마리쯤 잡아먹기는 쉬울 텐데, 쥐돌이는 무서운 줄 모릅니다. 아니, 너무 무서운 나머지 무서움을 잊은 셈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니까, 고양이한테 잡아먹히겠구나 하고 무서워하기보다는, 새끼 고양이한테조차 거드름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겠지요.


  쥐돌이 가운데 ‘흥’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 새끼 고양이 사이에서 거드름을 피우던 쥐돌이 흥은 어떻게 될까요? 거드름을 피우는 쥐 한 마리를 바라보는 새끼 고양이는 무엇을 할까요?



.. 시원한 바람이 쏴아쏴아 불자 밤나무가 후드득후드득 알밤을 떨어뜨렸습니다. 이치로는 밤나무를 올려다보며 물었습니다. “밤나무야, 밤나무야. 살쾡이가 여길 지나가지 않았니?” 밤나무는 잠시 조용해지더니, “살쾡이는 오늘 아침 일찍 마차를 타고 동쪽으로 달려갔어.” 하고 대답했습니다 … “오늘 사례 말입니다, 황금 도토리 한 되와 소금에 절인 연어 머리 가운데 어느 것이 좋겠습니까?” “황금 도토리가 좋겠군요.” 살쾡이는 연어 머리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듯 빠른 말투로 마부에게 명령했습니다. “도토리를 한 되 가지고 오너라. 한 되가 안 되거든 도금한 도토리라도 섞어서 가지고 와, 얼른!” ..  (63, 82쪽)



  《쥐돌이 쳇》은 〈도토리와 살쾡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들려줍니다. 이 이야기에는 어린이가 나옵니다. 숲속 재판에 어린이가 찾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음이 맑은 어린이는 숲속 재판에 찾아가서 스스럼없이 착한 말씨로 골칫거리를 손쉽게 풀어 줍니다. 이리 재거나 저리 따지지 않고, 맑은 마음으로 노래하듯이 슬기로운 생각을 펼쳐 보여요.


  가만히 돌아보면, 모든 어린이는 어른이 됩니다. 모든 어른은 어린이로 살았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어린이가 마음이 맑다면, 모든 어른도 어릴 적에 누구나 마음이 맑았다는 뜻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그리 안 맑은 마음으로 사는 어른이 있더라도, 이녁은 예전에 맑고 밝으며 착한 마음씨로 환하게 웃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곳에서 마음이 안 맑은 어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이곳에서 마음이 흐리멍덩한 어른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즐거울까요? 아무리 마음이 어지러워지거나 흐리멍덩해졌다고 하더라도, 이제부터 맑은 마음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이제부터 밝은 숨결이 되고 포근한 사랑이 되면 즐겁습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은 수수하고 투박한 이야기를 지어서 이 같은 생각을 찬찬히 밝혔다고 느낍니다. 어린이도 맑고 어른도 맑으니, 사람들 모두 기쁘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아름답게 살기를 바랐지 싶어요. 《쥐돌이 쳇》에 나오는 모든 쥐돌이 같은 어리석은 일본사람이 바보스러움을 하루 빨리 깨닫고 착하며 참된 넋으로 거듭나기를 바랐지 싶습니다. 이 동화책을 읽는 우리는 우리대로 슬기롭고 착하면서 아름다운 삶을 지을 때에 하루가 즐겁겠지요. 4348.5.13.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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