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59 별이 보이는 눈



  별은 늘 있습니다. 지구 바깥에 수많은 별이 늘 있습니다. 지구는 온별누리(온 은하계)를 이루는 별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른 별에서도 수많은 다른 별을 보기 마련이고, 지구별에서도 수많은 다른 별을 보기 마련입니다.


  지구별 가운데 바깥별을 알아보거나 살펴보기 어려운 곳이 차츰 늘어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지구별에 있는 땅바닥에서 하늘을 올려다볼 적에, 하늘을 이루는 바람이 매캐하거나 더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유리창이 지저분하면 유리창 너머가 잘 안 보이듯이, 하늘을 이루는 바람이 맑거나 싱그러운 바람이 아니라, 온갖 매연과 쓰레기로 얼룩진 지저분한 바람이 되면, 우리는 이 지구별에서 다른 바깥별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지구에서 다른 별을 못 본다고 하더라도 다른 별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 별이 안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별을 못 보는 채 지내다 보면, 어느새 별을 잊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아무런 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때에는 ‘내가 별을 못 볼 뿐’이거나 ‘내가 별을 안 볼 뿐’이지만, 마치 ‘별이 없다’고 여기는 마음이 됩니다.


  어느 곳에서는 별을 거의 못 보고, 어느 곳에서는 별을 제법 많이 보며, 어느 곳에서는 쏟아지듯이 넘치는 별을 봅니다. 터에 따라 별을 달리 본다고 할 텐데, 꼭 터에 따라 별을 달리 보지는 않습니다. 눈이 밝은 사람은 먼 데를 더 잘 보듯이, 눈이 밝다면 매캐한 바람이 가득한 도시에서도 별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유리창이 웬만큼 지저분해도 눈이 밝으면 유리창 너머를 알아볼 수 있어요.


  ‘별이 보이는 눈’과 ‘별이 안 보이는 눈’이 있습니다. ‘별을 생각하는 눈’과 ‘별을 잊은 눈’이 있습니다. 별을 보거나 생각하는 눈이라면, 마음을 마음으로 바라보려는 눈입니다. 별을 안 보거나 잊는 눈이라면, 마음을 마음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눈입니다.


  별은 늘 온별누리에 가득합니다. 사람한테는 누구나 마음이 있습니다. 별이 있어도 별을 보지 않거나 느끼지 않는다면,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이 있어도 이들 가슴속에서 흐르는 ‘마음을 안 읽거나 못 읽는다’고 할 만합니다.


  남다른 재주나 기운이 있어야 별을 보거나 마음을 볼까요?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남다른 재주나 기운은 누구한테 있을까요? 몇몇 사람한테 있을까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생각대로 몇몇 사람한테만 남다른 재주나 기운이 있을 테고, 바로 나한테도 남다른 재주나 기운이 있다고 여긴다면 나는 나대로 남다른 재주나 기운을 쓸 수 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어 바라보기에 별을 봅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바라보기에 별을 봅니다. 온마음을 열어서 이웃을 마주하려 하기에 서로 마음을 읽고 나눕니다. 온마음을 열지 않기에 이웃하고 나란히 있어도 서로 어떤 마음인지 모릅니다. 별을 보는 눈은 마음을 보는 눈입니다. 별을 보지 않는 눈은 마음을 보지 않는 눈입니다.


  우리는 눈을 뜨기에 봅니다. 몸에 있는 눈을 뜨기에 여러 가지를 손에 만지면서 바라볼 수 있고, 마음에 있는 눈을 뜨기에 온갖 것을 사랑으로 어루만지면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두 눈으로만 별을 보려 한다면, 바람이 매캐한 곳에서는 어떠한 별도 못 볼 수 있으나, 마음에 깃든 눈으로도 별을 보려 한다면, 바람이 매캐한 곳에서도 뭇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우리 아이’나 ‘우리 님’을 알아보려 한다면, 알아볼 수 있다면, 알아보며 기쁘다면, 나는 ‘몸눈’뿐 아니라 ‘마음눈’을 떠서 서로 마주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을 읽는 눈은 몸눈이 아닌 마음눈(온눈)입니다. 삶을 읽고, 꿈을 읽으며, 이야기를 읽는 눈도 몸눈이 아닌 마음눈(온눈)입니다. 온눈을 뜨면서 가슴에 별을 담아 새로운 삶을 엽니다. 4348.3.10.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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