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53) 중中 38
그들은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어. 그러던 중 표범은 나뭇가지 사이로 가느다랗게 비치는 별빛 속에서 무언가가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단다
《러디어드 키플링/박성준·문정환·김봉준·김재은 옮김-아빠가 읽어 주는 신기한 이야기》(레디셋고,2014) 52쪽
그러던 중
→ 그러는 사이
→ 그러는 동안
→ 그러다가
…
때를 가리키는 자리에서는 ‘사이’나 ‘동안’ 같은 낱말을 씁니다. “네가 밥 먹는 사이에 다녀왔지”라든지 “네가 잠든 동안에 일을 마쳤어”처럼 말해요. 이런 자리에 ‘中’이라는 한자를 넣지 않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그러다가’로 손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이러다가’로 손볼 수도 있습니다.
‘中’은 외국말입니다. 영어로 치면 ‘in’처럼 썼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사전을 보면 ‘in’을 풀이하면서 “-하다가(-하는 중에)”처럼 쓰기도 합니다. 제대로 풀이하자면 “-하다가(-하는 사이에, -하는 동안에)”처럼 고쳐야겠지요.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쓸 노릇입니다. 4348.4.29.물.ㅎ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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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어. 그러다가 무늬범은 나뭇가지 사이로 가느다랗게 비치는 별빛을 받으며 무언가가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었단다
‘표범(豹-)’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무늬범’으로 손보아도 됩니다. “별빛 속에서”는 “별빛을 받으며”로 손질하고, “듣게 되었단다”는 “들었단다”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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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69) 중中 39
방학도 아닌데 한밤중에 찾아와 정원에서 잠이 든 게 세상에 늘 있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할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카롤린 필립스/유혜자 옮김-황허에 떨어진 꽃잎》(뜨인돌,2008) 82쪽
한밤중에 찾아와
→ 한밤에 찾아와
한국말은 ‘中’을 붙이지 않는 ‘한밤’입니다. 그런데,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면, ‘한밤’을 “= 한밤중”으로 풀이하고, ‘한밤중(-中)’을 “깊은 밤”으로 풀이하는군요. 이 같은 말풀이는 엉터리인데, 이를 엉터리로 깨닫는 사람이 드문 듯합니다. ‘한밤’은 “한 + 밤”이고, ‘한’은 크거나 깊거나 너른 모습을 나타냅니다. ‘한밤’이라고 하면 바로 “깊은 밤”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中’을 붙이면 군더더기이지요. 겹말이라고도 하겠습니다.
한낮중 (x)
한낮 (o)
한국말은 언제나 나란히 있습니다. ‘밤’과 ‘낮’이 나란히 있고 ‘아침’과 ‘저녁’이 나란히 있습니다. ‘너’와 ‘나’가 나란히 있으며, ‘있다’와 ‘없다’가 나란히 있지요. 그래서, ‘한밤’이라는 낱말이 있으면 ‘한낮’이라는 낱말이 있어요. 이 대목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아무도 ‘한낮중’이라는 낱말을 쓰지 않습니다. ‘한낮’이라고만 씁니다. 가장 큰 낮이라고 해서 ‘한낮’이고, 숫자로 치면 열두 시 언저리를 가리키지요. ‘한밤’도 이와 같습니다. 이러한 얼거리를 헤아리면서 ‘한낮·한밤’을 알맞고 올바로 쓰면 됩니다. 4348.4.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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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도 아닌데 한밤에 찾아와 앞뜰에서 잠이 드는데 어디에서나 늘 있는 일이라도 되는 듯이 할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정원(庭園)’은 ‘마당’이나 ‘앞뜰’로 다듬고, “잠이 든 게”는 “잠이 드는데”나 “잠이 들었는데”나 “잠든 일이”로 다듬으며, ‘세상(世上)에’는 ‘어디에서나’로 다듬습니다. “되는 것처럼”은 “되는 듯이”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