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 - 우리가 꿈꾸던 마을이 펼쳐지고 있다, 2015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 선정
박재동 글.그림 김이준수 글, 서울시 마을공동체 담당관 기획 / 샨티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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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9



한마을에서 이웃이 되는 길

―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

 박재동·김이준수 지음

 샨티 펴냄, 2015.4.6.



  ‘마을 살리기’ 바람이 찬찬히 온 나라에 붑니다. ‘마을’이라는 낱말은 시골에서 쓰는 말이고, 도시에서는 ‘동네’라는 낱말을 쓰지만, 요새는 도시에서도 ‘마을’이라는 낱말을 곧잘 씁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마을’이라는 낱말은 “살림집이 여럿 모여 이루어진 삶터”를 가리킵니다. ‘동네’는 ‘洞 + 네’입니다. ‘동네’는 ‘洞內’에서 말꼴이 바뀌었다고도 하지만, ‘형네’나 ‘할머니네’처럼 ‘-네’를 붙였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아무튼, 한겨레는 먼 옛날부터 ‘마을’이라는 낱말만 썼으나, 시골살이가 사라지는 곳, 이른바 ‘도시’가 생기면서 한자를 빌어 ‘동네’라는 낱말을 새로 지어서 썼다고 여깁니다. 오늘날에는 ‘뉴타운’ 같은 영어를 쉽게 쓰지만, 일제강점기 언저리와 해방 뒤에는 으레 한자로 새 낱말을 지어서 썼습니다.


  그러니까, 오래된 삶터에서는 수수하게 ‘마을’이라는 낱말을 쓰는 셈이요, 새로운 문명과 사회를 보여주려고 하는 도시에서는 ‘동네’라는 낱말을 써서 둘을 가르려고 하는 셈입니다.



.. 임유화 씨는 아파트가 한 칸 한 칸의 사적 재산물들이 모여 있는 단순한 집합체라기보다는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는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을 맛본 사람들이 속속 판을 넓히기 시작하면서 성미산마을은 점점 더 흥미로운 곳이 되어 갔다 … ‘어울려서 요리하고 먹는’ 즐거움이 주방에서 시작해 마을로 이어진다 ..  (15, 29, 47쪽)



  ‘두레’를 엮으려는 움직임이 나라에서까지 일어납니다. 한자말로는 ‘협동조합’이라고 하는데, ‘협동조합’은 일본에서 지은 낱말입니다. 협동조합 운동도 일본에서 불거졌습니다. 나라에서 정책으로 협동조합 바람을 일으키기 앞서, 도시에서는 사람들 스스로 ‘생협(생활협동조합)’ 운동을 벌였습니다. ‘두레 생협’ 같은 이름을 쓰는 곳도 있었는데, 생협이든 협동조합이든 한국말로 가리키면 ‘두레’입니다.


  뜻을 모으고 힘을 모아서 여럿이 함께 큰일을 할 적에 ‘두레’를 합니다. 두레를 모임으로 엮지요. 그런데, ‘마을’이라는 이름도 시골살이에서 태어났고, ‘두레’라는 이름도 시골살이에서 나타났습니다. 도시에서는 흙일을 하지 않는데, 외려 도시에서 ‘마을 살리기’나 ‘마을 만들기’를 벌이고, ‘두레’라는 모임을 엮으려는 움직임이 크게 일어납니다.



.. 누군가는 이웃랄랄라가 어떻게 마을공동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웃랄랄라는 분명 마을공동체다. 스스로 하나의 마을이 되었다 … 이런 과정에서 은실이네만의 철학도 생겼다. 조금 벌더라도 일을 많이 하지는 말자 … 마을에서는 곧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대도시들은 이런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 곽수경 씨는 자신이 오랜 시간을 통해 깨달은 것을 마을의 청소년들도 언젠가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59, 68, 78, 204쪽)



  박재동·김이준수 님이 빚은 이야기책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샨티,2015)을 읽습니다. 서울에서 ‘마을 살리기’를 알차면서 예쁘게 잘 하는 스무 군데 마을을 찾아다닌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서울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예쁜 마을이 스무 군데뿐이겠습니까만, 이 스무 군데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마을이 자라기를 비는 마음일 테고, 다른 모든 예쁜 마을이 튼튼하게 뿌리내리기를 꿈꾸는 마음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책을 찬찬히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도 듭니다. 왜 마을 살리기를 할까요? 마을 살리기를 굳이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마을 살리기를 한다고 한다면, 마을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살리기를 굳이 해야 하는 까닭이라면, 마을이 죄다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앞뒤가 어긋난다고 해야 할까요, 씁쓸하다고 해야 할까요, 1970년대로 접어든 뒤부터 나라에서 ‘새마을 운동’을 일으켰고, 이 운동은 아직도 깃발이 나부낍니다. 아직도 시골에서는 마을마다 새마을 운동 깃발을 내걸어야 합니다. 시골 군청에서도 이 깃발을 내걸고, 도시에서도 이 깃발을 내걸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새마을 운동 바람이 일고 난 뒤부터 ‘마을이 죽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시골에 있던 수많은 마을을 깡그리 짓밟았습니다. 게다가 도시에 있던 달동네도 하나둘 짓이겼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살갑고 고요하게 숨쉬던 마을살이를 몽땅 내쫓으려고 하던 새마을 운동입니다. 새마을 운동을 벌이면서, 풀집과 흙집을 허물었습니다. 제비집도 까치집도 허물었습니다. 마을 고샅길을 시멘트로 덮었고, 논둑도 시멘트로 덮으며, 논도랑도 시멘트로 덮었지요. 비료와 농약과 비닐을 쓰도록 부추긴 새마을 운동입니다. 새마을 주택을 짓게 시키고, 새마을 모자를 쓰게 시키며, 새마을 수련원을 세워서 ‘나라에 충성하는 애국 시민’을 키우려고 닦달했습니다.



.. 마을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릴망정 되지 않은 일은 없다 … 〈도봉 N〉은 마을에서 벌어진 사소한 일도 놓치지 않고 신문에 담아냈다. 아이들이 쓴 시가 실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은 신문이 언제 나오느냐고 보채곤 했다. 내 이야기, 우리 이야기가 실리는 신문, 마을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었다 … 미디어는 즐겁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때 빛이 난다. 내 주변에 귀를 기울이면 얼마든지 즐겁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와보숑은 보여준다 ..  (114, 129, 151쪽)



  마을은 나라에서 세우지 못합니다. 마을은 사람들 스스로 세웁니다. 사람들이 손수 흙을 가꾸고 나무를 심으며 들을 돌볼 적에 비로소 살림집 한 곳이 태어나고, 이웃집이 생기고 늘면서 바야흐로 마을을 이룹니다. 커다란 장비를 써서 아파트를 수백 채씩 때려박아서 수천이나 수만에 이르는 사람이 좁은 곳에 다닥다닥 붙어서 살도록 해야 ‘마을’이 되지 않습니다. 예부터 ‘마을’이라고 하는 곳은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 삶터’입니다. ‘아이들이 물려받아서 즐겁게 살다가, 새롭게 아이를 낳아서 오래오래 물려줄 만한 삶터’가 바로 마을입니다.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에 나오는 ‘마을 살리기’를 찬찬히 보면, ‘골목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드뭅니다. 으레 아파트로 이루어진 마을입니다. 아파트라고 해서 마을이 안 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파트는 언제나 재개발을 합니다. 아파트 재개발을 하면, 이곳에 ‘예전 아파트 주민’이 다시 돌아와서 살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아파트 재개발을 하면 예전 아파트를 허물면서 나오는 온갖 시멘트 쓰레기와 플라스틱 쓰레기가 갈 곳이 없어요. 이런 쓰레기를 어디에 버릴까요? 갯벌에 파묻고 매립을 할까요? 바다에 던질까요? 가난한 이웃나라에 아파트 쓰레기를 내다팔까요?


  마을 한 곳은 한두 해나 열스물 해 사이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마을 한 곳은 아무리 짧아도 이백 해는 흘러야 태어납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어른이 된 뒤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기를 꾸준히 되풀이한 뒤에라야 비로소 마을이 뿌리를 내립니다.



.. 아이들을 대하는 아빠들의 태도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났다. 아내의 몫으로만 여기던 육아를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와 함께 바깥으로만 돌던 아빠들이 자연스레 마을의 일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 마을무지개의 미덕은 이주 여성을 한 마을에 사는 이웃으로 바라본다는 것, 경제 활동을 함께하면서 마을공동체도 일구어 간다는 점일 것이다 ..  (184, 234쪽)



  서울은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땅은 무척 좁은데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텃밭을 누리기 몹시 어렵습니다. 마당 있는 집에서 지내는 서울사람은 손으로 꼽을 만큼 드뭅니다. 고급아파트나 호화빌라에 살더라도 마당을 누리는 사람은 드물지요. 마음껏 악기를 켜거나 노래를 부를 만한 살림집에 깃든 서울사람은 그야말로 드뭅니다.


  서울에서 꾀하는 ‘마을 만들기’는 이렇게 나무 한 그루 못 심고 텃밭 한 조각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제 더는 이 갑갑한 곳에서 숨이 막혀 못살겠다!’고 하면서 외치는 목소리라고 느낍니다. 층간소음 때문에 골머리를 앓지 말고,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고 웃고 떠들고 수다를 떨면서 밥잔치도 열고 술잔치도 벌이면서, 온갖 잔치를 함께 누리자고 하는 신나는 놀이마당을 꿈꾸면서 ‘마을 만들기’를 꾀하지 싶습니다.


  마을은 언제나 놀이마당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언제나 노니까요. 마을은 언제나 일터입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언제나 일하니까요. 다만, 놀이와 일은 서로 동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 일거리를 거들면서 기쁘게 놉니다. 어른들은 언제나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놀도록 온갖 놀잇감을 손수 만들어서 건네며 함께 놉니다. 놀이노래를 가르치고, 놀이를 물려줍니다. 너른 마당과 들과 숲에서 아이들이 걱정없이 뛰놀도록 삶터를 가꿉니다.


  서울에서 꾀한다는 ‘마을 만들기’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기를 바라는 꿈이어야지 싶습니다. 서울사람이 짓는다는 ‘마을’은 바로 어른과 아이가 함께 웃고 노래하는 잔치마당을 바라는 꿈으로 나아가야지 싶습니다.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에서도 앙증맞은 마을이 태어나기를 빕니다. 강아랫마을과 강웃마을 모두 사랑스러운 마을이 새로 자랄 수 있기를 빕니다. 이리하여, 나중에는 서울과 시골이라는 울타리가 없이, 모두 한동아리로 어깨동무할 수 있는 멋진 ‘한마을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4348.4.28.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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