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91] 농약 안 쓰는 까닭

― 풀과 나무와 개구리와 새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으레 “약 좀 치면 시원하게 다 죽겠는데.” 같은 말을 들려줍니다. 참말, 농약을 쓰면 풀은 모조리 시원하게 죽겠지요. 그러나, 우리 집에는 농약이 없습니다. 모기나 파리나 바퀴벌레를 잡는다는 벌레잡이약도 없습니다. 모기향도 피우지 않습니다.


  이 땅에 돋는 풀 가운데 사람이 쓰지 못할 풀이란 없습니다. 거의 모든 풀은 밥이 되어 줍니다. 날푸성귀로 먹을 수 있고, 날푸성귀가 아니어도 풀물을 짜서 마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풀이 있기에 비가 아무리 몰아쳐도 흙이 덜 씻깁니다. 나무 둘레에 풀 한 포기가 없으면, 뿌리 둘레에 있는 흙이 비에 휩쓸려서 흔들거리기 마련입니다. 풀이 보기 싫다면 낫으로 치면 될 노릇이지, 뿌리째 뽑아야 하지 않고, 농약으로 죽여야 하지 않습니다. 풀 잘 먹는 염소를 집에서 키운다면 더더구나 농약을 못 쓰겠지요.


  시골에서 살며 풀이 돋고 죽는 흐름을 살펴보면, 아주 거친 땅, 이른바 ‘붉은닥세리’ 같은 땅에는 망초와 쇠비름나물이 신나게 퍼집니다. 한 달이 안 되어 어른 키만큼 솟아납니다. 줄기는 얼마나 억센지 낫으로 끊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풀을 잡느라 농약을 쓰면 이듬해에 더 모질게 돋기 마련이에요. 이와 달리, 이 풀을 그대로 지켜보노라면, 이듬해에는 망초와 쇠비름나물이 거의 안 돋습니다. 이 풀은 흙을 살리는 거름이 되어 새로운 풀이 돋습니다. 망초와 쇠비름나물은 딱딱하게 굳은 땅속으로 뿌리를 힘차게 파고듭니다. ‘붉은닥세리’라고 하는 망가진 땅에 이 풀이 뿌리를 내리면, 땅속에 차츰 틈이 생겨서 바람이 드나들 길이 생기고, 땅이 천천히 숨을 쉬면서 살아나려고 합니다. 이리하여, 망초와 쇠비름나물이 퍼진 땅은 한두 해 뒤에 다른 풀한테 밀려요. ‘제법 살아나서 조금 기름진 땅’에서 돋는 다른 풀이 자라지요.


  빈터에 자라는 풀이 보기 싫다면 발로 밟으면 됩니다. 풀은 서너 차례 밟으면 고개가 꺽여서 더 오르지 못합니다. 사람이 밟고 다시 밟으면 제아무리 잘 돋던 풀이라 하더라도 뿌리로만 땅속에서 뻗으면서 위쪽에서는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 해가 흐르면 땅은 차츰 ‘풀이 죽어서 생기는 거름’으로 더 기름진 모습으로 거듭나고, ‘더 기름진 땅에서 잘 돋는 풀’로 확 바뀝니다.


  도시로 내다팔아야 하는 ‘상품’으로 남새를 길러서 거두어야 할 때에도 두둑마다 풀을 ‘밟아’ 주기만 하면 됩니다. ‘밟아서 바닥에 깔리’도록 하면 됩니다. 그러면 다른 풀이 더 자랄 수 없고, 풀뿌리가 땅속에 있으면 큰비가 몰아쳐도 흙은 덜 깎이고, 풀이 겨우내 말라 죽으면서 새로운 흙으로 바뀌니, 밭자락에서 흙이 사라질 일이 없습니다. 이러한 땅이 되면, 이 땅에는 풀벌레가 노래하고, 개구리가 겨울잠을 자며, 온갖 새가 찾아들고 벌과 나비도 알맞게 춤추는 예쁜 ‘집숲’이 되어요. 4348.4.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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