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38) -의 : 나비의 하는 짓


바둑이는 나비의 하는 짓을 보고 속으로 ‘간사스럽다’고 중얼거렸지만

《이원수-도깨비와 권총왕》(웅진주니어,1999) 48쪽


 나비의 하는 짓을 보고

→ 나비가 하는 짓을 보고



  이원수 님은 〈고향의 봄〉이라는 동요를 쓰면서 “나의 살던 고향은”처럼 글을 썼습니다. 이런 말버릇 탓에 “나비의 하는 짓” 같은 말투도 문득 튀어나옵니다. “내가 살던 고향은”으로 바로잡아야 올바르듯이 “나비가 하는 짓”으로 바로잡아야 올바릅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면, “고향의 봄”이라는 이름도 알맞지 않습니다. “고향 봄”이나 “봄 고향”처럼 말해야지요. “고향의 하늘”이 아닌 “고향 하늘”이라 해야 알맞습니다. “고향의 마을”이 아닌 “고향 마을”이라 해야 알맞아요. “고향 노래”이고 “고향 동무”이고, “고향 이야기”입니다. 4348.4.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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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는 나비가 하는 짓을 보고 속으로 ‘꾀바르다’고 중얼거렸지만


‘간사스럽다’는 ‘奸邪’일는지 ‘奸詐’일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어느 한자로 썼든 ‘꾀바르다’나 ‘약빠르다’나 ‘괘씸하다’로 손보면 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41) -의 : 벼의 쓰러짐


벼의 쓰러짐은 무엇보다도 우선 당혹감을 몰고 왔다

《한승오-삼킨 꿈》(강,2012) 154쪽


 벼의 쓰러짐은

→ 벼가 쓰러져서

→ 벼가 쓰러지니

→ 벼가 쓰러지면서

→ 벼가 쓰러진 뒤

 …



  벼가 쓰러지면 “벼가 쓰러졌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쓰러지면 “사람이 쓰러졌다”고 말해요. 기둥이나 나무가 쓰러지면 “기둥이 쓰러졌다”나 “나무가 쓰러졌다”고 말하지요. 한국말로는 “벼의 쓰러짐”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이 보기글을 보면 ‘당혹감을 몰고 왔다’ 같은 대목도 나옵니다. 한자말 ‘당혹감’은 “무슨 일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감정”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어찌할 바 모르는 마음을 몰고 왔다”는 셈인데, 한국말로는 이렇게 쓰지 않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라고 말할 뿐, 이러한 마음을 ‘몰고 온다’고 하지 않아요. 4348.4.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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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쓰러지니 무엇보다도 먼저 어찌할 바 몰랐다


‘우선(于先)’은 ‘먼저’로 다듬고, “당혹감(當惑感)을 몰고 왔다”는 “어찌할 바 몰랐다”나 “어찌할 줄 몰랐다”로 다듬습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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