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Rain 2 - 김중만 사진집
서영아 지음, 김중만 사진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205



빗물과 사진, 눈물과 사랑

― After Rain 2

 김중만 사진

 서영아 글

 소담출판사 펴냄, 2003.5.15.



  봄에 봄비가 내립니다. 봄비에는 봄내음이 깃듭니다. 봄내음은 땅을 깨우고, 땅이 깨어나면 풀씨가 깨어나며, 풀씨가 깨어날 무렵 나무마다 겨울눈도 깨어납니다.


  여름에는 여름비가 내립니다. 여름비에는 여름내음이 깃듭니다. 여름내음은 들마다 푸른 숨결로 퍼지고, 푸른 숨결을 받은 풀과 나무는 싱그러이 열매를 맺습니다. 일찌감치 꽃을 피운 딸기나 앵두는 여름에 새빨간 열매와 씨앗을 산뜻하게 내놓아요.


  가을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겨울에는 겨울비가 내립니다. 철마다 다른 빗물입니다. 똑같은 비는 없습니다. 봄에 내리는 비도 삼월과 사월과 오월이 다르고, 사월에 내리는 비도 첫무렵과 끝무렵에 내리는 비가 달라요.


  빗소리를 듣고 빗내음을 맡으면서 생각합니다. 빗물에 서리는 다 다른 숨결을 읽을 수 있다면, 빗물을 사진으로 찍을 적마다 늘 다른 이야기를 엮고 언제나 새로운 노래를 부를 만하리라 봅니다.






  김중만 님이 찍은 사진에 서영아 님이 글을 붙인 사진책 《After Rain 2》(소담출판사,2003)을 읽습니다. 사진책 《비 온 뒤》는 1권과 2권으로 나뉘어서 나옵니다. 배우나 가수나 연예인이나 모델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얼굴과 몸짓이 가득한 사진책입니다. 김중만 님은 “지금 잘나가고, 잊혀버린 이름이라 해서 연연하지 않고 사진성 위주의 선택을 했다. 그들과 보낸 지난 짧고 긴 시간을 소중하게 느낄 수만 있다면, 그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마음 어느 곳 한곳에 머물러 외로움을 만져 줄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하고 말합니다. 이런 말이 아니더라도 굳이 ‘잘나가는 사람’을 사진책에 넣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을 넣어야 할 사진책입니다. 함께 이야기를 느끼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도록 북돋우는 사진을 넣어야 할 사진책이에요.


  이름난 배우나 가수를 찍은 사진으로 사진책을 엮는다면, 이름난 사람들 얼굴값으로 사진을 판다고 할 만합니다. 연예인이나 모델 이름값으로 사진을 파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굳이 이렇게 사진책을 엮어야 할 까닭이 없을 뿐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재미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이름난 도시를 여행했다면서 이런 도시를 찍은 사진으로 사진책을 엮으면 재미없습니다. 이름난 관광지만 찾아다녔다고 자랑하려는 듯이 사진책을 엮어도 재미없어요.





  다만, 이름난 사람을 찍든, 이름난 관광지를 찍든, 사진 한 장에 이야기를 담는다면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찍히는 사람 이름값’에 따라 사진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개 사랑모임(팬모임)’에 있다면, 이름난 아무개를 찍은 사진을 좋아할 수 있을 테지만, 취미나 취향이 아니라 ‘사진’을 생각한다면,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가 깃든 사진으로 사진책을 엮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2003년에 《비 온 뒤》를 선보인 김중만 님은 이무렵이 “사진을 시작한 지, 올해로 28년째가 된다. 길기도 하고, 짧은 시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무엇을 했을까?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은 올바른 길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어느덧 김중만 님은 사진길을 걸은 지 마흔 해째 됩니다. 이 길을 앞으로도 걸어간다면 쉰 해도 되고 예순 해도 되겠지요.


  오래도록 한길을 걷는 사진가는 ‘올바른’ 삶이었을까요? 아마, 아무도 모르리라 느낍니다. 그저, 이 길을 걸은 사람 스스로 묻고 말할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스스로 올발랐다고 여기면 올바릅니다. 스스로 좋았다고 여기면 좋습니다. 스스로 아름다웠다고 여기면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즐거웠다고 여기면 즐겁습니다.





  사진책 《비 온 뒤》를 살펴보면, 여러 배우나 모델 사진 사이에 꽃과 풍경 사진이 흐릅니다. 그러고 보니, 김중만 님은 《비 온 뒤》 머리말에서 “한 장 사진을 찍기 위해 지났던 이름 잊어버린 길가의 모습들. 항구와 낡은 까페 테라스. 여름의 하늘과 깊은 밤 바다와 황량했던 사막. 아이들의 웃음과 절망의 눈물. 터지는 기쁨 속의 내 마음 긴 시간들. 방황, 어둠, 어떻게 지나왔을까. 바로 저기인데.” 같은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넋 놓고 생각해 보니, 지난 긴밤처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듯싶다. 하루하루를. 일 년을. 수십 년을, 그냥 먼산 바라보듯 지내온 길인가 보다.” 같은 이야기도 적었어요.


  패션사진이 아닌 ‘꽃 사진’은 바로 김중만 님이 이녁 사진넋을 돌아보는 이야기가 되리라 느낍니다. 패션사진은 잡지이든 화보이든 광고이든 ‘그 사진을 찍어 주기를 바라는 곳’에 주려고 찍는 사진입니다. 이 사진에도 김중만 님 마음과 숨결이 깃들기 마련이지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는 곳’ 마음과 숨결을 함께 생각해서 엮어야 합니다. ‘꽃 사진’은 오로지 김중만 님 마음과 숨결로 빚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웃는 삶이 꽃 사진에 드러납니다. 스스로 울고 지치던 나날이 꽃 사진에 나타납니다. 스스로 노래하고 사랑하던 하루가 꽃 사진에 서립니다.


  “한 장 사진을 찍기 위해 내 한몸 아끼지 못한 채 달려가는 길 위에 가끔은 웃고, 가끔 아픈 채, 지나가는 구름, 스쳐 가는 바람결 따라 흔들리는, 기쁨을 이제는 안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못내 미워하는 얼굴도, 그리움으로 더불어 사랑하며 살게 된다.” 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사진을 찍으며 살아가는 기쁨을 ‘바로 오늘이 되었기’에 안다고 할 수도 있으나, 예전부터 진작 알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사진 찍는 기쁨’과 ‘삶을 짓는 기쁨’을 모른다면 이 길을 걸을 수 없으니까요. 반갑고 애틋하며 고마운 이웃하고 동무를 사진으로 찍듯이, 반갑고 애틋하며 고마운 하루를 누립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기쁘게 찍는 사진입니다. 바로 오늘 여기에서 기쁘게 누리는 삶입니다. 철마다 다른 빗물을 느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삶마다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지면서 흐르는 사랑을 느끼면서 하루를 짓습니다. 4348.4.1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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