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닷 Photo닷 2015.4 - Vol.17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204



사진은 ‘기록’일까?

― 사진잡지 《포토닷》 17호

 포토닷 펴냄, 2015.4.1.



  사진잡지 《포토닷》 17호(2015.4.)를 읽습니다. 《포토닷》 17호 끝자락에서 흐르는 “카메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카메라 소형화의 촉매제가 되었던 것은 브라우니가 기존의 대형 카메라보다 성능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브라우니는 스튜디오에나 놓여 있고 복잡하기만 했던 카메라를 모든 사람들의 손에 들려 주었고, 쉽게 촬영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아무 데나 부담 없이 들고 갈 수 있게 해 주었다(123쪽/이철승).” 같은 이야기를 곰곰이 헤아립니다.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람이 아니라면, 또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람까지, ‘작고 가벼운 사진기’를 좋아하거나 즐깁니다. ‘크고 무거운 사진기’가 더욱 꼼꼼하면서 또렷한 모습을 보여주는 줄 모두 알지만, 덜 꼼꼼하고 덜 또렷하더라도 ‘작고 가벼운 사진기’가 두루 퍼집니다.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크고 무거운 사진기’를 안 쓰지 않습니다. 참말 돈이 없어서 ‘크고 무거운 사진기’를 안 쓰는 사람도 있지만, 크고 무거우면 번거롭거나 성가시거나 힘들기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갓난쟁이를 업고 다니는 어머니가 ‘크고 무거운 사진기’를 갖고 다닐 수 없습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뿐 아니라, 아기를 함께 돌보는 아버지도 ‘크고 무거운 사진기’를 들고 다니지 못합니다.


  어린이도 ‘크고 무거운 사진기’는 힘겹습니다. 몸이 여리거나 힘이 여린 사람도 ‘크고 무거운 사진기’는 벅찹니다. 손전화 기계에 달린 사진기를 쓰는 사람은 ‘사진을 모르’기 때문에 손전화 사진기를 쓰지 않습니다. 게다가, 손전화 사진기로 찍은 사진을 종이로 뽑는 사람도 많아요. 이른바 화질이나 해상도는 ‘크고 무거운 사진기’에 대면 어수룩하다고 할 만하지만,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왜 작고 가벼운 사진기를 쓰면서 ‘화질이나 해상도가 어수룩한 사진’을 종이로 뽑으면서 좋아할까요?


  수수께끼는 아주 쉽습니다. ‘사진은 기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여느 아마추어 사진가들처럼 예쁜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하고 단체로 출사도 다니던 시절도 있었지만, 뭔가 뻔한 일상이 되어 간다고 느꼈다. 아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천에 특별한 연고는 없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20여 년을 살다 보니 제2의 고향 같은 느낌이 있다(35쪽/석정).”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출사 다니기가 나쁜 일이 아닙니다. 출사도 ‘취미 생활’입니다. 취미 생활이 나쁘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취미 생활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삶’을 바라보고 싶다면, 출사를 그만두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삶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사진을 찍고 싶다면, 출사를 다닐 수 없기 마련이에요.


  “사진가 윤길중은 장애인들의 생활공간을 찾아 바닥에 한지를 깔고 그 위에서 한 명 한 명의 손과 발을 촬영했다. 부부는 손발을 함께 촬영하기도 했다. 중증장애인의 손발은 대부분 상처가 많고 뒤틀어져 이들이 가장 감추고 싶어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윤길중이 화면 가득히 보여주는 손발 사진은 여러 편의 사연을 함축한 서정시처럼 다가온다(39쪽/박정현).” 같은 이야기도 새겨 읽을 만합니다. 우리가 사진으로 못 담을 모습은 없습니다. 우리는 기록하려고 사진을 찍을 까닭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지으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는 이야기가 반갑고 재미있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는 사진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려는 뜻으로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발표된 지 어언 10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충돌과 반동〉(2002) 시리즈는 작가 이갑철을 상징하는 작업이자, 지금의 이갑철을 있게 한 계기인 한편, 끊임없이 그에게 따라붙는 꼬리표로 작용한다 … 굳이 비유하자면 붉은 벽의 사진들이 로버트 프랭크스러운 느낌이 묻어나는 ‘침묵’에 해당한다면 회색 벽에 배치된 사진들은 마틴 파의 화법을 연상시키지만, 철저히 이갑철다운 방식으로 ‘낭만’을 이야기한다(73∼74쪽/이기원).” 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되새깁니다. 이갑철 님이 찍은 사진은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이갑철 님 사진은 틀림없이 이갑철 님 사진입니다. 이갑철 님 냄새와 손길과 숨결이 깃든 사진이에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로버트 프랭크나 마틴 파 같은 사람들 이름을 떠올릴까요?


  사진을 찍으면서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기록’과 ‘작품’과 ‘예술’과 ‘문화’라고 하는 곳으로 기울기 마련입니다. 이야기를 찍지 않으니 기록이 됩니다. 이야기를 찍으려 하지 않으니 작품으로 나아갑니다. 이야기를 찍으면서 나누려 하지 않을 때에는 예술이나 문화가 되어요.


  “한 마디로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필립 퍼키스가 사진을 가르치는 태도, 사진을 보는 태도는 너무 편안하다. 편하지만 어쩌다 들려주는 한 마디는 정확하고 날카롭다. 학교보다는 어떤 스승을 만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필립을 만나 내가 가진 가능성을 조금은 편안하게 펼칠 수 있었던 것 같다(96쪽/김수강).” 같은 이야기를 한국에 있는 대학교 강단에서도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아직 먼 일일는지 모르나,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분도 있을 테고, 이런 이야기는 아예 생각조차 않는 분도 있을 테지요.





  사진은 대학교에 가야 배우지 않습니다. 사진은 나라밖으로 떠나야 배우지 않습니다. 사진은 책을 뒤적이지 않아도 배웁니다. 사진은 뛰어난 스승을 찾아가야 배우지 않아요.


  사진은 늘 나 스스로 배웁니다. 모든 삶은 늘 스스로 배웁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 옷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식주 전체가 패션이다(107쪽/김용호).” 같은 이야기마따나, 우리 삶 모두 ‘패션’이고 ‘사진’입니다. 우리 삶은 모두 사진으로 찍을 만하고, 사진으로 기쁘게 찍을 수 있습니다.


  “작품을 하려고 사진을 하지 않습니다. 기록을 남기려고 사진을 남기지 않습니다. 문화나 역사가 되려고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거나 읽으려는 우리는 늘 ‘삶을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어제와 오늘과 모레를 누리려는 사랑’을 가슴에 품습니다. 사진책 《예스터데이》가 반갑다면, 작품도 기록도 문화도 역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따사로운 사랑으로 내가 나를 마주하고, 이웃과 동무를 사귀며, 꿈을 작은 씨앗 한 톨로 심기 때문입니다(129쪽/최종규).” 같은 이야기를 찬찬히 되읽습니다. 이야기를 노래하면서 즐겁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웃을 수 있으니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기를 내려놓아도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으로 사진을 찍으면 돼요. 이름난 작가가 선보이는 전시회에 가지 않아도 돼요.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흐뭇하게 바라보면 되고, 내 이웃이나 동무가 찍은 사진을 서로 오순도순 이야기꽃 피우면서 들여다보면 됩니다.


  사진비평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온갖 ‘미사여구’와 ‘철학스러운’ 한자말과 영어를 섞어서 써야 비평이 되지 않습니다.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 비로소 비평이고, 이 비평은 ‘말’이면서 ‘이야기’입니다. 사진읽기와 사진찍기는 아주 쉽고 재미있습니다. 우리 삶은 저마다 다르면서 새롭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거든요. 4348.4.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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