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670) 시작 74
우리는 케이크를 먹고 커피 마시는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구드룬 맵스/문성원 옮김-나는 너랑 함께 있어서 좋을 때가 더 많아》(시공주니어,1999) 127쪽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 처음부터 다시 했다
‘시작’이라는 한자말이 어떤 뜻인지 제대로 모르기에 말버릇처럼 “-하기 시작했다” 같은 꼴로 씁니다. ‘始’라는 한자는 ‘처음’을 가리키니, 이 보기글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처럼 적으면 겹말입니다. 4348.4.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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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670) 시작 73
마침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첫 작업을 시작했다
《로알드 알/지혜연 옮김-아북거 아북거》(시공주니어,1997) 46쪽
첫 작업을 시작했다
→ 첫 일을 했다
글을 쓸 적에는 글에 넣는 낱말을 하나하나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을 할 적에도 말에 싣는 말마디를 찬찬히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살피지 않거나 올바로 헤아리지 않기에, 이 보기글처럼 “첫 작업을 시작했다” 같은 꼴로 글을 씁니다. 어떤 분은 ‘첫’을 덜고 “작업을 시작했다”처럼 쓰기도 할 텐데, ‘일(작업)’을 ‘시작’한다고 하는 말마디도 여러모로 어설픕니다. 왜냐하면, “일을 한다”처럼 쓰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처음으로 한다면 “처음으로 일을 했다”처럼 적을 노릇이고 “첫 일을 했다”처럼 적어도 됩니다. 4348.4.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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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666) 시작 72
이웃 사람들, 장사꾼들이 무언가 수군거리기 시작했죠
《파블로 네루다/남진희 옮김-안녕, 나의 별》(살림어린이,2010) 14쪽
수군거리기 시작했죠
→ 수군거렸죠
이 보기글에 나오는 ‘시작’은 마치 도움움직씨 구실을 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시작’이라는 한자말은 도움움직씨처럼 쓸 수 없습니다. 요즈음 널리 퍼진 말투를 보면, 이 보기글처럼 “수군거리기 시작했죠”나 “수군거리고 있었죠”처럼 말끝을 늘어뜨립니다. “수군거렸죠”로 끝맺으면 될 말인데 자꾸 말끝을 늘어뜨립니다. 때로는 “수군거리는 것이었죠”처럼 ‘것’을 집어넣습니다.
이 세 가지 말투는 모두 한국말이 아닙니다. ‘시작’을 붙이는 말투는 일본 말투입니다. ‘있다’를 붙이는 말투는 번역 말투입니다. ‘것’을 붙이는 말투는 뿌리를 알 길이 없는 아리송한 말투입니다. 4348.4.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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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660) 시작 70
세상 돌아가는 형국을 보니 여태껏 내가 믿어 왔던 게 혹시 허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강현정·전성은-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메디치,2015) 27쪽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 의심이 들었다
→ 차츰 의심스러웠다
→ 궁금해졌다
→ 궁금했다
…
처음에는 ‘못 미덥지(의심스럽지)’ 않았으나 세상 흐름을 보고 또 보니 자꾸 못 미덥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그러니, “의심이 들었다”라든지 “생각이 들었다”처럼 쓰면 됩니다. 꾸밈말을 붙여서 ‘차츰’이나 ‘자꾸’를 바로 앞에 넣을 수 있습니다. 4348.4.2.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보니 여태껏 내가 믿어 왔던 모습이 설마 껍데기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국(形局)’은 ‘흐름’으로 다듬고, “믿어 왔던 게”는 “믿어 왔던 모습이”로 다듬으며, ‘혹시(或是)’는 ‘설마’로 다듬습니다. ‘허상(虛像)’은 ‘껍데기’로 손질합니다. ‘의심(疑心)’은 ‘못 미더움’으로 손볼 낱말인데, 이 대목에서는 ‘궁금하다’를 넣어 풀어내거나 ‘생각’이라는 낱말을 넣어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