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 55. 아이들을 입시지옥 굴레에 가두지 말자

― 초등학생한테 한자를 가르치는 속뜻



  아이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아이는 놀고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가 신나게 놀 만한 터전을 마련해 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마음껏 뛰놀지 못합니다. 시골에서는 아이가 사라졌으며, 도시에서는 층간소음 때문에 발조차 못 구르기 일쑤입니다. 학교에 간다 하더라도 수업 시간에 꼼짝을 해서는 안 되고, 쉬는 동안에는 교실이나 골마루에서 달리지 말라 합니다.


  놀고 싶어도 놀지 못하는 오늘날 아이들은 학교를 마친 뒤 학원버스에 실려 학원에 가야 합니다. 이 아이들은 중학교로 접어들기 무섭게 입시지옥에 휘둘리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일찌감치 ‘예비 입시생’으로 여기는 흐름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한국에서 어린이는 놀이를 모르는 채 ‘예비 대학입시생’이 되어야 하는 교육 얼거리입니다. 이런 마당에,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쓰겠다고 밝힙니다. 나라에서는 어린이를 걱정하려는 듯이 이런 일을 벌인다고 하지만, 이 나라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워야 하느라 짐이 무겁고, 온갖 학원을 빙글빙글 돌아야 해서 어깨가 처지며, 이러면서도 놀 틈이 없어서 힘겹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어른은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할까요? 아이한테는 아무런 권리(인권)가 없을까요?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넣느냐 마느냐 하는 이야기는 맨 먼저 어린이한테 물어 보아야 합니다. 어린이가 무엇을 바라는지부터 귀여겨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과서를 제대로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서 써야 한다면, 이 교과서가 제대로 된 교과서인지,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교과서인지 따져야 합니다.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제대로 배워서 생각을 북돋우고 마음을 가꾸는 길을 배우는 배움터입니다. 한국말을 슬기롭게 안 가르치거나 제대로 못 가르치면서 어설프게 한자 몇 가지를 아이들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하지 않는가 하고 돌아봐야 합니다.


  한국에서 가르치는 한자는 중국과 일본과 대만하고 달라, 이 한자를 가르친들 도움이 될 턱이 없을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과 대만하고 사귀는 자리에서는 영어를 쓰면 되지, 굳이 한자나 중국말까지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중국사람이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사람도 중국말을 배우면 서로 고맙겠지만, 한국사람이 중국말과 중국 글자를 일부러 배울 까닭은 없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넣으려는 속뜻도 짚어야 합니다. 교과서에 한자가 나오면 시험문제에도 한자가 나올 테고, 아이들은 이런 시험공부를 더 해야 합니다. 그만큼 초등학교에서 한국말을 제대로 가르칠 겨를이 줄어들고, 아이들은 한국말로 생각을 가꾸거나 북돋우는 흐름을 놓치거나 빼앗깁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새로운 생각을 가꾸거나 북돋우지 못하고 입시공부만 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아이들한테서 ‘생각힘(창의력·창조력)’이 줄어들거나 사라집니다. 아이들은 중·고등학교에 앞서 초등학교부터 ‘입시 노예’가 됩니다.


  한글을 지킨다는 뜻에 앞서, 아이들이 사람답게 자라는 길을 지키고 살려야 합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집어넣겠다는 정책은 아이들을 죽이거나 더 괴롭히는 짓이 됩니다.


  신나게 뛰놀고 아름답게 생각을 키워서 사랑스러운 꿈을 이루는 길로 나아갈 때에, 아이들은 튼튼하고 씩씩한 어른으로 우뚝 섭니다. 아이들은 ‘인적 자원’도 ‘미래 산업전사’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아름다운 숨결입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받으면서 착하고 참된 마음을 기를 숨결입니다. 우리 어른은, 아이가 한국말을 슬기롭게 제대로 배워서 생각힘을 키우도록 도와야 합니다. 흔들리는 한국말부터 바로세우고 일으켜서 아이들 어깨를 가볍게 할 노릇입니다. 한자 교육은 ‘참고서 업자’한테나 반가운 이야기일 테지요. 4348.3.3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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