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1066) ‘-의’를 쓸 자리 (‘나의’와 ‘우리’)


나의 사랑하는 딸 리사에게

《모디캐이 저스타인/전하림 옮김-거인을 깨운 캐롤린다》 5쪽


 나의 사랑하는 딸

→ 우리 사랑하는 딸

→ 사랑하는 딸

→ 내가 사랑하는 딸

→ 더없이 사랑하는 딸

→ 하늘처럼 사랑하는 딸

 …



  영어에서는 한식구가 서로서로 가리킬 적에 ‘my’를 씁니다. 한국말에서는 한식구가 서로서로 가리킬 적에 ‘우리’를 씁니다. 영어에서 ‘our’를 쓸 때가 있을는지 모르나, 영어에서는 ‘my’를 써야 어울리고, 한국말에서는 ‘우리’ 말고 ‘내’나 ‘제’를 쓸 때도 있을 테지만, ‘우리’를 써야 어울립니다.


  한국말에서 ‘우리’를 쓰는 까닭은, ‘내’가 말할 적에 ‘내가 가리키려는 사람과 나를 아울러’서 쓰기 때문이고, ‘내 말을 듣는 사람과 나를 아울러’서 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서도 “우리 아내”와 “우리 남편”처럼 써야 올바릅니다. 형제가 둘일 적에도 “우리 언니”와 “우리 형”처럼 써야 올발라요.


  어버이가 아이를 가리킬 적에, 영어에서는 “my daughter”처럼 쓸 테지만, 한국말에서는 “우리 딸”처럼 씁니다. 아이가 어버이를 가리킬 적에, 영어에서는 “my mother”처럼 쓸 테지만, 한국말에서는 “우리 어머니”처럼 씁니다.


  한국말에서 ‘우리’라는 낱말을 쓰는 까닭은 ‘나와 어머니’나 ‘어버이와 아이’나 ‘너와 나’가 따로 있는 사람이면서도,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느 한 사람을 가리키려 할 적에, 반드시 다른 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이야기는 혼자 나누지 않습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있기에 이야기를 이룹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제 이야기했잖니?”처럼 말합니다. 너와 나를 한동아리로 묶는 뜻이 아니라, 너와 내가 ‘그 이야기를 함께 들었다’는 뜻에서 ‘우리’를 씁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우리’를 쓰는 까닭은, ‘너’와 ‘나’가 모여서 이루는 부부이기 때문에 ‘우리’를 써야 부부가 이루어진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머니를 가리킬 적에 “우리 어머니”라고 하는 까닭도 나와 어머니 둘이 함께 있어야 나한테 비로소 어머니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가리킬 적에 “우리 딸”이라 하는 까닭도 아이를 하나 둔 어버이라 하더라도 어버이 한 사람과 아이 한 사람이 함께 있어야 어버이가 바라보기에 아이가 있고, 이 아이를 가리킬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달님

→ 사랑하는 달님

→ 사랑하는 우리 달님

→ 사랑하는 예쁜 달님

→ 사랑하는 멋진 달님


  사랑하는 짝꿍이나 짝님이 있을 적에도 한국말에서는 “내 사랑”이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랑”입니다. 이때에도 ‘너’와 ‘나’를 따로따로 또렷하게 느껴서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를 씁니다. 서양에서는 너와 나를 따로따로 또렷하게 느낀다는 테두리에서 ‘내(my)’를 넣는 말투가 되지만, 한국말에서는 너와 나를 따로따로 또렷하게 느끼면서 서로서로 제대로 가리키는 자리에 ‘우리’라는 낱말을 씁니다.


  그런데, 이처럼 쓰던 한국말이 서양말에 잘못 휩쓸리면서 흔들립니다. “내 아이”나 “내 달님”이나 “내 어머니”처럼 쓸 수 없는데, 자꾸 이처럼 잘못 씁니다. 한국말에서는 이 말투가 왜 잘못일까요? 한국말에서 ‘내’를 쓰는 자리는 ‘나 혼자 가진 것(물건)’일 때입니다.


 이 책은 내 것이야

 내 책이야

 이 자전거는 내 것이야

 내 자전거야


  한국말에서 ‘내’를 쓰는 자리는 “내 것”이라고 말할 때입니다. 그러니, “내 아이”나 “내 어머니”라고 하면, 아이나 어머니를 마치 ‘물건(내 물건)’으로 가리키는 셈입니다. 이리하여 한국말에서 한식구나 동무나 이웃을 가리키면서 ‘내’라는 말마디를 쓰면, 사람을 물건으로 다루는 느낌이나 뜻이 되고 맙니다.


  요즈음은 한국말을 올바로 가르치거나 말하지 않으면서 너무 일찍부터 영어만 힘껏 가르치다 보니, 한국말에서 ‘우리’를 쓰는 까닭조차 제대로 알려주는 어른이 몹시 드뭅니다.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고, 한국말을 영어처럼 가르치거나 배우기 일쑤입니다. “내 사랑”이나 “내 어머니”나 “내 아이”처럼 쓰는 말투는 모두 한국말을 영어처럼 바라보면서 잘못 가르치거나 엉뚱하게 배우거나 얄궂게 쓰는 모습입니다.


  한국말에서 쓰는 ‘우리’는 ‘집단주의 문화’를 보여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올바르지 않은 생각입니다. “우리 나라”라든지 “우리 마을”이라든지 “우리 모임” 같은 말마디에서는 여러모로 ‘집단주의 문화’를 말한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한겨레는 옛날에 어떤 말을 썼을까요? “이 나라”나 “이 마을”이나 “이 모임”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여기(이)’에 있는 나라요 마을이요 모임이라는 뜻에서 ‘이’를 씁니다. 한국에서 한국사람이 “우리 나라(우리나라)”와 “우리 말(우리말)”이라는 낱말을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이런 말마디는 일제강점기 언저리부터 나타났습니다. 이웃나라한테 짓밟히는 역사를 겪으면서 이 아픈 역사를 딛고 서야겠다는 뜻에서 ‘우리’라는 말마디를 빌어서 ‘제국주의 정치권력을 이겨내자’와 같은 마음을 나타내려 했어요.


  ‘우리’라는 말마디는 ‘내가 너를 바라보는 눈길’을 보여줍니다. ‘네가 여기에 나와 함께 있다고 느끼는 눈길’을 보여주는 ‘우리’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영어에서 쓰는 ‘my’는 치레(형식)나 말법일 뿐이지만, 한국말에서 쓰는 ‘우리’는 ‘내’가 ‘나’를 더욱 또렷하게 느끼거나 생각하는 말투입니다.


  “내 딸”처럼 쓰는 말투는 새로운 말투도 아니고, 새롭게 달라져야 할 한국말 모습도 아닙니다. 영어 말투를 한국 말투대로 끼워맞출 수 없듯이, 한국 말투를 영어 말투로 끼워맞출 수 없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딸” 같은 글월은 “우리 사랑하는 딸”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또는, “사랑하는 딸”로 바로잡습니다. ‘우리’라는 말마디를 넣고 싶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넣으면 됩니다. 그리고, “더없이 사랑하는 딸”이나 “내가 사랑하는 딸”이나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는 딸”처럼 쓰면 돼요. 4348.3.30.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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